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유지의 쓸모

by 괜찮은사람

얼마 전부터 카페에 가는 것도 결심이 필요해졌다.

귀찮음이 아닌 명백한 돈 문제였다.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온도에도 난로 하나에 넷이 모여 앉아 몸을 녹이던 야채가게. 그곳의 사장은 지하철 역 한 개역을 망라하는 거대한 신규 브랜드 아파트의 입주했다. 그 야채 가게의 앞에도 지명과 브랜드를 합친 거대한 아파트 대단지가 있다. 귤 한 박스를 주문하며 자랑스럽게 아파트 이름과 동 호수를 적으며, '배달 빨리 되죠?'라고 말하는 나이 든 여자들은 묘하게 위화감을 조성한다. 아마 야채가게 사장은 새벽잠을 쫓으며 아침부터 무거운 박스를 나르고, 언 몸을 난로에 녹이며 종일 일하고 해가 떨어지면 브랜드 아파트로 퇴근할 것이다.


결혼만큼이나 그 사람의 이성관이나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나는 착한 사람이 좋아', '나는 화려한 스타일은 별로야'라고 떠들었더라도. 결국 식장의 그 사람 옆에 서있는 사람을 보는 것만큼 그 사람의 선호도를 솔직하게 알 수 있는 척도가 있을까.


언제부턴가 집도 그렇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묻는 패턴이 묘하게 변했다고 느낀 시점이 있다. 그건 아마 내가 충분히 '자가'를 마련할 충분한 시간과 커리어를 가졌다고 짐작하기 때문일까. 서울이요, 하면 어떤 구인지 묻고 동네를 묻는다. 드물긴 하지만 '설마 000 아파트요?'라는 사람도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공공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아이들끼리 따돌린다는 뉴스를 봤다. 어떤 이는 어린아이들이 왜 이렇게 속물적일까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안다. 아이들은 뭐든 따라 한다는 것을. 아니 나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을 거친 어른들이라면 모두 안다. 불편하니까 아이들의 잘못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아마 아이들은 부모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모방했을 것이다. 새롭지도 않다.


나는 작년에 꽤 비싼 선택을 했다. 절대적인 비용이라기보다는 1. 어떤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고 2. 당분간 월급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간임대에서는 전세사기가 만연해서 눈물을 머금고 월세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1층에 상업시설이 있는 상가주택의 작은 원룸. 말 그대로 직사각형의 네모반듯한 원룸에는 1인용 침대를 넣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1/3이 날아갔다. 바라는 것은 자발적 고립이고 은둔이었다. 어디로부터든, 누구로부터든 도망쳐서 조용히 있고 싶었다.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이 집을 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햇볕이었다. 공간은 작았지만 아침에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방 안은 볕으로 가득 찼다. 그냥 그 볕에 몸을 맡기고 속초 오징어처럼 몸과 마음을 말리고 싶었다. 어린 왕자에 나왔던 구멍 세 개가 뚫린 상자처럼. 네모난 상자지만 그 안에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첫날부터 배수구를 타고 올라온 바선생이 마치 신호탄처럼 마음의 평화를 와장창 깼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작은 빌라는 하루 종일 입주민과 택배기사 등의 부지런한 하루가 고음질로 전달됐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아이가 몇 시에 집에 돌아오는지, 그 아이가 얼마나 목청이 크고 떼를 많이 쓰는지. 말 그대로 TMI들이 쏟아졌다. 기운이 없어 침대에 누우면 창 밖으로 행인들의 기침소리부터 술에 거하게 취해서 떠드는 소리가 올라왔고 담배냄새가 여과 없이 침투했다. 여름에도 창문을 열고 잠든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창을 닫아서 조용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1층의 영업시간에는 말소리가 침대 베개를 스피커 삼아 올라왔다. 누군가 꿈속에서 귀에다가 뭔가 듣기 싫게 속닥거려서 깼는데 말소리가 올라온 적이 있을 정도로. 이 집의 키워드는 '침범'과 '통제불능'이었다.


임대인에게 해충 문제나 환경문제를 얘기했을 때 늙은 임대인은 나에게 '젊고 똑똑한 네가 스스로 해결해 봐라'라는 신개념 임차인 셀프관리론을 시전 했다. 내가 사용하는 10개 남짓의 계단. 그마저도 현관 앞에 먼지덩어리가 굴러다니는 수준으로 소홀한 청소에 월세 외에 10만 원가량의 관리비를 지불하고 있는 걸까? 시세대비 최소 수준의 보증금과 월세였지만 매 달 월세 이체날이 될 때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가치에 과소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속이 답답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노동력과 맞바꾼 돈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는 걸까.


결국 나는 이 집에 이사 온 순간부터 공공임대에 더 치열하게 매달렸다. 가진 것도 없고 가지게 될 것도 없다는 사실이 이점이 되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주거비 문제를 해결해야 일자리도, 다른 생각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고를 체크하고 내 지원자격으로 유리한 배점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작년 경쟁률은 어디였는지. 수능 때보다도 더한 정성을 쏟았다. 결과적으로 운이 좋게도 몇 가지의 옵션을 어렵게 손에 쥐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가뭄에 여기저기 우물을 파다가 빗방울을 맞은 것 같은 안도감. 하지만 답이 정해져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도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내 입안을 깔끄럽게 했던 건 집의 컨디션도, 위치도 아닌 공공임대 아파트라는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소유론에 절어서 살았던 내 마음속에서 돈 문제 때문에 수그리고 있던 웃긴 자격지심이 까딱하고 고개를 든 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돈을 남에게 꿀려 보이지 않기 위해 쓰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바라보기 전에 그 사람이 걸친 옷과 외모와 브랜드를 스캔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뭐가 달랐는가, 달라지고 있는 건가, 달라지는 척 중인 건가. 적어도 이제 나는 나에게 좀 더 친절해지고 싶다. 품위유지를 위해 적당한 동네에, 적당한 새집을 유지하느라 나 자신을 원치 않는 일로 몰고 싶지 않다. 이제 집에 들어갔던 돈으로 사치처럼 느껴졌던 운동도, 장 볼 때 가격 낮은 순으로 정렬하곤 했던 장보기도 달라질 것이다.


집은 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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