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듦과 빠져듦 사이, 자유로운 인간의 발견적 학습
사람들은 '공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강요된 '공부'를 싫어할 뿐이다.
오래도록 조직학습 분야 학자들이 강조해 온 '변화'에 대한 경구를 '공부'로 대체해 보았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인간은 타고난 학습자다. 그리고 공부하고 싶어한다. 실로 그 증거는 많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를 휴가지로 선택했을 때, 새로운 전자기기를 구입하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재미있는 게임을 접했을 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나에게 이익이 크게 돌아오는 프로젝트에 착수할 기회가 생겼을 때, 이사가고 싶은 대상지가 생겼을 때 등의 경험에서 아마도 우리는 스스로 그 대상에 대하여 '리서치'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대상에 대하여 알아보기 시작한다. 더 많이 더 다양하게 앎의 통로를 연구하고 접촉면을 넓히고 양질의 정보를 탐색하고 걸러낸다. 그 여정에서 일어나는 수고로움에 대하여 생각하기 보다 정보를 얻는 것에 더 집중한다. 심지어 우리에게 그 과정은 즐겁기까지하다.
즐거운 공부를 지속하려면 '공부시키는 구도에서의 해방'이 선행되어야 한다. 해방이 선물하는 것은 '자유', 그리고 '선택'으로 연결되는 '주체성'과 '주도성'의 회복이다. 자유가 주어질 때 선택을 할 수 있고, 선택하는 사람은 그 행위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주인으로 산 사람에게 쌓이는 누적된 경험은 '주인의식'이라는 효과를 안겨준다.
각종 매체들이 전하는 뉴스에서 '민주적 교실', '민주적 학교'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 '창의적 인재'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이미 고전이 되었다. 이같은 내용을 뛰어넘어보고자 다양한 교육방법이 제안되었고, 전파되고 있다. 혹시 좀 더 살펴야 할 것은 없을까?
민주(民主), 주인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인식과 경험,
창의(創意), 거절과 평가의 줄 세우기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생각을 이야기하고, 발전시키는 경험
교육은 '인간 행동의 계획적 변화'(교육의 조작적 정의)를 전제한다. 그럼에도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첨단에서는 '일방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교수자를 무능력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일방적이지 않은' 어떤 시도를 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해방이 만들어내는 주도성을 학습자들이 누릴 수 있다. 그런데 함정은 새로운 어떤 방법을 적용하고자 교실로 들고가지만, 그것을 일방적으로 적용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 이것은 다 열심을 내는데 그 이유가 있다. 열심은 좋다. 그 방향을 조금 달리해 볼 필요가 있다.
'공부는 하는 것이다.' 시키는 것에 열심을 내지 않았는지 점검하고, 학습 주체가 공부를 '하는 것'에 도움받을 수 있는 열심을 부려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학습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지 말자. 그래야 그들의 잠재된 동기를 어떻게 작동할지에 열심을 내고 연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일방적인 방식을 벗어나는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순서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종국에는 의도가 들킨다. 행위의 시도가 무색해진다. 효과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학습에 참여하는 것은 학습자의 선택이지만, 학습의 수월함을 돕겠다는 의지의 발현은 교수자인 나의 것이다. 이것이 결정되면 수업의 설계가 달라진다. '집어넣기' 수업에서 '꺼내기' 수업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잘 꺼내기 위해 교수자가 제공할 것은 학습자의 생각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오도록 수도꼭지를 트는 행위'(tapping)이다. 사고하는 연습을 통해 사고하는 힘을 기르고, 그 속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꽃피우며, 문제를 해결해 가기까지 연습할 수 있도록 생각을 톡톡 두드려 주어야 한다.
