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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y 13. 2016

여행이 끝나면 어떡하지?

여행 돌아오면 뭔가 보상되는 것이 있을 줄 알았다.

한인 예배를 마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특이한 건물이 있었다. 종교의 끝이 모두 하나라고 주장한다는 신흥종교라고 했다. 흥미가 생겼다. 그런데 내 기대와는 다르게 기존에 있던 종교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기존에 있던 종교들을 섞고 자신들의 예언자 한 명을 더 추가시켜서 새로운 종교를 만든 것뿐이었다. 딱히 새로울 것도 배울만한 것도 없었다.

사원을 나와 친구들이 있는 기숙사로 향했다. 이제 막 일어난 친구들을 데리고 우리는 야경을 보러 갔다.

야경이 보이는 라운지를 향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귀가 먹먹해지더니 순식간에 100층가량의 높이에 도착했다. 

시카고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훗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고 싶은 곳이 하나 더 늘었다. 이 세상에 예쁘고 좋은 곳은 거의 다 찜해놨으니 결혼하면 신혼여행으로 세계여행을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카고의 야경을 보고 우리는 핫도그를 먹으러 갔다. 폴리쉬라고 불리는 핫도그였는데 역시나 별다를 것 없는 간단한 핫도그인데도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고 차를 타고 와서 줄을 서서 먹었다. 탁월함과 꾸준함이 만든 결과였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아쉬움이 가시질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 기숙사에서 묵는 친구들과 웅기는 작별인사를 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샤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웅기가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는 웅기와 작별인사를 했다.


웅기가 떠난 숙소에서 샤워를 하다가 문득 여행 후의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 끝나면 한 여름밤의 꿈처럼 끝나면 어떡하지?'


휴학을 한 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보려고 했는데 맥도널드에서 웅기와 얘기한 대로 졸업은 책임감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졸업부터 하고 나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서 학교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책을 한 권 써보고 싶다. 폴라로이드 사진 장사에서부터 여행 후의 얘기까지의 내용을 책으로 묶어보자. 언젠간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

사실 한국 돌아가면 사람들은 어디가 제일 좋았어? 여행 재밌었어? 등의 질문을 한 뒤에 그냥 우리들이 살던 대로의 쳇바퀴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여행 돌아오면 뭔가 보상되는 것이 있을 줄 알았다. 강연회에서 불러준다던가 뭐 어디 부서를 맡으라는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던가. 작년에 그런 것을 꿈꿨는데 쥐뿔도 없었다. 나는 그냥 학교 다니는 학생이자 조금 특이한 사람 정도였다.

이번에 돌아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으로 뭐 먹고살지?라는 걱정이 가득했었던 여행 전과 지금은 뭐가 다른가? 그 고민을 안고서 했던 많은 여행들의 기록이 내게 남아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고민을 여행이라는 도구로 풀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했다.

여행 60일 차, 10일 정도의 여행 기간이 남았다. 여행의 결론이 뭐냐라고 물었을 때 아직까지 내 대답은 '글쎄'이다. 듣는 사람도 답답하겠지만 나는 오죽 답답하겠는가. 속이 터질 지경이다.

여행 후를 이제 준비해야겠다. 여행 후유증이 아니라 여행을 디딤돌로 이번에는 좀 힘차게 살아봐야겠다. 현실이라는 벽이 부딪혀 여행 가고 싶다고 자위하고 회상하는 삶은 싫다. 현실이라는 벽 앞에 여행을 발판 삼아 벽을 뛰어넘고 싶다. 혹시 아는가? 여행은 발판이 아니라 날개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 웅기 집을 나온다. 웅기와 아침에 작별인사를 했다. 방에 와보니 녀석 방이 깔끔하고 나름의 규칙이 있다. 약간 지저분한 게 편한 나랑은 좀 거리가 멀다. 확실히 같이 있으면 서로의 속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 볼 것 같은 친구다. 어휴 초등학교 때부터 봤는데 벌써 26살이다. 징그럽다. 빨리 이 집에서 나가야지.

배 터지게 사육시켜준 웅기가 고맙다. 본인의 바쁜 일정과 스트레스가 가득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데리고 돌아다녀줬다. 나도 한국에 가면 누군가 여행을 왔을 때 웅기가 했던 것처럼 해야겠다. 고맙다. 친구. 다시 보자.


게렛 대학교 학식을 아점으로 먹었다. 바비큐 치킨 퀘사디아가 7달러 정도 하고 치폴레 치킨 치즈 스테이크와 치킨너겟 몇 조각을 하니 10달러이다. 스모크 클럽과 오징어 양파튀김, 스프라이트를 하니 11달러이다. 내가 메뉴를 잘못 선택한 것 같기도 하지만 가격 대비 그렇게 훌륭한 식단은 아니다. 가이드북에서 학생식당은 가난한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버거킹이 좋은 것 같다.

어제 먹은 밥이 아직까지 배에 남아있다. 여행을 하면서 맡은 꽃향기, 세찬 바람, 맑은 하늘을 어디선가 보면서 그 여행의 순간을 떠올리는데 한국에 돌아가서 배가 부르면 시카고가 생각날 것 같다. 웅기의 완전한 사육의 목표는 배가 부를 때마다 시카고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었나 보다.

시카고 공항을 떠나기 전 시카고 피자를 먹었다. 두꺼운 도우에 이중삼중으로 들어있는 재료가 한층 풍미를 더한다. 한국에 가면 이것도 못 먹겠지. 공항 피자마저 맛있는 시카고가 원망스럽다. 차라리 맛이 없었으면 아쉽지 않기라도 할 텐데. 이 피자를 두고 간다니 가슴이 아프다. 피자를 먹고 비행기를 탔다. 비행 중에 기내에서 와이파이가 된단다. 5년 전에 와이파이가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어떤 기사를 보았는데 기사의 내용은 비행기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가격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부자들 말고는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와이파이는 비행기내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 어딜 가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마크 주커버그는 드론을 이용해서 전 세계의 오지에서도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나중에는 우주여행도 누구나 할 수 있고 우주에서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은 멀어 보이지만 수십 년 안에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시카고에서 향하는 목적지는 라스베이거스이다.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라서 그런지 옆에 앉은 예쁜 누나가 핸드폰으로 포커게임을 한다. 누나가 예쁜 것은 좋은데 신발을 벗고 내 쪽으로 발을 내밀고 있어서 발 냄새가 난다. 예쁜 여자도 발 냄새가 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새롭다. 근데 냄새가 너무 심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나를 한번 힐끔 보더니 포커를 마저 한다. 누나에게 발을 내려달라고 하고 싶지만 자세가 너무 편하게 있어서 차마 그럴 수가 없다. 이륙하면 알아서 발을 내리겠지.

친구들과 함께 라스베이거스에서 100만 불을 벌어서 개인 헬기로 그랜드캐년을 여행하기로 했다. 유섭이가 100만 불 벌기로 했으니 나는 200만 불을 벌어야겠다.

라스베이거스 이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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