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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베들레헴의 촛불

수 미터의 콘크리트의 장벽보다 높은 것은 차가운 마음의 벽이었다.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길, 회색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벽이 철과 같이 서있다. 관광버스를 타고 갈 때는 그래피티로 꾸며진 탓에 몰랐지만 실제로 회색으로 둘러싸여 있는 콘크리트 벽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갈등처럼 높기만 하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고 하는 교회건물은 한창 보수 중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니 5년 전에 여기 있었던 할아버지 수사님이 아직도 앉아있다. 여전히 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수사님이 반가워 인사를 해보려고 하지만 당신 5년 전에 나를 기억하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니 핸드폰에 저장이 안돼있는터라 흐뭇한 미소만 보낸다. 할아버지 수사님은 '쟤  뭐야'라는 표정으로 대답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셨다.


이곳은 기독교인들에게 참 기쁜 곳이다. 인간의 죄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려고 온갖 화려한 장식을 해놓았다. 정교회 건물이라 그런지 더욱 그러하다. 은과 금으로 꾸미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을 해놓았다.  내가 들어왔을 때 한 외국인 관광객 무리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예수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성화에 성호를 긋고 키스를 하며 기도를 하고, 어떤 아저씨는 가이드의 설명에 연발 사진을 찍어댄다.

그런데 나는 이 기쁜 장소가 왠지 슬프기만 하다. 예수님의 탄생 성화에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그려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탄생과 희생이 과연 이 땅에 실행되고 지켜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슬픔이 시작된다. 유대교는 예수님을 지혜로운 사람 중에 한 명으로 보고 이슬람교도 그러하다. 그들은 유일신 야훼 혹은 알라를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신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각자의 신이 옳기 때문에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이다. 평화보다 앞서는 것은 그들의 정의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르는 교회는 평화로운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순절 기간에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 시리아, 터키, 로마, 스페인, 인도 등으로 제자들이 흩어졌다. 또 그를 잇는 교부들은 유럽 전역과 이집트, 몽골까지 복음을 전했다.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는 미국을 통해 소수 세계를 제외하고는 복음이 모두 전해졌다. 기독교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알고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전 세계에 전해졌는데 믿는 사람은 많지 않고 이를 믿는 사람은 서로 싸운다. 이것이 과연 예수님이 말한 복음이었을까? 예수님을 믿으면 서로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과연 우리는 그러고 있는가?

성화 앞에 사람들이 붙여놓은 촛불이 빛나고 있다. 촛불은 어두컴컴한 공간을 호롱 호롱 밝히고 있다. 예수님 그림 앞에 빛나고 있는 촛불을 보자니 예수님은 하나의 촛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녹이고 태워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촛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두 촛불과 같이 된다면 세상은 밝게 빛나지 않을까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마태복음 5장 16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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