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고 재미있는 질문은 없는 걸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흥미롭지만 한편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서로 거의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작은 사회라도. 사회의 공식이 적용된다는 것은 슬프지만 웃기게도 현실이다.
2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다양한 사람이 한 지역에 모여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처음 "00님"하며 시작하여 취미와 고민 등을 나눌 때까지 느꼈던 생동감은 "근데 몇 년생이세요?"를 시작으로 막 불타기 시작한 불씨에 찬물을 끼얹듯이 푸슈슈 연기를 내면서 사라졌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몇몇이 "00 언니"라는 명칭을 주고받을 때부터 뭔가 이질감이 들었다. 난 이곳에 누군가의 '언니'나 '동생'이 되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다. 그저 '나'로 존재하고 싶었을 뿐인데.
"투덜이네."
만난 지 2주 차 되던 날, 그녀는 내가 그녀보다 2살 아래라는 사실을 알고는 슬금슬금 침범했던 '판단'이라는 선을 넘어섰다. 더 이상의 조심스러움도 없었다. 그저 나는 불만이 많고 평소 '사회적이지'않은 투덜거리는 투덜이로 낙인찍혔다. 나이라는 건 참 재미있다. 지속적으로 추측하는 것들에 질려서 나이를 알려주면 자기의 위인지 아래인지 상하관계를 나누고 그에 맞춰 대화를 조절한다. 그 속엔 그 사람의 인생이란 콘텍스트는 중요치 않다. 심지어 최고령의 참가자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무언가에 '눈물을 쏙 뺄 정도의 인생 조언'이라는 카드를 자랑스럽게 자필로 써 내려가기도 했다. 이 얼마나 무지하고 부끄러운 행동인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나보다 미성숙하고 경험이 적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들이 지칭하는 '언니', '오빠'의 조언이 필요하지 않다. 수요 없는 공급은 가치가 낮아진다. 본인들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반말을 사용하고 '언니',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본인을 그들보다 낮춘다. 한국의 아름다운 유교적 아름다움일까? 모르겠다.
재미있는 건, 이 나이 논쟁은 아마도 꽤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슈라는 사실이다. 지역 축제에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모인 6,70대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한다.
"아니, 내가 지보다 한 살 더 많잖아. 근데 왜 너,너 거리냐고. 나원참."
도시락이 다 팔려 퍽퍽한 맥반석 달걀을 씹으면서 흥미롭게 얘기를 듣고 나오니 매표소 앞에 두 장년 여성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제 내년이 되면 65살인거지."
아마도 새로운 나이정책에 유교적 서열 정리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처음에 한 무리로 만났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나이대에 맞게 그룹이 나눠진다. 어느 곳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나는 혼자이길 택한다. 이곳에서는 사회적 미소와 가식의 유용성을 아직 찾지 못했다. 어느 곳에 가나 '기분이 안 좋은 줄 알았어', '어디가 아픈 줄 알았어'. 등의 말은 유쾌하지 않다. 마치 '내가 보기 불편하니, 억지로라도 웃어.'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그게 갑자기 원치도 않게 생긴 '언니'의 말이라면 더욱.
부디 '몇 살이세요'라는 물음대신 '좋아하는 색깔이 뭐예요?'라든 시시하고 시답잖은 질문들이 스몰톡의 초두에 자리를 잡길. 그래서 우리의 대화가 좀 더 유연하고 각자의 총천연색으로 빛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