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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여행 중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보세요.

내가 느낀 감동을 너도 느꼈으면 좋겠다.

아테네 공항에서 마드리드 공항으로 환승하는 길에 문제가 생겨서 환승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아침부터 마라톤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두대의 버스가 있었는데 보안관이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고, 환승 안내센터 직원이 출근을 안 해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대거 혼란을 겪은 것이다. 유럽에서 파업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다가온 파업은 처음이었다.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는데 입국 수속 절차를 밟고 공항 로비로 나갔다가 다시 짐 검사를 맡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

내 옆에 있던 검은 정장 차림의 유대인 두 명은 새치기를 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피부가 구릿빛인 아줌마를 선두로 한 여러 가족들 또한 그렇게 폭주기관차처럼 입국 수속을 밟았다. 입국심사관은 거의 도장을  빼앗기다시피 막 찍어주었다. 이게 무슨 풍경인가. 나는 적당히 줄을 선 다음에 매우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앞서가던 유대인도 구릿빛 가족들도 모두 추월했다. 짐을 검사하는데 앞에서 세워라네워라 농담 따먹기 하고 있길래 내가 라스트콜! 라스트콜!(마지막 시간이야 나 엄청  바빠)라고 하니까 빨리 통과시켜주었다.

내 뒤를 보니 헐레벌떡 뛰어오는 나머지 일행들과 이 상황을 즐기는 몇몇 젊은 청년들이 보였다. 얼마 안가 예쁜 승무원이 보였다. 왠지 저기 인 것 같아서 "마드리드?" 하고 물어봤더니 "LEE?" 하고 되묻는다. 다행히도 비행기를 탔다. 이제 스페인으로 출발한다.

스페인에 도착했다. 핫한 여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혼자라서 외롭지만 내일 어떤 사람이든 만나서 같이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솔직히 유럽의 가이드는 가격이 비싸다. 그렇지만 비싼 만큼의 제값을 한다. 좋은 가이드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냥 말해주는 거 편하고 재밌게 듣고 끝나는 가이딩 말고 나도 능동적이고 좋은 여행객이 되야겠다. 여행 가이드를 만나면 내가 아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바쁜 나이지만, 내일은 사람대 사람으로서 지식도 나누고 마음도 나누고 인생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여행하다 보면 내가 만나는 한국 여자들은 서로 약속을 하고 온 듯이 대부분 못생겼다. 하지만 길가면서 내 몰골을 보니 이런 말을 할 자격은  못 되는 것 같다.

어제저녁부터 못 먹은 배가 꾸르륵 소리를 낸다.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아서 오늘은 나름대로의 사치를 즐겨보고자 한다. 근데 레스토랑이 나타나질 않는다. 건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지만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맛있는 음식이다. 레스토랑을 지날 때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난다.  스페인쯤에 오니까 여행 중간에 일을 하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 외국인들이 많고 시스템이 잘 갖춰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마드리드에 와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리려면 얼만큼의 돈이 들까.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기 전에 다른 일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인터넷에서 본 한 영상이 생각난다. 여행을 하는데 초반부에 보스 수트가 너무 멋있어서 사버렸고 돈이 바닥났지만 멋있는 보스 수트를 이용해서 숙박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서 여행을 계속했다는 드라마 같은 얘기였다. 나에게는 드라마 같은 얘기지만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그에겐 용기가 있었다. 여행을  할수록 겁이 많아진다.  알아갈수록 겁이 많아진다. 각종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이 어진다. 여행에서마저도 그렇게 돼버린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군대를 갔다. 첫 휴가 때 서점에서 사간 유럽여행 책을 보고 잠이 들 때면  꿈속에서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그중 에펠탑에 가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전역하고 에펠탑을 가보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밀려오는 감동을 감히 거스를 수 없었다. 동공이 커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감동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돈을 벌 목적도 아무런 욕심도 없었다. 그저 나누고 싶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개인의 감동을 나누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사전적 지식이 전제되지 않아서 그럴 것이겠다 싶어서 관련 장소의 지식을 마구마구 퍼부었다. 그러나 내 지식은 이미 인터넷과 책에 여기저기 나와있었다. 무슨 이유에서 내 여행의 감동이 전해지지 않는 걸까. 그리하여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여행 얘기를 찾아보았다.

그들 중에는 말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 이런 사람은 굳이 여행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일상 소재로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가지 못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들과 생각했던 것들을 진솔하게 나누는 사람이 있었다. 모두의  머릿속에 생각되고 있었던 그 무언가를 꾸밈없이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느끼고 있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여행이라는 연필로 그려내는 그들의 말은 꾸준한 감동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여행을 하면서 익숙해진다는 것은 교만의 씨앗을 심는 일이자, 스스로의 몸집을 크게 만들어 작고 소중한 공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여행 중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보세요. 일상에서 될 수 없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그러면 그 사람은 여태껏 놓치고 있었던 멋진 일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여행의 익숙함에서 탈출해야겠다. 새롭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 글을 쓰고 있는데 새로운 다짐에 칭찬이라도 하듯이 생각보다 큰 사이즈의 고기가 나왔다. 와!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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