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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떠나는 자는 머물 곳이 있는 자를 부러워한다.

라면이 너무 먹고 싶다.

성 바울 학교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수녀님들은 미사를 하러 가셨다. 같이 가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수녀님들을 제외한 나머지 여행객들은 모두 새로 생긴 생맥주집이 있다고 하여 한잔씩 마시러 갔다. 네팔의 포카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철저히 빈곤하지 않았다. 네팔이 전반적으로 가난한 반면에 네팔의 관광도시인 포카라의 일부 사람들은 부유했다. 그들은  강남땅 부자와 같은 부동산 부자가 대부분이었다. 이와 같이 네팔의 부유한 사람들, 여행객들을 상대로 하는 몇 가지 새로 생긴 사업 중에 하나가 생맥주였다.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고 나는 소다를 마셨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저녁식사를 먹고 클럽 겸 술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네팔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라이브 카페와 같은 형식에 스테이지가 있어서 춤도 추고 노래도 듣고 술도 마시고 에너지 드링크도 마시는 그런 곳이었다. 어디에 숨어있다가 다들 나온 것인지 파티 룩을 한껏 차려입고 나온 사람들이 카페 안에 가득했다. 나중에는 자리가 부족해서 못 앉을 정도였다. 네팔 또한 빈부의 격차가 크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네팔의 모습이었다. 같이 여행하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네팔을 상징하던 슬로건이 save nepal에서 safe nepal으로 바뀌었대." 네팔은 이제 가시적인 지진 피해의 복구에서 다시 경제의 활성화가 필요할 때이다. 이제는 네팔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고 관광객들이 네팔에 와야 네팔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네팔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부자들은 계속해서 잘 살지만 그 안에 세를 들어서 장사하는 소상공인들은 지금 형편이 굉장히 어렵다. 집세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버렸으니 대부분의 네팔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이 빠듯하다. 나는 자연재해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네팔로 여행가라는 말을 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여기 포카라에 와보니 이런 천국도 없는 것 같다. 배불리 밥 한 끼 먹으면 2500원, 숙소 값 1박에 3000원, 질 좋은 티셔츠 한 장에 3000원 정도로 물가가 굉장히 싸다. 이렇게 싸도 될까 싶을 정도이다. 사람들도 굉장히 성실하고 정직하여 바가지 씌우는 것을 보질 못했다. 호객행위도 적고 거리가 깨끗하다. 자고 일어나면 창 밖으로 안나푸르나가 보이고 히말라야 산맥에서 녹아 나온 깨끗한 물이 호수를 이룬다.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네팔을 추천하고 싶다.


숙소에서 짐을 챙겨서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를 탔다. 완행버스가 아니냐가 계속해서 확인한 뒤에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는 와이파이가 된다고 말했는데 와이파이는 역시 안 나왔다. 별로 기대한 바가 아니었기에 직행버스라는 것에 감사하고 네팔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채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네팔은 거짓말 같이 아름답다. 어릴 적 헤라클레스 이야기가 나오는 올림푸스를 상상해보았는데, 그때의 그 모습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저기 어딘가엔 분명히 헤라클레스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에티하드 비행기를 탔는데 스튜어디스 중 한국인이 한 명 있었다. 그 누나는 비행기 뒷좌석이 텅텅 비어있길래 그쪽으로 가면 편하다고 알려주었다. 덕분에 비즈니스 클래스와 같은 서비스와 넓은 좌석으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다음 비행기 기다릴 때까지 배고플 것이라며 촼헐릿과 탄산수, 그리고 먹을 것을 조금 챙겨주었다. 고마운 누나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비행기를 탄다. 직항은 가격이 비싸기에 다른 나라를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를 주로 탄다. 비행기를 타면 멀미를 자주 한다. 가끔 심할 때는 입 속에서 철분 맛이 나며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는데도 재채기를 한다. 에어콘이 빵빵하게 나와서인지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 나는 지금 터키에 가기 위해 네팔에서 아부다비에 와있다. 교회에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기에 설교를 다운받아 듣고 말씀을 묵상한다. 티켓이 내게 있고 시간도 알고 있고 게이트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불안하다. 작년 여름 시차 때문에 루마니아에서 놓친 비행기가 자꾸 떠오른다. 긴장된다. 외롭다. 배가 고프면 먹으면 되고, 잠이 오면 자면  해결되지만, 외로움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저 한국음식을 보며 그리워하거나 가져온 누룽지 조각을 한입 베어 문다.



한국이 그리워지고 한국의 일상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 일까. 한국에서는 여행할 때의 그 느낌과 두근거림이 그렇게도 그리워서 몸부림쳤었는데 막상 여행 중에 비는 시간이 생기면 어느샌가 내게  일상생활의 그리움이 찾아온다.


떠나는 자는 머물 곳이 있는 자를 부러워하고
머무는 자는 떠날 곳이 있는 자를 부러워한다.


사람은 떠나기도, 머물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떠날 때의 외로움과 머물 때의 지루함은 언젠가부터 내 삶 속에서 해와 달 같이 번갈아가며 나를 비춘다. 여행이 끝나면 어딘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이 내 마음을 쏟아부어 일상 속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태어났으면 제 몫을 하면서 살아야 하기에. 그 몫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다시 떠나야 할 때가 찾아오면 미련 없이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은 그 자리가 싫증 나고 미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리가 너무 좋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가치를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 그리고 라면에 김밥이 너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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