이것을 가장 적절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질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질문을 받으면 '답'을 생각하게 된다. 인지작용의 고리는 그렇게 움직인다. 내가 제공하려고 한 부분에 대하여 답을 제시하는 대신, 상대가 생각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꾸어 제공하는 것이다. 수업을 위하여 콘텐츠 관련 연구를 하였다면, 그 연구를 통해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과 관련된 열린 질문을 제공하도록 한다. 하나의 질문으로 모든 것을 수렴하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무리가 될 수 있다. 학습자들이 꺼내는 생각의 내용에 따라 질문을 이어가는 여정을 꾸려본다. 여정이 거듭될 수록 심화되는 생각의 깊이를 만날 수 있다.
전문학원이나 학습지 회사의 주목받는 학습법들은 오래 기억을 남겨주는 비법을 자랑한다. 우리는 어떨 때 기억을 잘하는가. 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어떤 것들인가. 인상깊었던 것들이다. 어떤 것이 인상깊은가.
세네명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옆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와 내 이야기를 할 때의 표정과 에너지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내 이야기'를 할 때 훨씬 열정적인 모습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내가 경험한 것'을 말할 때 사람들은 신나한다. '경험'이라는 콘텐츠가 자신에게서 왔기에 느끼는 편안함과 자부심, 화자로서 주목받는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에너지가 더해진다. 개인의 '경험'은 매우 주관적이다. 학습도 매우 주관적으로 일어난다.
그럼에도 그룹 안에서 우리는 옆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배운다. 그의 이야기로 부터 나의 앎이 흔들리고, 변하고, 확장되기도 하고, 새롭게 진보한다. 인식의 재구성은 개인적 수준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Piaget의 인지적 구성주의 : 인지구조의 재구성) 사회적 상호작용(Vigotzky의 사회적 구성주의 : 사회적 교류가 인식발달의 기초)을 통하여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수업을 설계할 때, 학습자의 학습 몰입을 배가시키기 위해 '경험'을 활용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활용해 볼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하면 경험을 제공하는 학습설계(실험, 체험, 활동, 게임, 자료제공 등)를 고민할 수 있고, 경험이 많은 성인들이라면 그들의 경험을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경험 꺼내기'(주제와 관련되는 경험, 일화, 사건 등)를 다양하게 시도해 보면 좋다. 이럴때, 그룹, 팀으로 구성하여 사회적 교류를 높이면 또다른 가능성을 넓히는 학습을 촉진할 수 있다.
생각, 방법, 절차, 태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특히 생각과 태도는 매우 닮은 꼴로 연결되어 있다. 생각하는 것이 쉽게 태도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상대가 알아챌 수 있는 말은 강력해서 좀 더 주의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Lecture. 이것은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이 방식이 일방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좀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퍼실리테이터인 나와 나의 동료들은 '참여자 주도적, 학습자 주도적, 고객 주도적'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지라 은근히 생각 저변에 'lecture 는 나쁜 것'이라는 편견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다. 실상 나쁘지 않다. 하지만 대체로 그다지 환영받을만 하지도 않다. Lecture는 기본적으로 청중을 요구한다. 잘 들어주는 청중, 적어도 화자의 권위를 인정해주며 경청할 청중을 원하는 방식이다. 화자가 더 잘 난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는 것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 장면이 아닌 일상에서 접하게 되면 은근히 화가나고, 그 사람의 화법이 싫어진다.
내가 만나는 많은 전문 강사들이 전하는 그들 고객의 요청은 '강의 말고, 참여식 그거 해달라'는 이야기라고 한다. '강의 말고'에 집중해 볼 이유가 있다. 수준 높은 콘텐츠 강의를 온라인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고, 내 손안에 들려진 핸드폰으로 세상 모든 지식을 만날 수 있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지식을 전달받기 보다, 거기서 얻지 못하는 어떤 것을 얻고 싶어한다. 혼자서는 알 수 없었던 것을 교수자로 부터,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학교학습에서도 fliped learning(혼합형 학습의 한 형태로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수업에서 학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강의보다는 학생과의 상호작용에 수업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는 교수학습 방식, 교사가 준비한 수업 영상과 자료를 학생이 수업시간 전에 미리 보고 학습하는 형태로 진행. wikipidia)이 들어앉기 시작했다.
