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준 May 09. 2016

가장 아쉬울 때가 가장 떠나기 좋을 때이다.

뉴욕을 떠나 워싱턴으로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우리 뒤에 오는 외국인이 오전 7시에 우리 숙소에 도착했다. 부지런한 유섭이가 일어나서 그 외국인을 맞아주었는데 그 외국인은 유섭이가 호스트인 줄 알았단다. 이곳에 있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우리가 여기 집주인과 같은 기분이다.

수함 이가 차를 운전해서 회사 근처에서 밥을 먹고 헤어지자고 했다. 그래서 수함 이를 따라서 수양 누나와 함께 수양이 차를 타고 퀸즈로 넘어갔다. 수양이는 배용준과 결혼한 박수진을 닮았다.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게 착하게 생겨서 생글생글 웃는데, 운전대를 잡으니 아프리카의 날뛰는 야생마 같다. 시원시원하고 과격한 그녀의 운전이 참으로 대단했다.

퀸즈에 도착하니 중국어와 한국어 간판이 많은 곳에 도착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고 중국식당을 들어갔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을 보니 꽤 맛있는 집 같았다. 밥을 먹는데 이 밥을 먹고 난 뒤에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아쉬웠다. 뭐 얼마나 봤다고 벌써 정이 들었다. 여행하면서 웬만하면 다른 것은 다 적응이 되는데 헤어짐은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쿨하게 헤어지기로 했다. 수함이는 식사 후에 회사로 출근하고 나머지는 수양 누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큰 짐을 숙소에 두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짐을 챙기고 숙소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동안 숙소에서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숙소에서 떠나기 싫었다. 하지만 가장 아쉬울 때가 가장 떠나기 좋을 때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가 지금이었다. 숙소 주인인 수양 누나가 참 고마웠다. 밤늦게 들어와서 시끄럽게 굴어도, 늦은 시간에 와서 준비해놓은 양꼬치를 먹어도 아무 말 없이 괜찮다고 같이 먹어준 누나가 생각났다. 수양 누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숙소를 나왔다.

자유의 여신상 크루즈를 타려고 했는데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겨우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본다는 기대감에 살짝 젖어서 가슴이 부풀었다.

우리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달려가서 메트로를 탔다. 지하철도 아슬아슬하게 오자마자 바로 탈 수 있었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지하철이 가다가 갑자기 멈춘 것이다. 안내방송에서는 트래픽 잼이라고 하는데 지하철이 무슨 트래픽 잼인가. 정확히 무슨 이유에 선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똥줄이 탔다. 초조해졌다. 근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못 탄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는 티켓을 환불을 하러 우리가 티켓을 샀던 장소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정 거장을 더 지나 지하철이 또 멈춰 섰다. 이번에는 지하철역에서 문이 열린 채로 멈췄다. 어디서 내려야 할까. 지하철 노선도를 보여 내려야 할 역을 찾고 있을 때 친구 한 명이 외쳤다. "야 우리 여기서 내려야 해!"

마치 우리가 내릴 때까지 기다렸던 것처럼 지하철이 5분 정도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황급히 짐을 챙겨서 지하철을 뛰쳐나왔다. 우리가 나오자마자 지하철문이 닫혔다.

우리는 자유의 여신상 유람선 티켓을 환불하러 티켓을 구입한 곳에 도착했다. 가격은 약 29달러. 티켓 유효기간은 2주가량이다. 구입한 장소에 도착하니 환불은 더 큰 건물에서 해주는 거라며 위치를 알려준다. 우리는 무거운 짐을 들고 더 큰 건물로 향했다. 가는 길은 택시 탈 정도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멀었다. 가는 길에는 우리가 MOMA 현대 미술관에서 나와서 먹었던 할랄푸드 트럭이 있었다. (할랄푸드는 유대인의 코셔와 같이 코란에 적혀있는 대로만 만든 음식이다.)

앤디 워홀의 HOPE작품 뒤에 있는 트럭이었는데 무슬림들이 먹는 음식을 팔았다. 이집트에서 온 친구들이 장사를 하는 곳이었는데 6달러라는 가격에 굉장히 많은 양의 밥을 주었다. 케첩으로 착각한 핫소스를 붓지만 않았어도 맛있게 먹었을 텐데 먹는 내내 너무 매웠다. 너무 매워서 마요네즈 같은 하얀 소스를 더 달라고 했더니 힘 조절에 실패했는지 소스를 밥보다 많이 줘서 소스로 국을 만들어줬었다.

우리는 할랄푸드트럭을 지나서 드디어 더 큰 건물의 여행사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우리는 "티켓 리펀드! 티켓 리펀드!"를 외쳤다. 근데 돌아오는 대답이 황당했다. "야 너네가 산 곳에서 티켓을 환불받아야지 왜 우리한테 와서 환불을 해달래? 거기 매니저한테 가서 다시 환불해달라 그래. 우리는 거기랑 상관없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우리에게 다시 왔던 곳으로 가라고 했다. 아 나의 마지막 뉴욕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티켓을 구매한 곳에 연락을 한통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그 직원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면 매니저에게 상황설명을 해주는 게 일처리가 빠를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 직원은 귀찮은 듯이 우리랑 상관없고 너희에게 그런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도 없으니 가라는 얘기를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는 허쉬 초콜릿과 M&M 초콜릿 본사가 있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연상시키는 이곳에서 우리는 스트레스를 풀 겸 초콜릿 구경을 했다. 가게 안에는 거대하고 재밌는 초콜릿들이 많았다. 초콜릿 가게에서 나와서 친구 한 명과 나는 고디바 가게에 들려 아이스 쵸코를 먹었다. 무려 5달러나 하는 아이스 초콜릿이었지만 5달러가 전혀 아깝지 않은 순수하고 진한 초콜릿이었다. 달고 맛있었다. 한국에 가면 다시 사 먹어보고 싶다.

