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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형은 여행을 왜 하는 거예요?

여행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

한국에 계신 목사님이 숙소를 하나 추천해주셨다. 무슨 한인민박이라는데 가격도 싸고 마침 지금 숙소를 옮기고 싶은 마음에 한인민박을 가게 되었다. 한인민박  집주인은 권용인이라는 여행자였다. 4년 정도를 여행하다가 게스트하우스를 한번 운영해보고 싶다고 해서 게스트하우스를 차린 독특한 여행자였다.

 권용인 씨가 카톡으로 알려준 주소를 보고 찾아갔는데 숙소 주소만 알고 건물 층수와 호수를 모르고 가버렸다. 아파트 주민 할머니께 여쭤봐서 층수는 알았는데 호수를 모르겠어서 문 두개 앞에서 고민했다.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어 딩동댕 척척박사님 알아맞혀 주세요. 딩동댕동!" 주문을 외워보았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창문 밖으로 어떤 한국인이 보였다. "저기요!"  

그 한국인은 "어!  잠깐만요!"라고 말한 뒤에 문을 열어주었다.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여기는 아르바이트도 쓰는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4년 세계여행을 한 민박집 사장님 권용인 씨가 맞았다. 권용인 씨는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이렇게 일찍 올 줄 몰랐어요. 아무튼 반가워요. 권용인이라고 해요" 권용인 씨는 악수를 청했다. 숙소에는 다른 사람이 또 있었다. 이어서 내게 말을 걸고 악수를 청했다. 김창식이라는 여행자였다. 김창식 씨와 권용인 씨는 내게 주스 한잔을 주며 의자에 앉아서 얘기했다. 의자에 앉아마자 둘은 내게 나이를 물어보았다. 나는 25살, 권용인 씨는 31살, 김창식 씨는 26살이었다. 권용인 씨가 옆에 있던 김창식 씨에게 말했다. "야 막내 들어왔다!" 형은 내게 바로 반말을 했다. 나는 초면에 반말하는걸 정말 싫어한다. 적어도 처음 보는 사이라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매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분이 굉장히 나쁘다. 근데 용인이 형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전혀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 않았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의 친화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용인이 형보다 인상적인 것은 창식이 형이었다. 창식이 형은 용인이 형이 너무 보고 싶어서 광주 번호판을 달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러시아와 몽골을 거쳐서 수만 킬로를 오토바이로 달려온 형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약 1년 전부터 계속 연락을 했고 1년이 지난 후에야 드디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용인이 형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용인이 형은 창식이 형이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해 보였다. 계속해서 창식이 형을 소개하고 얘기했다. 입에 침이 마르지 않도록 계속되는 칭찬도 창식이 형에 노력과 열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창식이 형한테 물어보았다. "형은 여행을 왜 하는 거예요?" 그러자 창식이 형은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여행이  좋아서"와! 이 형,  첫인상과는 달리 매우 깊은 순수함을 가진 사람이다. 알고 보니 이 게스트하우스는 예약으로 가득 찬 방이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첫날은 침대에서 자지만 다음 날은 소파에서 자게 생겼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곳이 좋다. 어제 다녀온 톨레도를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맞았다. 글을 정리하는데 몸이 좀 편해지니까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글을 정리하고 형들과 함께 스페인 광장에 갔다. 관광객 여자분 두 분이서 고추가 들어간 매콤한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해서 용인이 형이 스페인 광장을 거쳐서 중국 마트로 가서 고추를 사려고 했기 때문이다. 가는 길이기도 했고 나 또한 프라도 미술관을 가는 길이었기에 고추를 사러 중국인 마트에 들어갔다. 나는 레몬소다를 사서 형에게 들고 가면서 춤을 췄다. 용인이 형이 나를 보고 말했다. "야 얘도 또라이 같아! 왜 우리 숙소에는 이런  애들밖에 안 오냐?" 변태 같지만 왠지 또라이로 인정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아마 난 변태가 맞는 것 같다.

프라도 미술관을 갔다가 형이 요리하는 것을 거들려고 7시가 좀 넘어서 숙소로 갔다. 형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요리를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좁은 주방에서 왠지  걸리적거리는 것 같아서 식탁을 세팅하는 일을 했다. 저녁식사는 된장찌개였다. 한국음식이 너무 그리웠는데 된장찌개가 나와서 허겁지겁 먹었다. 된장찌개 한 숟가락, 밥 한 숟가락, 김치 한 조각, 밥 한 숟가락. 수저가 내 입에 들어올 때마다 매번 생각했다. '아 맛있다.' 아무리 5대 영양소가 들어간 음식이라도 외국음식은 뭔가 먹으면 허한 느낌이 있다. 배가 부른데 배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 근데 여기 와서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웠다. 여행에서 멋진 자연도 만나고 훌륭한 건축물도 만나고 의미 있는 미술 작품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만났다. 그리고 오늘 좋은 사람을 만났다. 여행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 만나서 반가운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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