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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바라나시로 가는 3등 기차

인도가 점점 재밌어진다.

 타지마할을 본 뒤에 숙소로 들어와 진흙탕을 지나 온 신발을 씻었다. 숙소가 싸고 좋아서 하루 정도 더 머무르면서 여유를 즐겼다. 룰루랄라 에어컨이 나오는 숙소에서 하루 종일 뒹굴 거리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인도의 기차는 에피소드 덩어리이다. 다리 아픈 할머니가 예약되어있는 1층 침대칸에 누워 일어나지 않는가 하면,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물건을 들고 들어와 사고 파는 행위를 하는 등의 에피소드들을 여행자들의 입술을 통해 많이 들어왔기에 우리는 아그라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인도의 3등 기차석을 타기로  마음먹었다.

기차를 타기 전에 아그라에서 산 바지가 너무 작아서 교환하러 가는 바람에 기차역에 헐레벌떡 딱 맞추어 도착했다. 흥분된 마음으로 기차 안을 돌아다니는데 지정된 좌석이 없다. 우린 그냥  빈자리에 누워 검표원을 기다렸다. 얼마 뒤 검표원이 와서 티켓 검사를 하더니 한 자리가  예약되어 있으니 1층 침대로 내려오라고 하였다. 밤 11시, 캄캄한 기차에 수상한 사람들이 가득한 기차에서 짐 많은 동양인 여행객이 1층 침대로 내려간다는 것은 매우 떨리는 일이었다. 신발을 훔쳐가진 않을까. 가방을 털어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리 속에 스쳐갔다. 그런데 뭐 어쩔 수 있나.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려가서 1층 침대에 짐을 놓고 누웠다. 그리고 너무 피곤했기에 금방 잠이 들었다.  


근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팔을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지나가는 사람이 가방으로 내 팔을 건드린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잠든지 한 시간 정도 후였다. 난 궁시렁 거리면서 다시 잠들었다. 근데 얼마 뒤에 다시 발가락 쪽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깼다. 보니까 어떤 작은 벌레가 내 발가락에 있었다. 나는 벌레를 떼어내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자다 깨다 자다 깨는 과정을 얼마나 했을까. 눈을 떠보니 날이 밝았다. 밝은 햇살과 동시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4명의 인도인이었다. 침대 기차 칸의 동양인이 신기해서였는지 사람들은 나를 구경하고 내 옆에 와서 인증샷을 찍으며 자기들끼리 좋아하고 있었다. 뭔가 같이 포즈를 취해주거나 시끄러우니까 저리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졸려서 다시 잠들었다.


얼마 안 가 나는 다시 잠에서 깼는데, 그것은 물방울 때문이었다. 쇠창살에 고인 물방울을 보고 있노라니 잠에서 깬 몽롱한 상태로 뭔가 끄적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끄적여보았다.



쇠창살 끝의 빗방울
인도의 3등 기차석에는 유리창이 없다. 창문에 걸쳐있는 쇠창살 사이로 사라진 유리창, 달리는 기차 창문 처마에 매달린 저기 저 물방울은 어디서 왔을까. 구름으로부터 떠나 하늘에서 내려와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위태롭게 흔들리는 저 물방울은 이제 곧 떨어진다. 물방울은 산산이 부서져 내 눈썹에도 튀고 기찻길에도 튄다.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물방울 조차 저리도 자연스레 부서지고 순순히 떨어진다. 바람에 몸을 맡겨 부서진 빗방울을 통해 메마른 땅이 젖고 식물이 자라고 꽃이 핀다. 부디 빗방울 만큼만이라도 온몸으로 부서져 메마른 대지를 적시길.


글을 쓰고 나니 뭔가 혼자 가슴이 훈훈해졌다. 가슴이 훈훈해져서 일까. 왠지 화장실이 가고 싶어 져서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화장실이 참 재밌게 생겼다. 대소변을 보면 기찻길로 바로 떨어지는 것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경험했지만, 신발 모양이 그려져있고 쭈그려서 싸는 변기의 형태와 손으로 닦는 문화는 인도에서 처음 경험하였다. 나는 그냥 소변만 보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작은 간이역을 몇 개 지나 바라나시 역에 드디어 도착하였다. 바라나시 역은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갠지스강이 범람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갖고 릭샤 기사가 모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릭샤 기사에게 숙소 주소를 보여주자, 릭샤 기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긴 침수되어서 릭샤가 지나갈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헐 이걸 어쩐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숙소에는 어떻게 갈까. 오토릭샤 기사들이 모두 말도  안 되게 높은 가격을 부르길래 우리는 그냥 릭샤(인력거) 기사에게 부탁을 해보았다. 릭샤 기사는 흔쾌히 수락을 했고 우리는 비를 맞으며 인력거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릭샤 기사를 보고 있자니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떠올랐다. 릭샤 기사들의 꿈은 오토릭샤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욕심 없는 그들의 모습은 욕심 많은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했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오토릭샤 기사들의 말이 이해가 됐다. 숙소가 침수된 것이 아니라 숙소로 가는 길에 물 웅덩이가 깊게 파여있었다. 우리는 물웅덩이를 지나 릭샤에서 내려 시장 입구부터 숙소로 걸어갔다. 미로 찾기 같은 숙소를 본능적으로 찾아낸 다음 숙소에 들어갔는데 숙소가 홈페이지에 쓰여있는  조건하고 많이 달랐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우리는 컴플레인을 걸었지만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밤이 돼서 우리는 산책을 나갔다. 부슬비가 내리는 갠지스강의 모습은 실로 오묘했다. 산책을 하다 보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가 보였다. 우리는 다음날 그 숙소에 예약을 하고 바라나시에서의 일정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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