우리는 처음 티켓을 샀던 빌어먹을 여행안내소로 돌아왔다. 예약할 때는 그렇게 친절하게 하더니 환불하려고 하니까 어떻게든 환불을 해주지 않으려고 한다. 절차는 학교 행정실 마냥 쓸데없이 복잡하고 답답할 뿐이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설명하고 환불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이 자기의 슈퍼바이져에게 연락을 해본다고 한다. 그러나 슈퍼바이져는 여기서 환불을 해줄 수 없다고 한다. 이유가 참 웃겼다. 예약을 받은 직원이 다른 직원이라서 환불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는 같은 회사인데 직원이 다르다고 환불이 안 되는 게 말이 되냐고 물었더니 회사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놈의 회사 규정. 참 편하게 일한다.


우리는 티켓에 적혀있는 고객센터에다가 전화를 했다. 그리고 얘기를 하다가 직원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전화하면서 수십 분이 지나자 직원은 우리에게 환불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아니 진작에 해주던가!

근데 환불해주는 경로가 이상하다. 우리가 현금으로 결제했지만 현금으로 환불해줄 수 없다고 한다. 수표로 줄 거라고 이메일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고 사인을 하란다. 그래서 수표를 주나 싶었더니 이메일로 여러 문서를 보낸 후 절차를 밟은 다음에 수표를 지급하는 방향으로 하겠단다.

워싱턴으로 가야 하는 시간은 다가오고 점점 우리는 촉박해지는데 직원은 웃으면서 우리에게 여유를 부린다. 주찬이는 신용카드로 결제해서 신용카드로 받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줄지는 모르겠다. 뉴욕에서의 마지막이 분주하다. 너무나도 쓸데없이 복잡하고 회사위주로 짜여있는 정책에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티켓 환불 일을 마치고 우리는 워싱턴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탔다. 미국에는 메가버스와 그레이하운드라는 두개의 큰 버스회사가 있는데 여태껏 메가버스만 탄 우리는 이번엔 그레이하운드를 타기로 해본 것이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메가버스보다 좋았다. 버스에 앉아서 글을 쓰다가 잠이 들었다. 잠에서 한 두 번 깼는데 시간이 금방 간 듯 싶었다. 실제로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예상 시간보다 일찍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레이하운드가 내 생각엔 메가버스보다 더 쾌적하고 좋은 것 같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피자나 햄버거를 먹으려고 했는데 실내온도가 냉동창고처럼 춥기도 하고 가격도 비싸서 나가서 먹기로 했다. 피자를 시켜먹으려고 하는데 옆에서 전화하는 미국 아저씨 억양과 발음이 굉장히 특이하고 목소리 성우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미국 경찰에게 지하철 표 사는 방법을 물어봤는데 굉장히 시크하게 지하철 위치만 알려줬다. 뭐 만사가 귀찮은가 보다. 하나도 안 멋있는데 짜식이 멋있는척한다. 지하철 티켓을 사려고 하는데 지하철 티켓 자판기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다. 여기는 미국의 수도인데 어떤 머리 나쁜 사람이 만들었는지 쓸데없이 복잡하다. 모두가 티켓이 아닌 교통카드를 만들게 하려고 하는 속셈인듯하다.

지하철을 탔는데 주찬이가 행선지와 목적지를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같은 정류장을 3번 지나쳤다. 지하철의 분위기가 뉴욕 하고는 사뭇 다르다. 어딘가 영화에서 나왔었던 것 같던 신비로움과 깔끔함이 느껴졌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도 분위기가 뉴욕 하고는 다르다. 대체로 백인들 중심에 흑인들이 있고 동양인은 버스에서 만난 한 명 말고는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또 다른 지하철에는 흑인이 되게 많다. 미국은 되게 다양하다.

거리에 사람이 없고 큰 도로 넓은 도로와 차들이 많다. 삭막한 분위기의 회색 건물만 있고 KFC나 맥도널드가 하나도 없다. 여행객들에게는 조금 적응이 필요할 것 같다. 텅 빈 건물과 휑한 도로, 워싱턴의 첫인상은 삭막하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주택가가 나온다. 분당에 있는 불곡중학교 앞에 있는 그랜드 빌라와 같이 생긴 빌라촌들이 큰 도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쭉 늘어서있다. 금방이라도 영화 나 홀로 집에 나오는 케빈이 튀어나올 것 같다. 붉은 벽돌, 노란색 조명 키가 제법 큰 나무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없다. 고요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마트에 갔다. 동네 마트인 줄 알았는데 마트가 제법 컸다. 마트에서 후라이드 치킨과 피자를 사서 집에 가져와 먹었다. 치킨에서는 오징어 맛이 났고 피자는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뒷정리를 하는데 유섭이가 뒷정리를 맡았다. 우리 모두 피곤했던 터라 방에 들어가서 금방 잠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꿈을 걷는 느낌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