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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Oct 29. 2021

[데스 스트랜딩] 게임의 재미란 무엇인가

  [데스 스트랜딩]의 장르는 넓은 곳을 돌아다니는 오픈 월드 액션 게임이지만 매인 콘텐츠는 택배 배송입니다. 워낙 생소한 요소인 만큼 이 게임은 유저에게 호불호 심한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즐긴 사람조차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이 성과를 요행으로 얻은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게임의 재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을 개발자 스스로 도출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작으로 [데스 스트랜딩]을 만들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데스 스트랜딩]을 통해 게임의 재미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물론 이는 필자의 생각일 뿐 정확한 답은 아닙니다. 게임의 재미는 아직도 유저와 개발자에게 미지의 영역이며, 코끼리를 더듬는 맹인들처럼 각자만의 해석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의 괴리감을 줄이고 싶다면 게임 플레이의 재미가 무엇인지 우선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의 재미가 이렇다는 본문의 해석은 필자라는 맹인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얼마나 배달을 잘 하면 저런 별명이 붙을까


  게임의 재미는 2가지 구성 요소로 나뉩니다. 첫번째는 '무엇이 재미있는가' 입니다. 게임에서 하는 행동을 장르로 나누어보면 슈팅 게임의 쏘고 맞추기, 액션 게임의 전투, 어드벤쳐 게임의 모험과 개척, 육성 게임의 아기 키우기, RPG의 역할 분담, 레이싱 게임의 빠른 이동 등이 있습니다. 공통점이 없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 어느 게임을 하든 똑같이 분비되는 호르몬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도파민이라는 흥분성 전달 물질입니다. 그렇다고 그 호르몬이 분비되는 행동을 전부 게임의 재미라고 해석하긴 힘듭니다. 열량이 높은 음식이나 외제 차를 사는 걸 게임이라고 하기 힘든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도파민 분비 활동이면서 게임과 관련이 깊은 건 원시 시대부터 해왔던 생존 활동입니다. 즉 의욕과 흥미를 부여하는 도파민이 분비되는, 옛날부터 잘해야 했던 행동을 현재 게임에서 하고있는 것입니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소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지식으로 먹고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다면 수학이나 언어 공부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점점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게임을 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어 중독을 유발한다는 말이 과거에 돌곤 했습니다. 실제로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와 비슷한 양이 분비되니 걱정하실 필욘 없습니다.


리니지는 이윤과 패권을 쥐기 위한 전쟁 / 카트라이더는 누구보다 빠른 이동


  그럼 이제 [데스 스트랜딩]에서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생존 활동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택배 배송을 하는 작품이니 이 게임의 재미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동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데스 스트랜딩]에서 위험 요소는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비탈길이나 절벽은 기본이고, 맞으면 시간이 가속되는 비, 유령처럼 다가와 위협하는 BT(Beached Things), 배송물을 약탈하는 뮬 등 [데스 스트랜딩]만의 적도 존재합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장비가 존재하지만, 각각 하나씩 대응하기 때문에 모두 가져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유저는 지도와 날씨를 수시로 파악하여 위험 요소를 피할지 타파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의 당위성을 세계관에서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바깥이 너무 위험해서 게임 속 사람들은 교류를 중단하고 자신만의 벙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 세계에서 전설의 배달부이자 접촉 공포증을 가진 주인공이 인류를 하나로 이을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미대륙을 횡단하며 성장하는 것이 이 게임의 스토리입니다. 이렇듯 [데스 스트랜딩]은 게임에 적용할 수 있는 생존 활동을 플레이와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연결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에서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동이 게이머에게 흥미를 잘 유발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양한 설치물을 사용하여 상황을 타개하거나 좌우 균형을 맞추는 조작이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도 [데스 스트랜딩]의 메인 콘텐츠가 밝혀졌을 때 개발자 코지마 히데오에게 무한한 신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게임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출시 후 [데스 스트랜딩]을 재미있게 즐긴 사람은 분명 존재합니다. 이는 게임 재미의 두번째 구성 요소가 그들에게 충분히 효과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흔한 절벽이나 수수깨끼의 적도 등장


