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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y 07. 2016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뉴욕

뉴욕은 작은 지구다.


쇼핑 후에 밥을 먹고 월가를 걸어갔다. 월가의 분주한 모습과 사람들의 어떤 포스를 기대하고 갔는데 그냥 멋지고 높은 빌딩들만 있었다. 사실 많은 것은 빌딩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빌딩을 올라가고 싶어도 빌딩 1층에서 경비아저씨에게 쫓겨나는 여행객이기 때문에 그냥 겉에서 구경만 했다. 조금 실망스러웠다.

밥을 먹은 후에 몸은 피곤하고 다리는 아프고 배가 불러서 몸이 쳐진 상태가 되니 여행하기에 최악의 컨디션이 됐다. 아 정말 별로다. 

무슨 이상한 황소가 나타났다. 나는 이게 이중섭이 만든 게 아니냐고 친구들에게 말해서 비웃음을 샀다. 소가 여기 왜 있을까? 고대 근동의 힘의 상징이었던 소를 현대에 맞춰서 형상화시켜놓은 것일까?라는 추측을 해보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월가가 소 경매장으로 시작된 곳이기 때문에 소 동상이 있었던 것이다. 역시 조금 아는 사람은 자기가 보는 안경으로 밖에 세상을 보지 못한다.


자 이제 라이온 킹을 예매하러 타임스퀘어를 가볼까. 월가에서 타임스퀘어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야 한다. 파리의 지하철이 오줌 찌린내로 가득하다면 뉴욕 지하철은 쥐들이 가득하다. 또 찜통이다. 찜통더위를 견디고 있으니 지하철이 도착했다. 지하철 안은 다행히 시원하다. 스마트하고 용기 있어 보이는 한국인, 여러 명이 몰려있는 중국인, 스타일리시한 일본인, 수학을 잘할 것 같은 인도인, 북유럽의 존 스노우 같이 생긴 사람, 덩치가 큰 독일 사람, 미국의 소울 넘치는 흑인, 발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몸을 가진 흑인 아줌마, 몸짱 흑인, 전형적인 미국 백인 등 전 세계의 온갖 사람들이 지하철 안에 있었다. 뉴욕의 지하철 안은 또 하나의 작은 지구다.

타임스퀘어에 도착했다. 사람이 많으니 본능적으로 소매치기를 경계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주찬이와 유섭이에게도 말했다. "야 소매치기 조심해!" 타임스퀘어에 가는 길에 디즈니 캐릭터가 많았다. 대승이 닮은 올라프 사진을 찍어서 대승이에게 안부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올라프가 내 시선을 인식했는지 사진을 피했다. 그때 유섭이와 주찬이가 어떤 캐릭터에게 붙잡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 사진 찍으면 돈 내야 할 텐데..... 뭐 한번 정도는 경험으로 괜찮겠지.' 주찬이와 유섭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데 아까 나를 피했던 올라프가 와서 굵은 목소리로 말한다. "야 돈 주면 내가 사진 찍게 해줄게" 나는 기분이 나빠서 꺼지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냥 무시했다. 주찬이와 유섭이는 캐릭터와 사진을 찍고 순수하게 돈을 주었다. 타임스퀘어의 어떤 여자들은 가슴을 젖꼭지까지 노출하고 미국 국기나 혹은 페인트를 칠해놓은 뒤에 같이 사진을 찍고 돈을 받는다. 남자니까 당연히 눈길이 가는데 그리 매력적이진 않다. 그냥 신기한 풍경이다.

중간에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 가게에 들어갔다. 미국에 온 이후로 아니 뉴욕에 온 이후로 제일 신나는 순간이다. 쇼핑 때 받은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갔다. 어릴 적 쥐라기 공원 테마파크 갔다가 이모 부등에 울면서 업혀서 나온 적이 있다던데 지금 보니 그냥 인형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시간이 지난 만큼 기술이 발전해서 좀 생동감 있는 게 아직도 좀 무섭다.


