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 고백은 너의 여기가, 이런 면이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상처와 치부를 너에게는 보여줄 수 있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서유미의 『틈』 중에서
『틈』은 삶의 균열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결혼 후 자녀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전업 주부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어느 가정이든 있는 골칫거리 한, 두 가지에 가정을 이루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꿈, 직장을 뒤로한 아쉬움을 제외하면 말이다.
여느 날과 같은 날이었다. 남편과 그 여자를 보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그날 남편은 일 때문에 박 과장을 태우러 나간다고 했다. 그러나 장을 보러 가는 길, 남편의 차를 우연찮게 마주친다. 남편과 그 옆에 탄 목선이 가느다란 여자도 본다.
이쯤에서 박 과장이 여자인가 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삶에 균열이 간, 틈이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남편의 직장 동료 박 과장이 여자라는 정도로는 약하다. 더 센게 있다.
남편은 주인공과 연애할 때나 보이던 미소를 지으며 일 때문에 태우러 간다던 박 과장이라는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게 아닌가.
텔레비전 드라마라면 주인공의 복수극은 이제 막 시작돼야 한다. 그러나 이건 현대소설이다. 이후 전개는 꽤나 잔잔하고 또 따뜻하다.
삶에 갑작스레 난 균열에 주인공은 어쩔 줄 모른다. 아이스크림을 퍼 먹거나, 사우나에 가 땀을 빼거나, 끊었던 담배를 피우는 게 고작이다. 이 중 무엇도 균열을 메워주지는 못한다. 그 사이 균열은 더 커지기만 한다.
한번 생긴 균열은 세 가지 경로를 밟게 된다. 커지거나, 그대로이거나, 메워지거나. 보통 한 번 생긴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러나 다행히도 『틈』에서 균열은 메워진다. 사우나, 흡연실에서 만난 아파트 주민이자 자녀의 친구 엄마들과 각자가 가진 아픔을 나누면 서다.
『틈』은 피부에 상처가 나면 후시딘을 바르듯, 인간이라는 존재는 삶에 상처가 나면 연대와 공감을 통해 치유받고 또 다른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라고 이야기한다.
『틈』에는 사랑과 삶, 관계에 대한 주옥같은 문장이 가득하다. 많은 문장이 빛나지만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한 문장을 꼽자면 다음이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랑 고백은 너의 여기가, 이런 면이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상처와 치부를 너에게는 보여줄 수 있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이 문장은 ADHD를 앓는 아들을 둔 민규 엄마가 남편과 사랑에 빠진 순간을 묘사한 문장이다. 둘은 대학원에서 만난 사이로, 담배를 피우며 친해졌다. 둘 사이가 극적으로 가까워진 건 서로의 일기장을 보여주면 서다.
일기장에는 상처와 치부, 여과되지 않은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 속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창이 있다면 그건 분명 일기장일 것이다. 이런 일기장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용기를 냄으로써 둘은 각별한 사이가 된다.
서로의 내면을 투명하게 내보이고 더 깊이 이해하고, 위로받는 경험은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상처 입은 주인공이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파트 주민이자 자녀의 친구 엄마들과 각자가 가진 아픔을 나누면 서다.
『틈』은 중편 소설이다. 다 읽는데 한,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다음은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이다.
누군가에 대해 알게 되는 건 길이가 아니라 깊이라는 걸 시간이 아니라 순간이라는 걸 절감했다. 민규 엄마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여자는 안도했고 좀 더 다가앉았다.
그 담배를 비벼 끈 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의 가장 안쪽 서랍에 들어 있는 일기장을 꺼내 상대에게 보여주었다. 너라면 마음껏 읽어도 좋아. 어떤 사랑 고백은 너의 여기가, 이런 면이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상처와 치부를 너에게는 보여줄 수 있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 장면과 순간이 없었더라면 두 사람은 서로를 결혼상대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 다 결혼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므로, 네가 아니었으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라는 말은 몇 년 동안 최고의 찬사처럼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