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님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시는 것 같아요."
처음에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대단하고 잘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들뜨기도 했었다. 하지만 관찰자적 시점에 선다는 것은 때로는 정보 과잉을 넘어 마음의 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언제부터 내가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에피소드가 하나 떠올라 적어본다.
담임 선생님은 좀 별난 사람이었다. 별난 행동 중 하나가 수업 중에 딴짓하는 중인 사람을 발견하면 기습적으로 어떤 단어나 퀴즈를 빠르게 말하고 집어내서 벌을 주는 행동이었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에 대한 가치관이 말랑말랑할 때였지만. 왠지 모르게 선생님을 골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수업시간에 귀는 열어두고 창문 밖을 보며 멍을 때렸다. 당연히 그 순간 선생님은 "2x4는?" 이런 식으로 수업 맥락과 아무 상관없는 깜짝 퀴즈를 내고 나를 지목했다. 그때 태연하게 "8이요."라는 식의 대답을 하고 속으로 매우 고소해했던 기억이 있다.
단체생활을 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캐릭터를 관찰하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소름 끼치고 음산한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근데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숨을 마시고 들이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 사람은 이럴 때 당황하네', '이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네.' 등의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래서 이번에 지방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이 끝나가는 이 시점이 되니. 한 명 한 명의 캐릭터의 데이터가 쌓이고 그 맥락에서 나오는 행동들을 관찰하는 것이 꽤나 흥미롭다. 처음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단체 활동이 끝나기 바쁘게 개인 스케줄을 하러 뛰어가거나 단체톡도 읽는 둥 마는 둥 하던 사람이 갑자기 밀려오는 아쉬움인지 급하게 친목의 의지를 불태운다던가. 활동 내내 컨디션 타령하며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던 사람이 '나 이제 회복되어서 신나'라는 식으로 갑자기 혼자 만의 2막 공연을 시작하거나. 고전 소설의 캐릭터 같지 않고 얼마나 입체적이고 변화무쌍한지(!) 역시 삶 속에서 관찰하는 사람들의 삶이 가장 흥미롭다.
아뿔싸.
이번에도 '나'를 찾기 미션은 실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