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축하

Happy birthday to me

by 괜찮은사람

매번 구경만 하던 한우를 집어서 장바구니에 고이 넣었다.


농협이라 그런지 수입산 소고기가 없다. 미국산이라면 맛있게 먹어줄 텐데. 사실 한우도 아예 먹지 못할 만큼의 가격은 아니었다. 그냥 왠지 그걸 집어서 장바구니에 넣기엔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게 들곤 했었다. 웃기게도 그렇게 나는 항상 나 자신에게 가장 인색했다.


'그래 생일 잘 보내'


라는 말을 끝으로 생일 D-1 엄마와의 어색한 문자가 끝난 줄 알았다. 한참 다른 일을 하다가 문자를 보니 '내일 생일밥 먹는데 써라'하는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내가 주로 쓰는 계좌에 입출금 알림은 없었기에 무슨 말인지 갸우뚱하다가. 내가 비상금 용도로 쓰는 계좌에 입금된 '100,000원'을 확인했다. 1분 정도 고민하다가 '그래 잘 쓸게 고마워'라고 문자를 보내고 마무리했다. 온전한 기쁨이나 행복이라기보다는 '어리둥절'함이 탑노트로 스쳤다가 미들노트로 '음.' 했지만 베이스노트는 '담담함'이었다.


사과와 함께 먹을 땅콩버터를 사러 나갔던 길이었는데 소고기와 레토르트 미역국 등을 담다 보니 거의 5만 원이 나왔다. 속으로 더 한번 '그래, 10만 원은 이런 돈이었어.'라고 한번 더 이유 모를 되새김질을 하면서 종량제봉투에 헐렁하게 담긴 물건들을 대롱대롱 흔들며 집으로 돌아왔다.


불과 몇 개월전만 해도 엄마랑 무언가 얘기한다는 것은 곧 불안과 분쟁의 시작이었다. 고작 2, 3개월 물리적으로, 심리적인 분리가 이렇게 변화를 가져온다고? 의심과 리뷰로 똘똘 뭉친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이렇게, 뭐. 담담하게 넘어가는 것도 낫배드 하다고 생각한다.


내일이 되면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생크림과 과일이 겹겹이 쌓인 조각케이크를 사야지.

누구와 함께 하지 않아도 담담하고 소소한 행복함을 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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