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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y 06. 2016

이별을 기억하는 방법

기억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람의 이름을 다 적어놓은 메모리얼 폭포. 누군가 그곳에 국화꽃을 꽂아놓고 갔다. 백색의 국화꽃 위에 벌 한 마리가 앉았다. 죽음의 이별 후에는 또 다른 생명이 찾아온다.

9월 11일은 내 생일이다. 벌써 14년 전이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생일 파티를 했다. 아이들의 최고 놀이터인 플레이타임에서 놀았다. 그때 티브이에서 액션 영화를 틀어줬다. 액션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제였다. OCN이 아니라 KBS였다. 그때는 그려려니 했다. 사람들의 슬픔이 공감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마이클 무어 감독의 911 관련 다큐영화를 보게 됐다. 911 테러가 단순히 비행기 납치사건이 아니라 부시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의 명분을 위한 것, 돈을 벌기 위한 쇼라는 것을 밝힌 영화였다. 충격적이었다. 미디어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911 테러를 기념하는 곳은 사람들의 이름이 빠짐없이 새겨져 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물들 이 모여서 폭포가 되고 깊은 구멍 속으로 빠진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구멍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냥 이 구조물을 보았을 때 내 생각은 사람들의 영혼이 모여서 폭포가 되고 이 폭포가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알 수 없는 곳은 아마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영혼이 죽음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얘기다.

세월호가 가라앉은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에 소식을 접했을 때 공감도 되지 않고 실감도 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세월호와 같은 상태인 것을 느꼈다. 여기저기서 사건사고가 터지는데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메르스가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통할 줄 모르는 정부와 분노하는 국민의 구도는 하나도 바뀌지 않은 우리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얘기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내게 벌어질 줄 모른다. 여행을 하면서 친구에게 영화 '암살'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나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친구의 얘기에 의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쳤던 사람들의 후손보다 나라를 팔아먹고 권력에 빌붙어 살던 사람들의 후손이 훨씬 떵떵거리며 이 땅에서 잘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이 땅에 전쟁이 난다면 이런 과거를 본 우리들은 과연 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수 있을까? 그리고 목숨을 바쳐 싸운다 한들 그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그 후손들의 입지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죽음의 이별 뒤에는 또 다른 생명이 찾아온다. 그러나 생명은 그냥 오지 않는다. 죽음의 상처를 딛고 일어난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 세월호가 터진 이후에 우리는 무엇이 바뀌었는가? 911 메모리얼 파크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들은 911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그런데 세월호 애기가 나오면 다들 사람들은 쉬쉬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언제 적 얘기를 지금까지 하냐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아니다. 산 사람은 제대로 살아야 한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내게도 언젠가 닥쳤을 그 위기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말이다. 머릿속에서 세월호가 희미해질 즈음에 이곳에서 다시 생각났다. 다시 기억하고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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