그럼 강의 말고 무엇인가. 나와 나의 동료들은 그 다른 방식을 대화(dialogue)라고 제안한다. 생각, 방법, 절차를 꿰어낼 수 있는 방식이 또한 대화다. 나와 학습자의 대화, 학습자와 학습자간의 대화, 그 속에서 학습의 역동이 일어난다.
이것을 제대로 이루어내는 것은 학습자의 수업 참여다. 수업에 출석하거나 참석한다는 것이 아니라 참여한다는 것이다. 학습자가 수업의 주체가 된다는 이야기다. 학습자가 참여를 통하여 깨닫고, 발견한다는 것이다. 교수자는 그것을 더 수월하게 잘 해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르치지않고 배움이 일어나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러닝 퍼실리테이션(learning facilitation)이다. 역시 주인공은 학습자가 된다.
모든 사람들은 강하고 능력이 있는 존재이다,
그들에게는 어려움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자신의 잠재성을 성장시키고 계발하고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그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We cannot teach another person directly
we can only facilitate his learning.”
- Carl Rogers
내가 속한 조직에는 조직개발과 조직에서 고민하는 리더를 위한 아침 학습 세미나가 있다. 세미나의 콘텐츠는 탑저널의 영어 논문이다. 논문 컨텐츠로 진행을 하지만, 세미나의 대상은 열려있고, 그 콘텐츠에 정통하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논문의 내용은 분명 심오한 것이 맞다.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다양한 조직에 계신분들이 아침 세미나에 온다. 이 논문을 가지고 어떻게 참여적 학습을 이어가는지 내가 진행한 방식을 소개해 보겠다. 매우 딱딱할 수도 있을 법한 논문 형식의 콘텐츠를 참여형 학습을 통해 다룰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좀 더 용기내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논문의 주제와 관련된 참여자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생활언어로 질문을 제공한다. 질문은 참여자의 생각을 두드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경험이 쏟아져 나온다. 주도적으로 이야기하고, 듣고, 공감하고, 서로에 대하여 놀라움을 경험한다. 이 시간을 통하여 주제에 관해 참여자 주도적으로 인식 정리가 되고, 더불어 주제와 친해진다(익숙해진다).
교실에서 학습할 내용 관련 비디오 자료를 보거나 사전학습을 하는 것 처럼, 진행자인 나는 논문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한다. 논문의 목적에 대하여, 주요 논점과 전개에 대하여, 의미에 대하여 요약하고 짚어준다. '경험 공유'에서 안면을 텄던 터라 주제가 그리 낯설지 않다.
주요 내용의 key message와 조직 현장을 연결하는 쉬운 말로 만든 질문을 제공한다. 질문을 통하여 참여자는 생각할 기회를 갖게되고, 생각은 그룹에서 공유되고, 공유된 생각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거나 공감이 증폭되거나 새로운 의견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만난다. 다른 참여자의 경험이 매력적일 때 발생하는 경외감으로 인해 주장보다 듣기를 선택하는 참여자도 더러 있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반전을 이루어 모두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가는 국면을 제공하는 참여자도 있다. 모든 역동이 그룹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진행자는 흐름을 지켜보며 생각의 확장과 심층 탐색을 돕기 위해 약간의 질문이나 안내를 더한다.
그룹에서 논의된 내용을 전체 대화로 짧게 리뷰하고, 논문에서 제공하고 있는 개념과 비교할 필요가 있으면 같이 점검하거나, 그룹에서 발견하거나 새롭게 창안한 것을 나눈다. 논문의 핵심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현장에 어떤 insight를 가져가 실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역시 대화로 이루어진다. 세미나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룹에서 나눈 대화로 스스로, 함께 발견하고, 벤치마킹하고, 인식의 풍부해짐을 누린다. 학습이다.
남서진 CPF(Certified Professional Facilitator/CP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