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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서진 Aug 11. 2018

스피치, 매직 포뮬라

돌아앉은 몸짓에도 마음과 귀를 열게 만드는 진심 말하기  

말이 쏙쏙 들어와요

듣고 싶게 만들어요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나는 달변이 아니다. 그런데 직업상 말할 기회가 많다. 위의 말은 현장에서 내가 듣는 피드백이다. 나는 심지어 생각하고 말해야 제대로 말이 되는 속도가 느린 타입이다. 그렇다고 말하기 위해 내가 준비하는 것이 대본 암기는 아니다.  


많은 퍼실리테이터들은 사람들 앞에 서서, 그들의 주위에서 관찰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까지 도와야 한다. 말은 필수 도구이다. 어떻게 말을 꺼내고 이어갈 수 있을까. 말하기에 소심한 어느 분들에게 혹시 나의 사례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나는 어떤 기술을 배우든 태도와 자세에 대한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저 채를 들고 휘두르는 단순한 스포츠로 보이는 골프의 기본 스윙 자세는 플레이어를 두고두고 괴롭히는 요인이고, 기본기가 제대로 익혀지지 않으면 볼썽 사납기까지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말하기의 핵심은 '자세'와 '상대방'에 있다. 말하는 목적과 이유, 말하려는 내용 자체가 제대로 들려지는 것이다. 


내가 요청받게 되는 갈등해결을 위한 퍼실리테이션에서는 대체로 참여자들이 서로 이야기하기를 원하지 않는 그야말로 갈등의 상태에서 만난다. 그들이 함께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그들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는 전환이 될 때, 분위기의 급반전이 일어난다. 내가 생각하는 말하기의 반전도 역시 스피커(speaker)와 리스너(listener)의 협력에서 시작한다. 


결국 진심을 읽는 것이라 생각한다. 

첫째, 그들(참여자, 청중)의 관심과 진심을 읽는다. 

둘째, 그들이 나(퍼실리테이터, 강연자)의 진심을 읽는다. 

셋째, 이후 우리는 이미 우리의 공동 관심을 읽는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 


간혹 어색한 분위기와 반기지 않는 상대나 그룹의 태도로 인해 위축될 수도 있다. 괜찮다. 그들도 우리도 사람이다. 그들도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우리에 대한 기대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첫번째가 달변인 사람이겠는가. 그저 목적에 맞는 전문성을 갖추길 기대할 것이다. 말하기 자체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이 바로 그 '내용'에 대한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아는 척하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 부분에 대한 취약성이 있다면 먼저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나는 구조화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단순한 말하기에 대한 생각도 좀 더 구조화해서 전달해 보겠다. 각자 자신의 스타일대로 할 일이지만, 인간은 보편적으로 유사성 편향(similrarity bias)을 가지고 있어서 비슷한 스타일을 보면 더 비슷하게 가져가기 쉬울 수 있다. 



'청자의 듣기를 돕는' 말하기 스킬  



1. 근접성(Proximity)


물리적으로 근접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나는 참여자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보통 강연자에 비교하면 훨씬 가까운 거리에 선다. 퍼실리테이터로 워크숍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로 부터 생산되는 데이터를 읽고 분석해야하기 때문에 그들의 private distance를 고려하면서도 데이터를 듣고, 읽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다. 대체로 1m 내외 거리이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이 거리를 유지한다.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 흐름을 안내하거나 내용 리뷰를 할때는 참여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3~7m 거리의 social distance를 유지한다. 


너무 가까이 자주 다가가면, 참여자가 생각하는데 방해를 줄 수도 있다. 마치 감시받는 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참여자의 반응은 곧 나의 말하기에 변수로 작용한다. 청중과 참여자를 만나는 시간은 매우 반응적이기 때문이다. 거리를 조절하는 것 만으로 상대가 편안하거나 사려깊게 들을 준비를 할 수 있다. 이것도 공간의 구성으로 할 수 있는 촉진이다. 



2. 유사성(Similarity)


위에서 구조화 이야기를 하면서 유사성을 이미 꺼냈다. 비슷한 것에 끌리는 경향이다. '언제 더 듣고 싶을까'에 대한 단서를 유사성에서 찾아본다. 오늘의 주제와 관련된 경험, 상대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트렌드 이슈, 어떤 분야든 약간의 유사성 정도를 찾아 꺼내볼 수 있다. 나의 경우 주제 관련된 평소의 고민이나 경험에 대해 소개하거나, 그 반응에 따라 이야기를 이어가며 참여자나 청중이 취하는 제스쳐를 거울처럼 따라하기(mirroring)를 약간씩 시도하는 편이다. 이런 것으로 소위 도입부에서 '날씨가 참 좋아요' 같은 류의 small talk를 대체하여 시도한다. 


너무 많은 유사성을 제기하면 쉽게 식상해진다. 호기심이 사라져서 매력이 덜하다. '그래 그러면 들어볼까', '어느새 내가 듣고 있네'를 촉진하는 정도의 유사성을 시도해 보자. 말로하는 아이스 브레이킹이 유머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유사성에 대한 것은 늘 주관적이므로 어떤 대상을 만나는가에 따라 사전 정보를 수집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3. 상호보상성(Reciprocity)


