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미학

공간의 여유가 마음의 여유를 만든다.

by 괜찮은사람

서진은 최근 쓰리룸 아파트에서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제한된 공간 덕분에 옷, 가구 등 모든 짐을 최소화했다. 행거에 가득 걸려있는 최소 세 달은 안 입었던 반짝거리는 새 옷 들이 눈에 걸렸지만 막상 와보니 가져온 그 옷들 중에서도 행거의 요정은 탄생했다. 물론 갑작스럽게 결혼식 등에 가야 할 일이 생길 때는 두고 온 옷들이 잠깐 생각나긴 했지만. 그것조차 하루 만에 배송되는 옷에 의해 대체되었다.


이사 온 곳은 나름의 '풀옵션' 원룸이었다.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100% 맘에 드는 '새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하루씩 날 잡고 청소를 해서 쓰니 나름 손길이 닿았다고 정이 드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냉장고는 꽤나 연식이 되어 보였는데, 냉장고에 뭔가 꽉 채워 넣으면 미지근한 아이스박스 수준으로 성능이 내려가곤 했다. 항상 냉동실, 냉장고에 뭔가 한꺼번에 꽉 채워놓고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살곤 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의 성에 청소와 재가동을 거치면서 냉장고 전체의 6-70%만 채우는 게 답이란 걸 깨달았다. 가뜩이나 소형 냉장고인데 거기에 반 조금 넘게만 쓴다고 생각하니 생수도, 음료수도, 냉동식품도 딱 필요한 만큼만 사게 되었다. 정사각형의 방 안에 생수, 휴지 등을 쌓아두게 되면 바로 방이 창고처럼 느껴지는 게 싫었다. 생수도 딱 한병, 음료수도 1-2캔, 반찬도 1-2개 정도. 오히려 적응이 되니 식재료 관리도 잘되고 메뉴 고민도 덜게 되었다. 외식이나 배달은 오히려 줄었지만 식생활은 딱, 적당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서진의 어머니는 항상 팬트리를 가득 채워놓곤 했다. 그래서 '샴푸'나 '식용유'같은 사소한 것을 찾는데도 온갖 물건을 끄집어내야만 했다. 결국은 어디선가 나타나긴 했지만 그 과정들이 왠지 힘이 빠졌다. '엄마는 왜 뭘 사놓고 어디 있는지를 몰라?'라고 악의 없는 질문이라도 던지면 발작 버튼이 눌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달라고 할 필요가 없어졌다. 반나절에서 하루이틀이면 웬만한 것들이 모두 배송되는 편리한 세상이다. 다소 배송료라는 프리미엄이 붙긴 하지만. 몇 겹으로 쌓아놓은 물건들이 없어지니 마음도 후련했다.


너무 작은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2단 행거에는 옷이 1/3 걸려있고 서랍들도 헐렁하다. 팬트리 따위는 없는 작은 사각형의 원룸이지만. 모든 게 그녀의 규칙대로 정돈된 공간에 서진의 마음에도 여유공간이 생기는 듯했다.



꽉 채우는 것보다

헐렁함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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