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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보이지 않는 길

우리의 청춘은 왜 해야될 것으로 가득 차 있는가?

1년 만에 찾은 이스탄불은 변함없이 아름답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들, 시끌벅적한 라마단 마켓, 길가에 울려 퍼지는 모스크의 기도소리, 웅장한 아야 소피아와 거대한 블루모스크 사이에 있는 평화로운 분수, 분수 주위 잔디에 누워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관광객, 쫀득쫀득한 돈두르마, 계속 먹으면 질리는 케밥, 다리 위에서 남녀노소 즐기는 낚시, 친절한 터키 사람.

1년 전에 만난 가이드 형과 얘기를 나누었다. 1년 전에는 신입 가이드였는데, 어느새 능숙한 가이드가 돼있었다. 그의 가이딩에서 숙련함이 묻어났다. 1년이 지나서 성숙한 형의 모습을 보며 내 모습을 반성했다.


20대의 불안함에 대해서 얘기했다. 공부도 해야 되고 스펙도 쌓아야 되고 연애도 해야 되고 결혼도 해야 되고 돈도 벌어야 되고 효도도 해야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20대는 생각보다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얘기를 나누고 숙소에 돌아와 생각했다. 우리의 20대는 왜 해야 할 것으로 가득 차 있는가?

해야 할 것은 본래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언가 궁금해져서 공부를 하는 것이고, 인생을 살다 보니 그것이 스펙이 되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연애도 하는 것이고, 그 사람과 평생 함께 하고 싶으니까 결혼도 하는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돈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고, 그렇게 행복한 인생을 살면 그것이 효도였을 것이다.

해야 할 것에 매몰되서 하고 싶은 것을 놓치는 삶을 살기 싫다. 내 인생을 사는데 왜 스스로를 학대하는가. 더 나은 삶이라는 건 없다. 돈을 많이 벌고 살림살이가 나아져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 된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다.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서이다. 최소한의 것을 얻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굳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사람들을 본다.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국가의 복지가 훌륭한 나라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전쟁 이후 폐허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 것은 자원이나 축척된 부가 아니다. 훌륭한 복지는 더더욱 아니다. 벼랑 끝에 몰려 무언가라도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 인간의 초인적인 힘을 이끌어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상황이 어려운 나라는 많았지만  그중 유독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나의 아버지가 첫 출장을 가실 때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사람들이 모른다고 했다. 일본이나 중국은 알아도 도무지 코리아는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게 아버지 세대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딜 가도 한국을 알아본다. 난 지금 한국인들은 거의 오지도 않는 터키와 시리아 국경 선에 있는 샨르우르파라는 시골마을에 와있는데 여기서도 한국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 반응 꽤나 긍정적이다.


확실히 전쟁 직후나 유신정권 시절보다는 지금이 훨씬  먹고살만하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20대 개인의 삶을 봤을 때 미래는 어둡다주어진 시스템 안에서의 경쟁은 이미 너무 치열하고 그 끝은 암울하다.

폴라로이드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집중력 있게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은 가능하겠지만 나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내가 번 수익은 내가 모두 가져갔기에 돈도 공부도 기쁜 마음으로 모두 할 수 있었다. 폴라로이드 장사를 시작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같이 하려고 하는 친구가 내게 폴라로이드 장사에 대해 물어봤다. 그 친구는 본인이 한 달 동안 일한 것 보다 내가 몇 시간 동안 일해서 번 돈이 더 많다는 얘기를 듣자 곧바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친구 또한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폴라로이드 장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장사가 안 되는 것이나 사람들의 무시와 깔보는 듯한 시선, 조롱 섞인 주변 사람들의 몇 마디가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무도 가르쳐준 적 없는 새로운 것을 스스로 찾는 것이었다. 책에는 그런 것들이 쓰여있지 않았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해결하는 방법들에 대해서 알려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새로운 것을 해간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았다. 여행에 있어서도 그렇다. 누군가가 이미 찾아놓거나 지나간 길을 지나 가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아무도 찾지 못한 것을 찾고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는 것이 좋다. 그럴 때면 가슴이 뛴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찾아서 떠나야겠다는 목표 자체는 썩 내키지는 않는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바람처럼 내게 찾아오고 나는 한 발자국 용기를 낼 뿐이다. 내가 아무리 뭔가를 찾으려고 해봤자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변해가는 세상 속에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다. 오랜 세월이 지나 환경이 변할 때 다이아몬드 같이 그 고유함을 묵묵히 지키는 것이  고전이다. 그래서 나는 고전이 좋다. 언젠가 인생의 길이 안개처럼 뿌옇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용기가 필요할 때 즐겨 읽는 시가 있다. 이 시로 하여금 다시금 용기를 얻는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앞서 간 발자국이 없어도, 사람들의 비난이 있어도, 혼자라서 외로워도 묵묵히 걷자.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 희미하지만 먼저 간 선배들의 발자국도 보일 테고, 내게 잘하고 있다는 격려도 들릴 테고, 적더라도 내 진심을 알아줄 친구도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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