  싸움은 생존 활동의 기분 중 하나이지만 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액션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성향을 극복하고 재미를 주는 것, 그것은 바로 게임 재미의 두 번째 구성 요소인 '얼마나 잘하는가'입니다. 대표적으로 격투 게임의 콤보 시스템이 있습니다. [철권]에서 상대를 이기는 게 중요하지 10콤보를 쓰는 건 사실 그렇게 의미 있진 않습니다. 오히려 데미지나 심리전, 순간 판단력, 캐릭터 이해도 등이 승패를 더욱 좌우합니다. 그런데도 유저들이 콤보를 신경 쓰는 건 자기가 초기에 쏟아부은 노력과 성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 [데빌 메이 크라이5](이하 데메크)의 스타일 랭크입니다. 그것은 유저가 콤보를 다양하게 쓸 때만 랭크가 올라가는 시스템입니다. 처음엔 쓸 수 있는 콤보가 적어서 높은 랭크를 올리기 힘들지만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원하는 콤보도 얻고, 점진적으로 랭크를 올릴 수 있습니다. 유저는 그 순간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게임을 하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빠졌을 뿐이며, 실제로 향상된 실력은 체감상 얻은 것의 절반 정도 될 것입니다. 분명 ‘얼마나 잘하는가’는 과장되고, 의미 없고, 의도적인 추켜세우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칭찬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이 설사 실제 실력에 허상을 덧붙이는 형태일지라도 말입니다.


자기 실력을 부여주는 등급이나 NPC에게 칭찬 받는 것도 결국 추켜세우기


  그럼 [데스 스트랜딩]에서 칭찬은 어떻게 주느냐. 게임 내에선 택배를 배송받은 NPC가 유저에게 고마워하고, 포터 등급이 올라가고, 종합 평가를 보는 게 끝입니다. 험준한 환경을 다양한 설치물로 극복하는 것도 있지만 플레이에 편의성만 줄 뿐입니다. 그래서 [데스 스트랜딩]은 칭찬해줄 사람으로 또 다른 유저를 데려옵니다. 멀티플레이로 도와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데스 스트랜딩]에선 주인공이 설치한 구조물이 다른 사람 게임에 공유되는데, 그들이 그걸 유용하게 쓰면 '좋아요'만 줄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썼는지는 자신의 생존 활동 자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데스 스트랜딩]이 가지는 의미는 그때부터 달라집니다. 황량한 곳에서 묵묵하게 배송물만 나르던 주인공이 타인의 구조물로 도움을 받으면 그들과 연결되었다는 기쁨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어디에 구조물을 설치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칭찬으로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신기한 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경험이 타인과의 연결을 다루는 게임 스토리와 플레이에도 잘 융화되었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세이프 하우스를 쓰는 것도,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본인 자유


  [데스 스트랜딩]은 의도에 맞춰 완성도 있게 만든 게임이지만 호불호 갈리는 경험을 주는 게임입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순한 국물에 후추를 뿌린 울면처럼 짬뽕과 다른 맛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재미있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질려가던 입맛에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을 겁니다.


추가 컨텐츠에선 배달 품목을 날려버린다


  이번 글을 통해 유저는 게임에서 칭찬을 받으며 생존 활동을 할 때 재미를 느낀다고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재미가 정확히 어떤 분야와 관련이 깊은지는 아직 다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다음 글을 통해 풀어가고자 합니다. 유저의 행동과 동선을 기획하는 분야, 바로 레벨 디자인입니다. 이 분야는 장르마다 차이가 커서 세부적으로 들어가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요즘 선호되는 장르 중 오픈 월드 게임을 들고 오겠습니다. 오픈 월드는 맵이 현실처럼 구성된 게임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광활한 필드에 콘텐츠가 그냥 흩뿌려진 것 같지만 사실 일정한 패턴과 철학이 숨어져 있습니다. 그 레벨 디자인의 방향성을 중심으로 다뤄질, 다음 글의 주인공은 바로 [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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