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비행기는 아침 아홉 시에 칸티슈나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나는 텐트로 돌아와서 오로라 예보를 확인했다. 오로라 등급의 평균은 2~3점 정도인데 이날은 6점이었다. 아래 써진 설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의 오로라 활동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날씨가 허락한다면 북극해 연안의 배로우에서부터 호머 남쪽의 코디악 섬까지 머리 위를 활발히 움직이는 오로라를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원더 레이크 근처에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연못의 이름은 반영 연못(reflection pond)인데, 북쪽 끄트머리에 서면 물속에 거꾸로 선 디날리 산의 모습이 한 가득히 담겨서 붙은 이름이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연못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접이식 의자에 앉아 물가에서 밤을 지내고 아침의 첫 햇살이 디날리 정상에 떨어지길 기다릴 생각이었다. 나는 새벽의 춥고 어두운 밤길을 걸을 준비를 미리 해두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깜깜한 밤에도 구름은 흰색인가? 새벽 세시에 일어나 텐트의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잠깐이나마 황당한 생각을 했다. 길을 떠날 채비까지 하고 나와 보니 우윳빛 물결이 밤하늘 가득 출렁이고 있었다. 나는 한 손에는 카메라를 끼운 삼각대를, 한 손에는 접이식 의자를 들고 천천히 길을 나섰다.
무섭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원더 레이크까지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서만 우리는 그리즐리를 다섯 마리 보았으니까. 게다가 나는 지금 혼자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캠핑장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지점에 이르러서도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늘에 정신이 팔려서였을까?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오로라를 쫓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설레고 벅찼다. 두려움은 설렘과 함께 오는 것이어서 하늘의 파문을 따라가는 길은 무섭도록 아름다웠다. 머리 위에선 이쪽 해안에서 저쪽 해안으로 눈부신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갔다. 자줏빛 혹은 남빛의 미세한 실타래들이 심연의 저쪽에서 여기로 드리워져 찰랑거렸다.
깊은 바닷속에서 흰 벨루가 고래 한 마리가 진흙을 뒤지며 먹이를 찾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진창을 헤치고 서서히 떠오르는 부드러운 윤곽. 수면의 빛무리를 향해 올라오는 벨루가 주변으로 기포들이 솟아오른다. 그와 나의 조상 중 하나는 땅으로, 하나는 바다로 향했다. 고래의 조상 중에는 암불로케투스(ambulocetus)라는 종이 있다고 한다. 암불로케투스는 '걷고 헤엄치는 고래'라는 뜻이다. 얕은 물에서 생활하며 물속에서 먹이를 찾던 암불로케투스는 다리가 짧고 눈이 머리 위쪽에 붙어 있다. 암불로케투스는 고래들이 바다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땅에 살았던 종이다. 그가 바다로 들어간 것이 육지 생물들의 압력 때문이었는지, 바다를 향한 동경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때의 결정 때문에 오늘날 고래들이 물속에 살면서도 숨 쉬기 위해선 수면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것은 확실하다.
Naturalis Museum, Leiden
나는 길 중간중간에 멈춰 서서 삼각대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조리개가 열려 있는 몇 초 동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오로라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 사이로 멀리서 둥, 둥, 북소리를 떠올리는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오로라를 목격한 사람들이 북소리, 악기 소리나 무엇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한때는 오로라에서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허풍선이며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치부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은 것이다, 워낙 조용하다 보니 심장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냐, 하는 다양한 비판에서 이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은 2016년이 되어서였다. 핀란드에서 음향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기고한 <오로라는 기묘한 소리를 내죠, 이제 우리는 왜 그런지 압니다(Auroras Make Weird Noises, and Now We Know Why)>라는 기사에서 비로소 그 소리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오로라는 열권 이상의 높이, 지상으로부터 90킬로미터에서 1000킬로미터 고도까지 관찰되는 우주 현상이기에 거기서 소리가 날 리는 만무할뿐더러 그것이 지상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들릴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비판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던 중 2012년에 소리의 정체를 밝힐 중요한 단서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우연히 녹음된 오로라 소리가 분석 결과 겨우 지상 70미터 높이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높이에 착안한 핀란드 연구팀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역전층에서 소리가 발생했으리라 추측한다. 고도가 높아지면 기온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데 반해 어떤 조건에서는 고도가 올라감에 따라 기온 또한 올라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이때 대기에는 역전층, 즉 일종의 덮개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막 같은 것이 형성되고 이 막은 아래쪽으로는 음전하를, 위쪽으로는 양전하를 가두어놓으며 대기가 흐르지 않게 정체시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껍질이 깨지는 것은 외부로부터 강력한 자극, 대전된 미립자들이 태양풍을 타고 초속 450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아와 부딪히면서다. 오로라의 활동이 특히 강력한 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그러므로 무수한 경계들이 깨지는 소리다. 둥, 둥,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것이 내 속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우주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몰라 나는 하염없이 오로라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