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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누구와 함께 있나요?

네가 내 옆에 있어줘서 기뻐

어젯밤, 동생 두 명이 한국에서 넘어왔다. 이름 때문에 여자인 줄 알고 매우 기대했는데 남자 두 명이 나타나서 조금 실망했다. 동생 한 명은 내가 머리가 길어서 여자인 줄 알았는데 가슴을 보고 남자인 걸  확인한 후 적잖은 실망을 했다고 했다.

이 숙소는 이상한 곳이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2주일은 같이 있었던  것처럼 익숙하고 만난 지 3시간도 안됐는데 어느새 편한 복장으로  별의별 얘기를 다하고 있다. 동생 둘의 이름은 주현이와 건우. 주현이와 건우는 둘이서 5일 전에 스페인 여행을 급하게 계획했다. 그리고 비행기 타고 지금 스페인으로 왔다. 멋진 놈들이다. 생각한 것을  실행할 줄 아는 용기 있는 동생들이다. 늦은 밤까지 사람들은 맥주를 나는 소다를 마시며 얘기를 이어갔고 잠깐 침대에 누웠는데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아침이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새로운 여자가 나타났다. 나보다 동생인 줄 알았는데 또 누나다. 여행 중에 만나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동안인 것 같다. 이름은 아람 누나. 아람 누나는 4개월 계획으로 소전 여행을 왔다고 했다. 언젠가 다음 여행이 생긴다면 아람 누나와 같은 여행을 해보고 싶다. 간단하게 시리얼을 먹고 숙소에서 나왔는데 한 여름에 비가 조금 부슬부슬 왔다.(나중에 들어보니 창식이 형 하고 아람 누나는 우박을 맞았다고 한다.) 몇 분 걷다 보니 버스터미널에 나왔다. 츄러스가 너무 먹고 싶어서 터미널에서 티켓팅을 한 뒤에 츄러스 가게를 찾았다. 겨우 한 가게를 찾았는데 다 식고 맛없는 츄러스였다. 츄러스를 입에 물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세고비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글을 쓰려고 하니 멀미가 좀 나길래 쓰던 글을 접었다. 이스라엘 버스에서 졸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린 기억이 나서 핸드폰과 짐을 가방 안에 꽁꽁 넣고 잠갔다.

조금 자다 보니 세고비아에 도착했다. 원래는 지도를 보고 루트를 찾아서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가는 것이 맞는데, 성이 가까이 보이길래 그냥 무작정 가기 시작했다.

마트에 들려서 먼저 물과 납작 복숭아, 오렌지 몇 개를 샀다. 봉지 가득 담긴 과일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성이 더 가까이 보였다. 성을 따라 두 갈래길로 걸어가는데 왼쪽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차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었다. 도로를 따라서 걸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히브리어 노래도 부르고 가요도 부르고 이런저런 노래를 목이 쉬도록 불렀다.

노래의 흥이 떨어질 때쯤 햇살을 가려주던 구름을 뚫고 햇빛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땀범벅이 됐다. 긴바지와 밑단이 긴 티셔츠를 입고 온 것을 후회했다.

계속해서 걸었다. 걷다 보니 계곡이 나타났다. 마트에서 산 과일을 계곡에 씻었다. 맑은 물 안에는 송사리 같은 것들이 돌아다녔다. 저기  한쪽을 보니 한 청년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길을 한참 헤매다가 결국 성에 도착했다. 백설공주 소설의 원작이 되는 성이라고 했다. 사실 그런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더웠다. 여름  여행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더우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짜증이 앞선다. 매표소에서 성 전체를 볼 것 인지 타워만 볼 것인지 내게 물어보았다. 나는 더웠던 터라 타워만 보겠다고 했다. 타워로 걸어올라 갔는데 좁은 계단에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내려오는 사람보다 내가 더 많이 올라갔기 때문에 위에 있는 사람이 양보를 해주었다. 나는 gracias(스페인어로 고맙다는 말)라고 말을 했다. 근데 얼굴을 보니 한국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계단으로 내려갔다.

