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만한 위로.

by 괜찮은사람

한 달간의 여정을 마치고 오니 한 달 동안의 무거운 공기가 집안에 갇혀있다. 여름 내내 늘지 않던 습기제거제의 물이 '교체 알림 선'까지 가득 차서 3, 4통을 따서 배수구에 흘려버렸다. 빈 어항 속에서도 수초는 무성하게 자란 가늘지만 건강한 새 뿌리들을 살랑거리고 있다. 문득 물고기 생각이 났고 한 달 전에 수족관에 맡기고 온 녀석을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핸드폰을 들고 수족관 사장님과의 문자내역을 찾다가 '잘 부탁드릴게요'라는 한 달 전 나의 메시지에 멈췄다. 불현듯 뭔가 두려움이 올라와 핸드폰 화면을 꺼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왠지 '물고기가 죽어버렸어요.'라는 악몽을 꾸었고 일어나서 수조를 정리하고 히터를 맞췄다. 여름에는 작동하는 건가? 싶었던 히터에 빨간 'ON'표시가 들어왔다. 어항에 손을 대보니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러고도 하루가 지나서야 '사장님, 물고기 찾으러 갈게요.'라는 문자를 보내고서 마치 썸남의 답장을 기다리듯이 마음이 바짝 타들어갔다. 10분 뒤에 '내일 그럼 2-5시 사이에 오세요'라는 답장이 왔다. 그 문자를 보고도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래, 죽어도 어쩔 수 없는 거야.'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수족관 입구의 문에 자물쇠를 확인하고는 문자를 보내려다가 맞은편으로 향했다.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 건물 지하에 수족관을 두고 이사작업 중이시라는 한 달 전 말이 생각나서. 철문을 여니 온기와 습기가 확 와닿는다. 니모 닮은 물고기들이 일렁일렁하고 큰 수족관에서 신나게 헤엄치고 있다. 뭔가 헤어스타일은 바버샵 스타일이신데 그 아래로는 영락없는 수산시장 사장님 포스인 사장님이 나오셨다.


"잘 있어요. 잡으러 가시죠!"


내 얼굴에서 걱정이 스친 걸까? 사장님은 만나자마자 호방하게 나에게 인사대신 '잘 있어요'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우리 집 어항의 10배는 되는 큰 어항에서 호강을 하고 있던 물고기를 만났다. 이건 수족관에서 처음 물고기를 데려올 때도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느낌이다. 이 녀석과 만난 지 3개월 되었을 뿐인데 '재회'라는 감정까지 느끼다니.


뜰채를 들고 어항에 선 사장님 너머로 유유히 헤엄치는 녀석이 보인다. 처음 데려올 때부터 천진난만하고 활발했던 그 모습 그대로다. 저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신사임당 1장도 안 되는 녀석이 뭐라고. 살짝 울컥했다. 투명 봉투에 담긴 물을 보니 녀석이 정말 '호텔'에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항만 봤을 땐 초록빛인 줄 알았는데 녀석과 함께 옮겨진 물은 부유물이라고는 없는 깨끗한 물 그 자체였다. 거기에 어마어마한 비주얼의 산소통에서 산소까지 넣어주시고.(사실 녀석은 위로 올라와 호흡을 하기에 필수적이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추워진 날씨에 녀석이 담긴 봉지를 옆구리에 끼고 잘 돌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아.. 그.. 귀엽더라고요."


사장님의 한 마디에 무장해제 되어 '그쵸, 얘가 좀 특별하죠?'라고 줄줄이 푼수를 떨뻔한 마음을 꼭 부여잡고.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버스를 타고 걷는 시간에도 혹여나 저온 쇼크로 잘못되지는 않을까 그야말로 잔발로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따뜻한 실내에 꺼내놓으니 맘이 놓여서 그제야 맥주를 한 캔 땄다.


그새 돌아오는 길에 봉투 안에 영역표시를 해놓았다. (너도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니...?)


처음처럼 봉투째로 어항에 띄워 물을 맞대주고 녀석의 반응을 보면서 조금씩 봉투 속 물과 어항 물을 섞다가 빼꼼 입구를 열어놓았다. 기죽음이라고는 없는 녀석은 약간 둘러보는 듯하다가 봉투 속에서 어항 밖으로 몸을 쏙 빼서 유영했다. 처음 데려왔을 때처럼 새로운 집을 보는 양 구석구석 둘러보고 관찰한다. 불을 꺼두고 어항 조명만 켜두고 조용히 녀석을 바라본다. 앞에 사람이 있으니 먹이를 주는 줄 알고 그러는지, 아니면 한 달 만에 반가움 표시인지 검지 손가락보다도 짧은 몸을 좌우로 흔든다. 어항 옆에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 트리 조명을 밝혀주고 잠자리에 들었다. 뭔가 붕뜨고 낯설었던 집이 다시 편안하게 느껴진다.


손가락 보다도 작은 너에게서 오늘도 위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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