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한 것의 유용함

by 괜찮은사람

어젠 구에서 진행하는 김장하기 프로그램을 다녀왔다. 사실 그다지 김치를 많이 소비하지도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시판으로 파는 김치로도 충분하기도 하다. 그래서 주변에 김장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왔어.라는 이야기를 하면. 왜?, 굳이?, 열심히 사는구나. 등등의 무용함에 대한 감상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에 하나씩 댓글을 달아 의견을 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퇴사를 했는데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것 같아서 불안해요. 어떤 (유용한 것)을 하면 좋을까요?'


라는 글 한 줄에서 느껴지는 애씀과 절박함이 느껴져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회사를 다니다가 자의든 타의든 일을 쉬게 되면 밀려오는 시간의 쓰나미에 당황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1분 1초를 아끼며 어떤 길로 가야 출근시간을 줄일까. 아침에 어디서 커피를 사야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대기가 길지 않을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예산과 인력구조를 어떻게 짜야한 푼이라도 더 아껴서 클라이언트의 환심을 살까. 그야말로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삶의 중간에 서있었다. 퇴근시간에 누군가 멀리서 다가와 엘리베이터를 잡거나 지하철역에서 핸드폰을 보며 느릿느릿 걷는 사람 때문에 비교적 한가한 차를 놓쳐버리면 손해 본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렇게 해서 집에 돌아오면 정작 나를 위해 한 끼를 차리거나, 누군가와 마주 앉아 밥 먹을 에너지가 없어 최소주문 금액에 맞춰 이것저것 욱여넣은 알 수 없는 옵션들이 담긴 비닐봉지를 받아 들곤 했다.


회사를 당장 나왔을 때도 그랬다. '이 리듬을 잃으면 안 돼.'라는 생각으로 누군가에게 실직 상태라는 걸 들키지 않으려는 것 마냥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악다구니를 썼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서 내리 자거나, 구역질이 올라와서 초록빛이 나는 토를 그렘린처럼 해댈 때도. '난 왜 이렇게 나약하지?'라는 생각뿐이었다. 병원을 가서 쉬라는 말을 들어도 '쉬어서 나을 거면 병원에 안 왔죠'라는 속마음으로 마음이 들끓곤 했다. 일 생각을 하지 않을 때도 별로 다르진 않았다. 누구를 위해서인지 모를 화려하고 재료가 오만가지 들어가는 레시피들로 음식을 기껏 만들어놓고는. '생각보다 별로네.'라고 느끼고는 내 맘(맛)대로 2, 3가지 재료만 넣은 소박한 음식에 기꺼이 기뻐지곤 했다.


이 모든 것들의 과정 속에 서있는 지금. 무용한 것들이 어떠한 것보다 쓸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껏 무용하게 지내봐야 내 마음이 하는 소리가 모기소리 마냥 올라온다. 뿌연 흙탕물인 줄 알았던 마음이 비로소 흙, 먼지를 가라앉히고 맑은 색을 내보인다. 그 곁에 앉아서 가라앉은 것들이 돌인지, 유리조각인지, 조개껍데기인지 하나씩 찬찬히 훑어본다. 그러려면 조금 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계속 부산스럽게 흔들면 흔들 수록 보이지 않는다. 마음속의 부산물이 내려앉을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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