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et
그 엄마는 남 욕을 너무 하더라고.
그 사람은 뒷담화를 너무 많이 해요.
라고 지나가며 남의 욕을 하는 어떤 사람에 대한 '남의 욕'을 하는 사람들.
아니, 난 뒷담화가 싫다는 거지!
하며 같은 부류로 엮이는 걸 질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백하다. '남의 뒷담화를 하는 것'이라는 '남의 욕'이 현재 진행 중이다.
카페에서 하기 싫은 일을 겨우 끝낸 참이었다.
평일 낮, 옆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인 모임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마침 이어폰을 너무 오래 착용해서 귀가 아프기도 했고
카페라는 공공장소에서 오간 대화니 합리적인 도청(?)이라 하자.
그들에게 카페에 혼자 온 손님은 게임 속의 NPC(Non playing Character) 정도이니.
근황 토크 > 부모님 건강 토크 > 동네의 핫한 새 헬스클럽 토크를 거쳐 다다른 정점은 역시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게 좋은 이야기든, 사실 나쁜 이야기가 더 재밌다는 건. 라면이 몸에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미친 듯이 땡겨서 야밤에 물을 올리는 정도의 귀여운 악행 아닐까?
흥미로웠던 건 그 뒷담화가 이들을 학부모와 부모를 봉양하는 자식의 위치에서 내려와서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뒷담화 속의 '나대고', '싸가지 없는' 학부모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는 모두가 10대 소녀 같이 보였다. 나는 000한 사람이 싫어. 라고 말하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뒤집어보면 나는 000을 중요시해.라는 뒷면이 나온다.
꼴 보기 싫은 사람을 벌하는 법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그 사람의 실체를 까발려 조직에서 고립되게 만드는 적극적인 방법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건 철저한 무시다.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정신건강에 굉장히 좋은 방법이다.
'싫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나는 진 거다. 그 사람에게 '싫다', '싫은 이유' 등의 내 시간과 감정의 에너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조차 아깝다고 생각하자. '그냥 넌 그렇게 살아'하고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간다. 이 마음은 어찌 보면 싫은 감정의 극단으로 가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하는 마음의 합리적 실현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혐오와 역겨운 감정이 가시지 않고 밤잠이 안 오는 순간도 있다. 그때마다 생각하자. '이 부정적 관심마저 그 사람에게 가서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0.000000000...1초도 쓰고 싶지 않다. 그렇다.
나는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 같은 말을 믿지 않는다.
나쁜 놈은 아마 나쁜 짓을 하면서 이제까지 살아왔던 것과 비슷하거나, 좋거나, 나쁘게 살아갈 것이다.
근데 그게 내 삶에 무슨 상관일까? 나는 나의 삶을 살기 위해 에너지를 세이브하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서서히, 그 사람은 잊혀져 간다.
한 사람에게 없는 존재가 되는 것만큼 잔인한 복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