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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전기도 마음대로 못 쓴다며?

유대인 가정집에 초대를 받았다.

광야에서 노숙을 하고 아브라함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짐을 찾았다. 오늘은 샤바트(안식일)에 맞춰서 아비야 누나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샤바트(안식일) 기간 동안은 불도 마음대로 못쓰고, 전기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등이나 핸드폰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엘리베이터 층수를 따로 눌러주거나 아예 모든 층을 다 들렸다가 가는 샤바트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미련해 보이기도 한 이 샤바트 풍습을 왜 유대인들은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것인가?


어느 나라나 각자의 고유한 문화가 있다. 문화는 '우리 이렇게  하자!'라고 해서 단 시간 내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백 년 수천 년의 시간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들의 배경이  얽히고설켜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하나님)를 믿는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보면 야훼가 세상을 만들 때 6일에 거쳐서 세상을 만들었고  7일째 되는 날은 쉬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따라서 마지막  7일째 되는 날(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에 일을 하지 않는다. 

에덴동산에서 금지된 선악과를 먹고 쫓겨난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인 아브라함, 이삭, 이스마엘, 야곱, 요셉을 거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 정착하게 된다.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숫자가 많아지고 힘이 강해지자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배척하고 태어나는 이스라엘 남자아이를 모두 죽여버린다.

그때 살아남은 모세라는 아이가 나중에 커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고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 땅에서 도망쳐 나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40년을 헤맨다. 그러다가 가나안이라는 땅에 정착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야훼(하나님)에게 감사 제사를 지냈다. 광야에서 유목민족이었던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다시 농경문화를 가지게 됐다.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다비드)을 왕으로 하는 국가를 건립하게 됐지만 후에 남과 북으로 나뉘어 싸움을 하다가 주변 강대국인 바벨론에게 지배를 당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동안 회당 건물 안에서 지켰던 안식일을 더 이상 지킬 수 없다. 이때부터 야훼에게 예배하는 도구는 공간에서 시간으로 바뀌게 된다.


'유대인들이 샤바트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샤바트가 유대인들을 지키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말해주듯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은 신기할 만큼 오랫동안  샤바트라는 것으로 똘똘 뭉쳤다. 바벨론, 앗시리아 제국에서 해방된 유대인들은 다시 로마에게 지배를 당해서 전 세계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된다. 역사 속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흩어진 유대인)이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넓은 곳에 수 천년에 걸쳐서 흩어졌는데도 그들의 정체성은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현대에 와서도 불편하고 불합리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이 전통을 묵묵하게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었다. 

아비야 누나가 추천해준 영화, 누나는 한국말을 꽤 잘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이라는 먼 땅에서 온 나에게는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샤바트 기간 내에는 전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히브리 노래들을 같이 부르고 기도문을 같이 외우고 다른 가정에 초대받아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유대교 회당에 가서 같이 토라를 외우기도 하고 아비야의 어머니가 해주신 전통음식들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즈케이크와 브라우니를 사진으로 남길 수 없는 것은 가장 큰 아쉬움이기도 하다. 한 가지 주제로 두 명이 얘기를 하면 세 가지 얘기가 나오는 유대인들의 특성 때문일까. 깊이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던 것도 조금 아쉽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은 본래 기독교인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경험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굉장한 상처와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엄격한 유대교  집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보수적인 유대교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환영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신 어머니와 유대교 회당에 데리고 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신 아버지, 뻘쭘해하는 나에게 히브리 노래를 알려준 쌍둥이와,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기, 그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준 아비야 누나. 비루한 여행자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아비야 누나와 가족들에게 참 감사하다. 

샤바트가 끝나고 아비야 누나와 작별인사를 했다. 버스를 타고 이제 공항으로 가려고 한다. 예루살렘 시내로 가서 텔아비브에 있는 공항 가는 버스를 타려고 보니 공항 가는 버스가 모두 끝이 났다고 말한다. 스페인으로 가는 아침 5:30 비행기라 야간 버스를 탈 예정이었는데 이걸 어쩌지.


게스트하우스 스텝이 계속 전화로 알아보는데도 버스는 15분 전에 끊겼다고 했다. 대안책으로 쉐어링 택시(한국돈 18000원)가 있었는데 쉐어링 택시는 전화를 20분째 안 받고 나는  개인택시(한국 돈 75000원)를 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스라엘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가 19만 원인데 공항까지 가는 택시비로 7만 5천 원을 내야 하다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는가

비행기를 놓치는 것보다는 낫지만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구글 지도로 찾아보았다. 그리고 한번 환승해서 가면 갈 수 있는 루트를 찾았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에게 말하니까 "오 네가 길을  찾았어"라고 말한다. 7만 5천 원짜리 택시에서 만 원짜리 버스로 바뀌었다.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숙소에서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배낭을 메고 뛰었다. 걸어서 15-20분 정도 되는 거리를 배낭을 메고 뛰려니 힘들었지만 군대에서 동기와 구보를 했던 것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달렸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여기서 480번 버스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정장을 말끔하게 빼입은 신사가 내게 길을 알려주었고 나는 무사하게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공항철도로 갈아타고 가다 보니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들어오니 처음 이스라엘에 도착했을 때 공항 보안관이 나를 의심하고 쫓아내려고 했던 것이 생각나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무계획으로 왔던 이스라엘에서 계획한 것 보다 멋진 경험들을 했다. 좋은 인연들과 감사한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운 추억도 만들었다. 여권을 가지고 출국하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공항 보안관이 온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너 이스라엘에서 뭐했어?" 

나는 익숙한 태도로 그들에게 얘기했다. "아비야 누나라고 유대인이 있는데 페타크바티브 살거든? 그 누나 집에서 샤바트 초대받아서 밥 먹고 이제 스페인으로 가는 길이야. 무슨 문제 있어?" 보안관들은  문제없다며 즐거운 여행되라며 내 여권을 돌려주었다. 입국심사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출국심사를 마치고 스페인 마드리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마드리드에는 무엇이 있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기대가 되고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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