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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y 13. 2016

구별된 시간을 지키는 것

나는 교회를 다닌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일요일마다 주일성수라는 것을 한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하는 것을 가리켜 주일성수라고 부른다.

여행을 하다보면 주일성수를 하기 힘들 때가 많다. 가난한 학생 여행객이라 스케쥴을 싼 교통수단에 맞춰 짜다보니 어쩔 때는 일요일 내내 기차나 버스 안에서 보낼 때가 있거나 늦은 밤에 도착해 열려있는 교회를 못찾는 경우가 많다.

교회를 간다는 것은 구분된 시간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남은 시간에 대충 교회에 가는 것은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내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있다면 남는 시간이 아니라 먼저 구별해놓은 시간을 지키는 것이 맞다.

중동을 여행하거나 우리나라 남이섬, 혹은 다른 나라에서도 무슬림들을 보면 일정 시간이 되면 메카를 향해 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매 시간을 구분하여 메카를 기억하고 절을 한다. 시간의 주인이 알라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시간을 구별해서 자신이 믿는 그 무엇에 공을 들이는 것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이번주에 교회를 가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에 갈꺼야.' 라는 생각. 주일성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죄책감은 군대에 있을 때 찾아왔었다.

바로 앞에 북한이 보이는 근무요건 속에서 주일성수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종교활동을 가면 누군가는 가지 못하는 상황. 야간근무를 서야할 때는 잠을 잘 수 있는 6시간 중에 3시간을 쪼개서 교회를 갔지만 주간근무를 서야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교회를 가지 못했다.

교회를 가지 못하는 날에는 혼자 침상에 앉아서 성경을 보았다. 찬송가도, 피아노 반주도, 목사님의 설교와 축도도 없었다. 다만 내게 있는 것은 성경책 한권이었다. 성경책 안에는 찬송가도 있었다. 악보를 볼 줄 몰라서 가사를 보면서 그냥 읽기도 하였다.

교회에선 콰이엇 타임의 약자인 Q.T집으로 성경묵상을 하는데 내겐 그런 것도 없었다. 교회에서 군대가면 매달 보내준다고 했는데 6개월에 한번씩 오거나 오질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잘 된 것 같다. 오히려 큐티집이 있으면 그 안에 적혀있는 인위적인 가이드라인 때문에 스스로 내 안에 있는 답을 찾기 보다는 큐티집의 저자가 의도하는 주제를 억지로 끼워맞추는 식의 묵상을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주일 성수를 하지 못할 때 성경을 읽었다. 죄책감 반, 간절함 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죄책감은 사라졌다. 하나님은 내가 주일성수 하지 못하는데 성경본다고 지옥 보낼 쪼잔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난 교회에 가지 않고 성경만 볼꺼야 라는 식의 다짐은 조금 성급한 것 같다. 세상은 혼자 사는게 아니라 같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늦은 새벽까지 맥도날드에 있다가 아침에 일어났다. 먼저 일어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야 오늘 교회 어떻게 할꺼냐?" 나는 순간 고민됐다. '오늘 친구 교회에 따라가면 늦게까지 있어샤 할텐데 모르는 사람들하고 같이 오래 있으면 뻘줌할텐데 어떡하지.' 그래서 처음에는 같이 안간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친구가 일하는 교회의 모습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같이 가기로 했다.

친구가 일하는 교회는 오늘 야외예배를 간다고 했다. 미국의 예배는 매일 야외예배를 하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1년에 한번 하는 것이었다.갈 때는 친구차를 타고 이동하고 올 때는 친구의 룸메이트 형의 차를 타고 돌아오기로 했다.

교회에 가서 물품을 챙기고 야외예배 장소로 향했다. 단지가 펼쳐진 곳에 나무그늘이 듬성듬성 있는 캠핑장이었다. 미국은 땅덩이가 넓어서 그런가 이런 공간이 많다는 것이 좋았다.

야외예배를 하고 집에 갈 시간이 됐는데 나를 델가기로 한 룸메이트 형이 야외예배인걸 모르고 교회에 갔다가 늦어버리는 바람에 예배를 못오게 됐다.

나는 그냥 친구랑 같이 잔디밭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유유자적하면서 놀았다. 한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 집사님은 참 많이 드셨다. 배가 터질 것 같은데 집사님이 "이것 좀 먹어봐 더 먹어 더 먹어" 하시면서 음식을 주셨다. 진짜 배가 가득 찼을 때 후식으로 집사님이 갈비를 먹으라고 하는 것을 듣고 음식이 무서워졌다. 하지만 그냥 먹었다. 먹으니까 또 들어갔다.

돗자리깔고 나무그늘 밑에서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대성통곡을 하며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남겨놨던 치킨 누가 먹었어!" 아 치킨을 먹으려고 했는데 누군가가 아이의 치킨을 먹었나보다. 아이는 계속해서 울었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말했다. "치킨 저기 많아, 울음 뚝 그쳐. 치킨 갖다줄께." 아이는 대답했다. "아냐. 아까그 치킨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내 치킨이었단 말이야. 이제 치킨은 없어. 치킨은 없다고!!!" 아이는 허리를 꺾어가며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때 아이의 엄마가 치킨을 한바스켓을 가져와서 아이에게 쥐어주었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울음을 뚝 그치고 행복표정으로 치킨을 먹었다.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만드는 치킨. 치킨은 위대하다.

교회의 구성원을 보니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교회에서 청년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30대 중반, 무거운 짐을 나르고 악기를 세팅하고 뒷정리를 하는 것도 30대 중반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10대, 20대초반의 아이들은 귀한집 자식이라서 그런지 일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놀고 있었다. 뭐 여기의 문화인가보다 하고 지나갔다.

교회 구성원의 나이대가 평균적으로 높은 곳에서 전도사로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친구의 어깨가 무거워보였다. 힘내라는 식의 말을 건네자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교회는 나이가 들어가고 앞으로 우리가 섬겨야할 사람들은 나이가 많으신 분들인데, 미리 연습하는 셈 치고 열심히 해야지." 친구 말이 맞았다. 나이도 많고 텃세도 부리는 어른들 가운데서 고군분투하는 친구의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멋져보였다.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십자가의 길이었다.

야외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은 어제 보지 못했던 야경을 보기로 한 날이다. 시카고의 야경이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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