디즈니랜드에 온 기분으로 신나게 동심의 세계에서 놀다가 나왔다. 건너편에 라이온 킹이 보였다. 아 맞다. 여기는 라이온 킹 티켓을 예매하러 온 것이었다. 그걸 깜박하고 있었다. 라이온 킹 티켓을 예매하러 가니 한국인들이 참 많다. 내일 티켓이 99달러짜리가 있단다. 티켓이 너무 비싸긴 하진 그래도 브로드웨이에 와서 라이온 킹은 보는 게 예의가 아니겠는가. 다른 날 티켓은 두 세배가 더 비쌌다. 그래서 그냥 99달러짜리 티켓을 샀다.

라이온 킹 티켓을 예매하고 타임스퀘어 전경이 훤히 보이는 보이는 계단에 앉았다. 여기저기 휘향 찬란한 광고들이 보인다. 한 광고판을 보면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다. 하나같이 광고들이 잘 만들어졌다.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인종, 민족들이 아주 다양하고 조화롭게 어울린다. 다문화사회가 발전하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다. 파리에 집시가 있다면 뉴욕에는 디즈니 캐릭터들이 있다. 디즈니 캐릭터들은 관광객에게 악수를 하고 같이 사진을 찍은 뒤 돈을 받는다. 유럽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 사람들은 같이 모여있다가 누군가 한 명이 찍으면 우르르 모여서 꼽사리를 끼고 돈을 달라고 말한다. 귀여운 디즈니 캐릭터로 다가와서 사진을 찍은 뒤에는 가면을 벗고 '아 사진을 찍었으면 돈을 내야 될 것 아니야?'라는 표정으로 정색하고 손을 내민다. 관광객들의 표정이 모두 웃다가 일그러진다. 너무 노골적인 상행위는 사기를 당했다는 기분마저 든다.

월가에서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는 걸 느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생각지 않은 타임스퀘어에서 그런 것을 느꼈다. 수많은 전광판, 붐비는 사람들, 소란스러운 소음들이 즐비한 거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비슷하다. 뉴욕은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닮아서일까 낯설지가 않다.


숙소에 돌아와서 같이 에어비앤비 주인과 함께 사이다를 마셨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져온 보드카와 진을 자리에 펼쳐놓고 주찬이가 사 온 닭다리를 안주로 삼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얘기를 하던 도중 군대 얘기가 나왔다. 한국 여자들은 군대 얘기, 축구 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제일 싫어하는데 여기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외국 여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먼저 물어본다. "군대 어땠어? 군대 이야기 좀 해줘"

얘기를 하다 보니 내 군 시절 사진을 보여주게 되었다. 내 짧은 머리의 모습을 보더니 "이게 정말 너야?"라고 하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 외모에 관한 얘기로 이야기가 흘렀다. 머리가 길고 수염을 기르는 내 모습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더니 짧은 머리의 군인일 때 모습이 훨씬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왠지 서윤이가 두 명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서윤이 말이 기억이 난다. "아 집에 왔더니 오빠는 어디 가고 언니가 앉아있어! 머리 좀 제발 잘라 오빠!" 이제 수염까지 길렀으니 동생의 반응이 궁금하다. 더욱 격한 반응을 보이겠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하다 보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여기 숙소가 너무 좋아서 이틀 정도 더 묵으려고 했는데 에어비앤비가 중간에 끼면 수수료가 들기 때문에 숙소 주인과 현금박치기를 시도해보았다. 숙소 주인이 마음씨가 좋아서 여기서 이틀 더 묵는데 반값에 묵게 해주었다. 비싼 물가의 뉴욕에서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 글을 쓰다가 너무 피곤해서 완성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이제야 다시 정리한다. 여행 중에 글을 쓰는 것은 참 재밌지만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좋다. 하나하나 여행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이 나는 행복하다. 오늘은 라이온 킹을 보러 간다. 군대에서 후임이었던 형욱이가 추천해주었고 여행 중에 만난 뮤지컬 배우 해병대 선임이 추천해주었다. 기대가 된다. 아트 백냐~ 발발이 치와와 백냐~

라이온 킹을 보러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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