호혜성이다. 서로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의 응용을 위해 인간의 욕구 중 '존중의 욕구'를 충분히 활용한다. 내가 말하는 자리는 대체로 내가 그들을 돕기 위해 갔거나 콘텐츠를 제공하러 간 자리이다. 경험에 따르면 재미있게도 나는 상대(상대 그룹)를 촉진(퍼실리테이션)하거나 가르치는 장면에서 가장 많이 배웠다. 결과를 성찰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라도 과정에서 얻는 학습이 크다. 또한 한사람 한사람 살아있는 그들과의 교류가 그렇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 갔을 때, 그들로 부터 배울 것이란 것에 대하여 열고, 그 사항을 공유한다. 그 장면이 학습을 위한 자리면 같이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문제해결을 위해 퍼실리테이션을 해야 하는 장면이면 그들이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임에 대하여 충분히 존중하는 제스처와 말하기를 더한다. 어느샌가 그들이 나에게도 충실한 협력자가 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1~3은 사회심리학에서 대인관계에서 호감을 얻기 위한 요인으로 이미지 관리에 주요영향을 미치는 편향(bais)으로 꼽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4. 3S Magic Formular(3S 마법의 공식)



나누기 Split


내가 말하는 문장을 듣는 사람에 최적화할 수 있도록 나누는 것이다. 학창 시절 영어 시간 의미해석을 위해 '끊어읽기'를 연습했을 것이다. 띄어쓰기나 쉼표가 없는 것 처럼 줄줄줄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말을 위해서는 '끊어읽기'가 부족하다. 익숙하기 때문이겠지만, 공식적으로 청중을 만나면 더욱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일상에서 만나는 나의 지인들은 나의 말하기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내가 힘들여 '끊어말하기'를 하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알아채는 '이해의 패턴'을 연습했을 것이다. 바로 그 이해를 신속히 돕기위해 '끊어말하기'를 시도할 수 있다. 나는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다. 말이 빠른 것과 전달력이 있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것을 도와주기 위해 내가 선택하는 기본적인 '말을 내보내는 방식'이다. 


'끊어 말하기'를 시도하게 되면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고, '발음(diction)'에 신경쓸 여유가 생긴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말은 했으나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면(발음이 부정확하다면) 청중이 맥락적으로 파악하며 듣느라 피로가 가중될 것이다. 청중을 생각하는 말하기, 그것이 기본이다. 직업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살짝 지나쳐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짚어볼 일이다. 


머물기 Stay             


우리는 가끔 취한다, 여러가지에. 이야기를 듣다보면 더욱 취한다. 자기만의 상상의 나래에 빠지기도 하고, 그 다음을 이어가기 위해 나름의 고군분투를 하느라 그러기도 한다. 그런 청중을 돕기위해 우리의 말하기는 잠시 잠시, 포즈를 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저 잠시의 '머물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0.5초, 2~3초의 머무름 정도로도 충분하다. 생각보다 전문적으로 말하기를 하는 사람들이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마치 "on air"룸에 마이크가 꺼진 느낌의 방송사고를 대하는 듯한 불안감이 밀려오는 그 압박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한번 시도해 보기를 바란다. 생각보다 임팩트 있다. 그 짧은 시간에 청중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을 기대할 준비를 할 수 있다. 


마이크를 잡아야만 할 규모의 공간과 청중을 마주했다면, '끊어말하기 마다 머물기'를 해 주어도 좋다. 생각보다 마이크의 울림이 있고, 에코가 끝나기 전에 말이 나오면 뒤의 말이 앞에 말을 잡아먹기 일쑤다. 청중은 그 속도를 명확하게 포착하여 좀 천천히 말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지만, 그 사태가 벌어진 현장에서 정작 마이크를 쥔 사람은 알아채기 어려운 일이기에 더욱 신경쓸 필요가 있다. 


강조하기 Stress 


사람들이 보통 노래의 어느 부분을 기억하던가? "무슨무슨 노래 알아요?"라고 제목을 대면 낯설어 할지라도 그 노래의 후렴구나 도입부를 불러주면 "아~ 그 노래"할 가능성이 높다. 방점이 있는 부분들이다. 노래나 연주가 시종일관 부드럽거나 강력해서는 듣는 재미가 덜할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바흐의 무반주첼로협주곡을 들으면 묵직한 첼로음을 무척 반복적인 음률로 전개하는데도 불구하고, 여리고도 강력하게 넘나들며 왔다갔다 하는 것이 내게는 그렇게 설득력있는 스피치처럼 들릴 수가 없다. 연주에도 강약이 있는 것처럼 여리게 더 여리게, 피아노 피아니시모로 연주하다가 또 포르테 포르티시모로 강하게를 넣어주면 그 재미와 몰입이 배가 된다. 이것을 강조라고 하고싶다. 콘텐츠를 가진 강연자라면 피아노, 포르테 해야 할 부분을 이미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부드럽게 힘을 뺀 것'도 '강력하게 힘을 준 것'도 강조라 여긴다. 나도 이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나만의 열심에 함몰되어 어느 때는 포르티시시모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때도 있다. 나혼자 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참여자와 청중을 고려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 반응적 말하기를 유의해야 한다. 여기까지를 조율할 수 있으면 듣기에 크게 거북한 말하기는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5. 기본자세


마지막은 역시 참여자와 청중을 기억하는 자세이다. 전달이 목적인가, 그들에게 끼치고 싶은 유익이 목적인가. 내가 말하는 것이 중요한가, 그들이 듣는 것이 중요한가. 듣는 것이 중요하다면 더 잘 들을수 있도록 선택하겠다는 결심이 더 중요하다. 나의 출발은 그저 그것을 위해 원칙을 준수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럼에도 너무 중요한 PT가 있어서 두근대는 심장을 어찌할 수 없거나 청중 앞에 좌절감이 들때는 언젠가 컨설턴트로서 나의 선배가 해준 조언을 들려주고 싶다. 상대를 최대한 제대로 마주한 정면에서 그들을 향해 '마음속으로만' 진심을 담아 고백한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실제로 힘든 그 감각이 체감되는 경험이 찾아온다. ^^ 



남서진 CPF(Certified Professional Facilitator/I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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