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떠서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버리거나 반대로 기분이 가라앉아서 우울해지지 않는 것. 기분이라는 울렁이는 그래프의 진폭을 줄이는 것이 요즘 최고의 관심사이자 과제다. 기분이 들뜨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고 후회하고 반대로 우울해지면 당장에 필요 없는 먼지가 쾌쾌한 과거사까지 집어삼키기 마련이다. 기분의 진폭을 감지하면 곧바로 측정 레이더가 움직인다.
'나 지금 너무 들떴나?'
감정 표현에 서툴 때는 감정을 상대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투명하게 내비치곤 했다. 그로 인해 상처받는 건 나 자신이었다. 나는 왜곡이 없는 평면거울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의 렌즈가 볼록렌즈나 오목렌즈, 심지어 왜곡이 심한 매직아이인 경우도 있었다. 내가 어떤 것을 보여주느냐 보다 상대가 어떤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키가 달려있다는 걸 몇 번이나 마음의 외상을 입고서야 알게 되었다. 오해에서 그치면 양반이었다. 나의 투명한 감정을 캡처하고 보정해서 아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차라리 둔감했더라면, 왜 그랬을까 이해해 보려고 반추해보지 않는 단순한 성격이었다면 좋았을까. 그래서 번거롭지만 유리의 종류를 다양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선팅 되어 안이 보이기보다는 본인의 모습을 비추는 유리부터 불투명 유리까지. 번거롭지만 이런 작업들은 나를 보호하는데 꽤나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이런 유리들을 갈아 끼울 힘조차 없을 때는 잠시 '휴식' 팻말을 다는데 그게 '평정심'이었다. 기분이 들뜨더라도, 우울하더라도. 웃지도 울지도 않는 중간의 상태. 맞춤 유리를 준비할 힘조차 없을 때 아주 좋은 셔터가 되어준다. 기분이란 건 쉽게 질문의 갈고리가 된다. '서진 씨, 요즘 기분 좋아 보이네?', '오늘 안 좋은 일 있어요?' 등 상대방에게 내 기분을 열어볼 수 있는 현관키를 내주는 것과 같다. 물론 진심으로 걱정이나 염려의 따뜻한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정황상, 맥락상 저런 질문들의 뒤에는 '내가 뭘 좀 더 알고 싶어'라는 악의는 없어도 장난으로 던진 돌로 개구리 다리를 분지르는 것과 같은 순수한 악함이 숨겨져 있다. 내 마음과 기분, 감정은 그 사람의 스쳐 지나가는 호기심과 도파민을 충전시켜 주기 위한 오락거리가 아니다.
평정심을 장착한 사람에게는 이런 호기심의 돌멩이가 날아오기 힘들다. '당신, 요즘 왜 이렇게 평온해 보여?'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종교와 관계없이 우리가 불상을 보면 눈을 감고 편안한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는 것과도 상통한다. 말처럼 쉽다면 정말 좋겠지만, 나도, 다른 사람도 부처가 아니기에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괜찮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기분이란 건 길어봤자 반나절, 하루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을 되새기거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것을 걱정하며 기분을 붙들고 있지 않는다.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배수구를 열어놓으면 처음에는 물 빠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지나면 배수구에 회오리가 생기고 '슉~'하는 소리를 내며 물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져 버린다.
가만히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그것은 기분을 닮아있다. 들뜬 기분이든 가라앉은 기분이든 배수구를 열지 않으면 결국 그 내용물은 변질된다. 나를 따뜻하게 감싸줬던 물이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 계속 받아두면 물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목욕을 시작할 때 매일 새로운 물을 받고 목욕이 끝나면 배수구를 뽑아줘야 한다. 그 기분이 흘러 내려가기까지는 답답하기도 아쉽기도 하겠지만 결국 '슉~'하며 언젠가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조에 물때가 끼어 미끌거리거나 배수구가 막힐 때도 있겠지만. 그때도 의연하게 욕조를 닦고 배수구를 청소하며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는 매일 새 목욕물을 받고 헌 목욕물을 흘려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