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산책을 나섰다. 12월의 끝자락, 한반도를 휘감은 시베리아 북풍은 위세가 대단했다. 겹겹이 옷을 껴입었는데도 머리끝이 쭈뼛 섰다. 돌아갈까, 싶었지만 이미 나온 거, 한 번 걸어보자 싶었다.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살과 살이 맞닿는 부위에 습기가 느껴졌다. 겹겹이 껴입은 옷과 두툼한 패딩 속이 점차 따뜻해진 영향이었다. 패딩과 옷이 스미는 한파를 막고, 패딩과 옷 사이에 갇힌 체온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열기로 변해있었다. 코트를 입고 나왔다면 벌써 한기가 온몸을 스몄을 게 분명했다.
한겨울, 우리가 패딩을 사랑하는 이유다. 어느 순간부터 패딩은 겨울의 주류가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코트가 대세였다면, 2010년대 이후 패딩이 겨울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2010년대 초중반에는 이른바 헤비다운이 등장했는데, 아마 고가 패딩 시장의 개화기였던 것 같다. 이때 당시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패딩이 있는데, 바로 안타티카다.
안타티카를 발음할 때마다 어떤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 하필 패딩 이름을 안타티카로 지었을까. 왜 하필 디 아틱(The artic·북극)도 아닌 안타티카(Antartica·남극)일까라는 궁금증 말이다.
안타티카는 영어로 Antartica다. 우리말로 남극이다. 남극은 북극의 반대편이라는 뜻에서 남극이라 이름 붙었다 한다.
인류 탐험사에서 먼저 발견한 극지방은 북극이다. 자연히 북극의 명칭이 먼저 붙고 이후에 발견된 또 다른 극지방을 남극이라 칭하게 됐다.
남극의 이름에는 이 같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북극을 뜻하는 Arctic에 반대를 뜻하는 전치사 ‘ant(i)’가 붙고, 명사형 어미 a가 붙어 오늘날 Antartica(남극)이 됐다.
남극(ANTARTIC·왼쪽)과 북극(ARTIC). 남극은 바다고 북극은 육지다. 남극은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고, 북극은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다. 이미지 캡처=나사 홈페이지
북극은 바다고 남극은 육지다. 더 정확히는 남극은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고, 북극은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다.
그래서, 어쩌라고? 바다고, 육지고 간에 추운 건 매한가지 아닌가라고 물어볼 수 있다. 아니다. 추위에도 ‘급’이 있다.
육지와 바다, 어디가 더 추울까.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만 비교해봐도 답은 쉽게 나온다. 육지가 더 춥다. 시베리아 대륙을 떠올리면 된다. 그렇다면 남극과 북극 중 얼음이 더 두껍게 어는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남극이다.
쉬웠나.
그렇다면 얼음이 잘 얼지 않는 곳은 어딜까.
북극이다.
왜일까. 북극은 바다라고 했다. 바다는 해수, 곧 소금물이다. 소금물은 여간해서는 잘 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아무리 추워도 얼음이 잘 얼지 않고, 얼더라도 얇게 어는 게 고작이다. 지구온난화 탓에 빙하가 무너져내리는 영상을 봤다면 십중팔구 북극이다.
북극과 남극 중 더 추운 곳은 어디일까. 길게 생각할 필요 없다. 쉽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게 바로 답이다.
얼음이 더 두껍게 어는 남극이다. 남극 대륙 대부분 지역에서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다고 한다. 남극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 49℃다. 지구에서 가장 춥다.
반면 북극은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34℃다. 남극 대비 약 15℃ 따뜻하다. 에스키모가 북극에 거주하는 이유다. 반면 남극에 터전을 잡은 인류는 탐사대를 제외하고는 여태껏 없다.
북극의 여름은 따뜻하다. 기온이 영상까지 오른다. 모기가 출몰할 정도다. 남극의 여름 기온은 영하다.
이쯤 되면 안타티카가 왜 안타티카가 됐는지 알 만하다. 지구상 가장 추운 곳이 남극이고, 이 남극 추위에도 끄떡없다는 의미에서 2010년대 중반부터 한반도 겨울을 책임지는 헤비다운의 이름이 안타티카라고 붙여진 것이다.
헌데, 한국 겨울 날씨가 안타티카까지 필요한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도서지역을 제외하고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줄임말 ROK 알오케이) 육지 62개 지점의 1991~2020년 평균값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가장 추운 지역인 대관령이 7℃이고 가장 온화한 부산이 15℃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 49℃인 남극 대비 적게는 56℃ 크게는 64℃ 차이 나는 것이다.
겨울로 한정해 보자면 가장 추울 때인 1월의 평균 기온은 영하 6.9℃에서 3.6℃정도다. 여전히 남극 대비 42℃ 가량 높다.
안타티카가 따뜻한 이유는 인체공학적 설계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거위 솜털(구스다운)이 많이 들어가서다. 안타티카는 지구상 가장 추운 곳이라는 남극의 운석 탐사 대원들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 뿌리다.
우리나라 겨울 기온을 고려하면 필요 이상의 거위털이 들어간 셈이다. 거위털을 채취하는 과정은 윤리적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남극에 살지도 않는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거위털을 취하는 것은 아닐까. 이 과정에서 거위는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받는 게 아닐까.
한겨울 끝자락, 산책을 다녀온 후 괜히 머리가 복잡해졌다. 안타티카로동물권을 떠올린다면 유난일까, 위선일까. 남극과 대한민국, 거위 우리 모두에게유익한 선택이 과연 있기나 할까. 모쪼록 그 선택이 남극과 북극 간 거리만큼이나 너무 먼 것은 아니길, 해서 모두에게 이로운 대안이 나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