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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y 05. 2016

하버드의 낮잠

깨달음은 언제나 바람처럼 찾아온다.

숙소에 돌아온 뒤에 저녁에 시카고에서 라스베가스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매우 피곤한 상태로 합리적인 가격의 비행기를 찾는 것은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주찬이가 피곤했는지 먼저 잔다. 유섭이와 나는 비행기 티켓팅을 했다. 저녁에 돌아와서 사이다 한잔하려고 했는데 그냥 뻗어버렸다. 10분인가 잔 것 같은데 유섭이가 나보고 1시간30분을 잤다고 말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곤했나보다.


아침이 되자 먼저 잔 주찬이가 우리를 깨웠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게 짜증났지만 스케쥴을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오늘 하루 보스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워싱턴에서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를 옆에서 주찬이가 예매를 하는데 여권정보를 인터넷상에서 입력하지 않아서 전화로 일일히 말하고 있다. 전화받는 사람은 발음을 듣고 있으니 인도 사람같다. 열심히 뭔가 사투를 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비행기티켓팅으로 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공감되기도 했다. 

오늘 하루 하버드 대학교를 가보려고 한다. 하버드는 무언가 특별한게 있을까? 기대된다. 맛있는 수제햄버거 미스터바틀리를 먹고 하버드대학교에 들어왔다. 무작정 들어왔는데 도서관을 들어가려고 보니 하버드 학생이 아니면 학교 도서관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그냥 걸어가고 있었는데 동양인 관광객이 보였다. 중국사람일까? 한국 사람일까? 일본 사람일까? 가까이 다가갔는데 통역하는 사람이 한국말을 한다. 옆에서서 귀동냥을 하는데 남자분이 오셔서 "저기 앉아서 들어" 라고 말해주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단체관광객은 교회에서 온 관광객이었고 앉아서 들으라고 한 사람은 목사님이었다.

마지막 코스인 하버드 동상으로 가는데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길래 인사했다. 아이들은 내 비쥬얼이 충격적이었는지 내게 하버드 학생이냐고 물어봤다. 그러더니 신성우 닮았다, 빽가 닮았다, 데프콘 닮았다 등의 얘기를 했다.

"야 데프콘하고 사진 찍고 싶은 사람 드루와!" 라고 말하니까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사진을 찍었다.

존 하버드 동상을 마지막으로 교회 아이들과 인사했다. 목사님께 명함을 받고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참 보기 좋았다. 아이들은 나이아가라 폭포로 간다고 했다. 버스를 얻어탈까 생각해보았는데 동선이 꼬일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회 친구들하고 같이 아프리카 우간다를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아프리카의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뭔가 내가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계속 들었던 것은 뭔가 깨달아야한다는 부담감이었다. 같이 여행하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참 재밌는 일들이 많았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지금도 사실 그렇다. 여행의 순간은 항상 아쉽기 때문에 이 여행이 끝나기전에 뭔가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의 부담이 따라온다. 


그러나 진정한 깨달음은 쫓아갈 수록 나에게서 멀어진다. 내가 원할수록 나를 멀리한다. 억지로 만들어낸 께달음은 더운 날 쐬는 선풍기 바람 같아서 처음엔 시원해도 자연바람만 못하다. 깨달음은 언제나 바람처럼 찾아온다. 나무 밑에 고요히 앉아 있노라면 나뭇잎 사이로 으스러져 내리쬐는 햇살과 함께 산들바람으로 찾아온다.

하버드를 둘러보다가 남북전쟁 기념 메모리얼 건물에 들어갔다. 그 안에 학교 식당이 있었는데 주찬이 말처럼 해리포터에 나오는 식당과 비슷했다. 하버드 스퀘어에서는 푸드트럭을 가지고 나와 장사하는 사람들과 플리마켓에서 이것저것 소품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형 젠가가 있길래 크게 쌓아놨는데 바람에 날려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공원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아까 가이드를 하던 사람이 다시 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주찬이는 하버드 대학교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듣고 유섭이와 나는 나무 밑 잔디밭에 누워서 낮잠을 잤다. 평화로웠다. 쯔쯔가무시 걸리지 않을까? 라는 유섭이의 말에 뭐 그런 것 좀 걸리면 어때 라고 대답하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보니 주찬이와 유섭이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햇살이 계속 손등을 비추고 있어서 손등이 따뜻했다.

일어나 그냥 갑자기 단소가 불고 싶어서 단소를 불었다. 잘 불지는 못하지만 그냥 불었다. 자다깨서 몽롱한 상태로 단소를 부르니 기분이 좋았다. 하버드를 다니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여기 있는 이 잔디밭과 커다란 나무 밑 그늘 때문일 것이다. 캠퍼스가 아름다운 학교였다.


열심히 무언가를 듣고 온 주찬이가 우리에게 건물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아는 것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는지 이것저것 알차게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큰나무 밑 잔디밭에 누워있는데 유섭이가 이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고 말한다. 길치인 나에게 유섭이는 네비게이터와 같은 존재이다. 유섭이의 의견을 따라 우리는 뉴욕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기로 했다. 중간에 어떤 기념품 샵에 들렸는데 잡지도 같이 팔길래 뉴욕에서 입을 옷을 대충 구경하고 있었다. 근데 주찬이가 성인 잡지를 가리키면서 "야 저기 봐봐"고 말했다. 순식간에 우리 셋의 시선은 성인잡지를 향했다. 근데 거기 주인이 우리에게 나이가 몇살이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25살이다. 그렇게 물어봐줘서 고맙다." 라고 말했다 .주인은 웃으면서 "너희 다 25살이야?" 라고 물어보았다. 외국인 눈에는 우리가 어려보이나보다. 하긴 나도 흑인들의 나이를 갸늠하기 힘들어하니 비슷한 개념이겠다. 스타벅스 커피를 맛보자는 주찬이의 의견에 스타벅스를 들어갔다가 너무 사람이 많아서 나왔다. 스타벅스 바깥에는 성경책을 쌓아놓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이 굉장히 기뻐보였다. 말씀 안에 사는 사람 같았다. 부러웠다.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데 이 복잡한 곳에서 유섭이가 바로 길을 찾았다. "나는 습관처럼 유섭이에게 여기 가는거 맞아?"라고 되물었다. 유섭이가 표정으로 여기 맞다고 그만 되물으라고 대답하길래 나는 유섭이를 따라갔다. 역시 유섭이는 길을 잘 찾는다 .   

하버드 어디선가 모자를 잃어버렸다. 네팔에서 산 모자였는데 아마 스테이크 햄버거 집에 두고 온 것 같다. 3000원 짜리 치고 열심히 잘 썼다. 이번엔 다른 스타일의 모자를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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