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의 절반인 보름 남짓 지냈을 때 과제가 주어졌다.
주제는 '00에서 만난 나'.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주제에다가 '쉼'과 '힐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10분이라는 발표 시간과 장소, 자료 제출 등에 껄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할 건 빨리 끝내야지 하고 GPT를 켜서 와르르하고 내가 발표자료에 담고자 하는 말을 쏟았다. 어쩔 땐 질투도 무력감도 느끼지만 여전히 AI와 친해지는 중인 단계인 나로서는 AI가 뽑아낸 타이틀이 썩 맘에 와닿았다.
'나와 닮은 곳 00'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왔다고 하면 그런 사람이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깍쟁이겠네'라는 농담을 듣곤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 달의 시간 속에서도 내가 원래 사용하던 바디워시에 샴푸, 트리트먼트까지 모두 구비해 두는 면에서는 인정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느낀 건 생각보다 내가 러스틱한 면이 있단 거였다. 다들 경악했던 터미널 근처의 연식이 물씬 느껴지는 모텔에 도착했을 때도 나는 신나서 동영상을 찍었다. 절반쯤 사용한 남자 스킨과 로션, 도끼빗, 마치 커다란 목련 4송이가 떠있는 것 같았던 형광등까지도. 꽤나 가정집의 무엇과 같아서 정감이 갔다. 그 와중에 티브이는 넷플릭스, 유튜브가 연결되는 스마트티브이인 점 마저도.
처음으로 저녁 자유시간이 주어진 날, 모두가 그곳에서 핫하다는 지역 브루어리에서 첫 술자리를 가질 때 나는 이미 냇가를 뛰고 있었다. 강보다는 좁고 냇가라고 하기엔 드넓은 천(川) 변을 뛰고 있자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제일 짜릿했던 건 인구밀도였다. 한 시간가량을 뛰면서 본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고 그 특유의 거리감과 서로에게 무심한 느낌이 나를 전율하게 만들었다. 대충 주워 입은 운동복에 꼬질하게 캡모자를 뒤집어쓴 상태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곳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내 키보다 훨씬 큰 갈대밭과 연잎이 가득한 조용하고 넓고 아름다운 도시의 정원에 반해버렸다.
때로는 불편하기도 했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곳을 떠나온 지금 계속 맛있는 음식이 생각나는 것처럼 그곳이 생각난다. 인구밀도의 탓이 가장 클 테지만 뭔가 느릿하고 벙벙한 공간감이 '너도 여기 있어도 돼. 여긴 넉넉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현실은 당장 돌아오는 서울의 지하철에서 캐리어와 함께 쥐포처럼 구겨진 상태였지만 마음 한구석에 도피처가 생긴 것 같아 든든했다. 여느 때고 찾아가도 '왜 왔어?'라고 묻지 않을 것 같은 곳. 항상 나라는 인간 하나가 숨 쉬고 달리고 살 수 있는 공간 정도는 넉넉하게 줄 것 같은.
기차 여행이 말 그대로 트렌드처럼 번지고 모든 지방의 역사들이 들썩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처음 간 곳이 '나주'였다. 말 그대로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나서 처음 내 의지로 밟아서 찾아간 곳이라 그런지 기억에 선명하다. 그 당시에는 무전여행급의 뚜벅이여행이어서 기껏해야 버스나 도보로 돌아다녔던 게 전부이지만 넓은 하늘에 펼쳐졌던 노을과 공간감이 주는 만족감에 행복했다. 하나로마트에서 멜론을 사서 길에서 까먹고 시립도서관 같은 곳에서 책을 보다가 책상에서 졸았다. 지나고 보니 그게 박(참외, 멜론 등)과 알레르기로 목이 붓는 증상과 어지러움, 졸음이란 걸 깨달았지만. 행복한 낮잠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도 나는 계속 마음 한편에 그리움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서울'촌년이 아닌 서울'촌년'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