타워에 사람들이 없길래 나는 짐을 풀고 그냥 창밖을 바라보았다. 쇠창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계속 성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자일까. 남자일까. 발걸음 소리가 작은 것을 보니 여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꿋꿋이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창 밖을 너무 오래 봤을까. 발걸음 소리가 다시 멀어졌다. 뒤를 돌아보았는데 분명히 동양 여자의 뒤태였다. 그녀는 타워 꼭대기로 걸어갔다. 꼭대기에 있는 줄 알았는데 꼭대기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타워로 올라갔다. 타워로 올라가자 동양 여자가 보였다. 한국일까 중국일까 일본일까 고민하다가 일단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저기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그녀는 한국사람이 맞았다. 나는 길을 잃어서 여기까지 돌아온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납작 복숭아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혼자 여행을 다녀서 외롭다고 했다. 나도 혼자 다녀서 심심하고 외로웠기에 우리는 같이 다니기로 했다.

그녀는 길을 참 잘 찾았다. 네비게이션 안내원과 같은 그녀를 따라서 나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녀는 길을 참 잘 찾았다.

내가 1시간 걸려서 걸어온 거리를 5분 만에 찾아오고 다음 장소도 그녀를 따라가니 금방 도착했다.

도착한 장소는 세고비아 성당, 세고비아 성당은 튼튼한 기둥과 화려한 장식들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2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구경한 뒤에 나는 수도교로 향했다.

얘기를 하면서 걸었다. 더운 날씨에도 동행이 있으니 심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페인 여행을 왔는데 캠핑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했다. 또 다른 형태의 여행이었다. 생각해보니 교회에서 가는 해외선교와 비슷했다. 다만 다른 점은 혼자 가서 처음 보는 외국인들하고 같이 어울이면서 주어진 일을 한다는 점이었다. 세상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얘기를 하다가 수도교에 도착했다. 그냥 다리라길래 사실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생각한 것 이상으로 멋진 광경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로마 사람들이 물을 끌어오기 위해 만든 다리라고 하기엔 정말 대단한 다리였다. 시멘트나 다른 접착제 없이 단순히 균형으로만 만든 건축물이라는 점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수도교를 본 뒤에 새끼돼지를 먹으러 갔다.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숙소에서 용인이형이 보쌈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수도교에서 먹은 새끼돼지보다 용인이형이 해준 보쌈이 더 맛있었다. 용인이형에게 고맙다.

맛나게 보쌈을 먹고 나니 창식이 형이 말했다. "맥주 좀 드실래요?" 창식이 형도 그렇고 아람 누나도 그렇고 모두 술에 있어서 주량이 자유롭다. 맥주라서 그런가 굉장히 잘 마신다. 우린 새벽 3시까지 맥주와 탄산수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없이 늘어졌다. 얘기하던 도중 아람 누나가 한복을 가져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용인이형의 제안으로 SOL광장(마드리드의 중심)에 가서 한복 입고 사진을 찍고 돈을 벌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때 나도 개량한복 얘기를 꺼냈고 단소 또한 보여주었다. 각자의 역할 분담을 하여 용인이형과 창식이 형 그리고 건우와 주현이, 그리고 아람 누나와 나는 내일 SOL광장에 가서 돈을 벌어보기로 했다. 누나는 한복을 입고 나는 한복 입고 단소를 부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대되는 내일이다.


기대치 않았던 이벤트가 생겼다. 마드리드 별거 없다고 생각해서 금방 다른 곳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젠 매일 매일이 기대된다. 알함브라 궁전은 유구한 역사로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프라도 미술관이 훌륭한 작품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늘 다녀온 세고비아도 마찬가지다. 근데 여기 용인이형네는 큰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시작한 지  3주밖에 안된 한인민박이다. 근데 여기가 다른 관광지보다 재밌고 행복하다. 용인이형이라는 사람 그 자체로 브랜드 가치를 지니는 것 같다. 개인의 가치의 중요성을 이곳에서 느낀다.

여행을 할 때 어느 나라에 있는 어떤 장소에 가서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것을 보고 경험하고 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기쁜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쁘고, 슬픈 사람과 같이 있으면 슬프다. 화가 많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화가 나고, 웃음이 많은 사람과 있으면 웃음이 난다. 웃음이 많은 사람들과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같이 있으니 어느 유명한 관광지보다 즐겁고 행복하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옆에는 어떤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인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보면 나를 알 수 있다. 지금 내 옆에선 아람 누나의 한복을 입은 창식이 형을 보고 용인이형과 주현이, 건우가 낄낄 대며 웃고 있다. 내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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