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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단소 버스킹 in 마드리드

정말 부끄러운 것은 지금 이 순간 부끄러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새벽 3시까지 수다를 떨다가 이웃주민이 컴플레인을 걸어왔다. 나는 금방 잠들었지만 창식이 형과 아람 누나가 얘기하는데 또 이웃주민이 와서 계속 떠들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우리가 너무 신났었나 보다. 늦게 잔 만큼 늦게 일어났다. 여기 있으면 아침이 사라지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마늘도 넣고 다시마도 넣고 양파와 파, 계란과 김칫국물, 그리고 고추장과 고추, 사랑과 정성을 넣어서 끓였다. 6명이라서 물 조절 실패 때문에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면이 불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라면을 끓여먹은 뒤에 우리는 Sol광장(마드리드의 중심)으로 향했다. 아람 누나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는 개량한복과 단소를 챙겼다. 우리는 모두 비장한 각오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마치 전쟁을 하러 나가는 군인의 모습과 같은 비장함과 공연을 하러 가는 비틀즈와 같은 발걸음으로 Sol광장으로 향했다.  

용인이 형은 가는 길에 우리에게 가이드도 해주었다. 숙소 주인 겸 가이드까지 해주는 형의 모습이 참 고마웠다. 집에서는 후줄근하게 있던 형이 나갈 때가 되니까 정장을 입었는데 사람이 달라 보였다. 멋졌다.

우리는 형의 가이드를 따라 드디어 Sol광장에 들어갔다. 광장에 막상 다가서니 매우 떨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폴라로이드 장사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남산타워, 정동진, 102 보충대, 인사동, 대학교 졸업식 등을 돌아다니며 얼마나 많은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장사를 했었던가. 한국에서도 했는데 외국에서 못할 이유는 뭐가 있을까. 정말 부끄러운 것은 지금 이 순간 부끄러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용인이 형이 정해준 자리에 가서 무작정 단소를 불었다. 서서 시작하려고 하니 자세가 나오지 않아 바닥에 털썩 앉았다. 바닥에 앉아서 단소를 불기 시작했다. 첫곡은 '팔각모의 추억'이었다. '어느 늙은 군인의 이야기'라는 노래를 원곡으로 하는 이 노래는 군대에서 전역하는 날 어머니 회사에 가서 불러드린 노래였다. 그때도 그랬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21개월 동안 나를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신 어머니께 감사할 뿐이었다.

단소를 다 부르고 나니 엉덩이가 뜨거워졌다. 조금 더 앉아있으면 엉덩이가 구워질 것 같았다. 그때 고맙게도 창식이 형이 내게 박스를 구해다 주었다. 나는 창식이 형이  가져다준 박스를 깔고 앉고 연주를 계속했다. 

'아리랑, Amazing grace,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인연' 등을 짧게 연주했다. 연주하는 동안 아람이 누나는 한복을 입고 외국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람들은 '쟤네 뭐야?'와 같은 표정으로 하나 둘 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근데 갑자기 경찰관 두 명이 우리에게 왔다. 용인이 형은 경찰관을 막아서고 대화를 했고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여기서 공연하지 말래. 원래 여기서 공연하려면 정부에서  허가받은 라이센스가 있어야 하거든" 우리는 10유로를 목표로 광장에 나왔는데  시작한 지 10분 만에 광장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용인이 형이 말했다. "야 날씨도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형이 쏠게!" 형은 우리에게 생과일이 들어간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분명히 이 형 숙소 장사 오랫동안 하면 빚만 늘어날 것이다. 주고 또 주고 계속 주는 아낌없이 주는 형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용인이 형은 새로 온 형준이 형을 데리고 시내 가이드를 해주었고 나머지 일행은 2층 시내투어버스를 타러 갔다. 나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있다고 하는 소피아 미술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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