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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y 17. 2016

한인타운의 밤은 어둡다.

UCLA를 갔다가 저녁에 들어왔다. 유섭이가 나 때문에 많이 기다렸다. 앞에 차가 많이 막혔다. 소방차가 지나가는데 벌금이 800달러 정도 한단다. 역에서 내렸는데 거리가 수상했다. 위험해 보였다.

유섭이를 만났는데 폐인이 돼있었다. 유섭이를 데리고 한인타운으로 갔다. 한인타운 분위기는 이상했다. 한국도 아닌데 한국보다 한국 같았다. 엘에이 와서 한인타운에서 있다가 왔다고 하면 그냥 이태원에 있다가 온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미국이라고 다 같은 미국이 아닌 것 같다.  

친구들과 거의 마지막 밤이라서 클럽을 가볼까 생각하고 돌아다녔다. 벤츠와 베엠베가 주차돼있고 클럽 음악과 클럽복장을 한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이 보였다. 뭔가 하고 들여다봤는데 초밥집이었다. 이게 뭐지.

그 옆에 조명이 파란 곳이 있길래 신분증 검사를 하고 들어갔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갔는데 옷을 야하게 입은 여자들이 바에 서있고 30-40대 남자들이 그 여자들과 술을 마시며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여긴 우리가 올 장소가 아니구나 하고 옆에 있는 노래방에 갔는데 노래방 분위기가 이상했다. 노래방 안에는 역시 30-40대 남자 혹은 젊은 남자가 여자들을 사이사이에 끼고 놀고 있었다. 그때 우리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웨이터 복장을 한 그 사람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노래방에 놀러 왔는데 얼마냐고 물어봤다. 웨이터는 '양주 기본 포함에 200달러부터 시작돼요.'라고 대답했다. 아 여기도 우리가 올 곳이 아니구나. 건물을 나와서 돌아다니는데 아이라인이 짙고 살이 통통하게 찐 한국 여자와 햇빛을 많이 맞아서인지 구릿빛 피부가 된 한국 여자들이 많았다. 미국물 먹은 한국인의 이미지와 비슷했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외국인의 품에 안겨있었다. 여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한국어를 어눌하게 하는 한인 2세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홍대 앞 포차 같은 곳에서 불금을 보내는 장면도 보았다.

부모님 돈으로 미국 유학 와서 이곳에서만 있다가 한국에 가면 정말 불효가 될 것 같았다. 여긴 미국도 한국도 아닌 그냥 한인타운이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코메리카 정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경찰차 수십대와 헬기 3대가 한 곳으로 집중되는 광경을 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우리는 서둘러서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는 수많은 경찰차와 20명의 경찰이 한 사람을 체포해서 바닥에 눕혀놓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주위를 서성이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하고 물어보자 잘은 모르겠지만 마약과 관련된 것과 같다고 했다. 경찰들이 수색하고 있는 차를 보니 하얗고 큰 봉투들이 보였다. 우리는 계속 구경을 하다가 상황이 진전될 것 같지 않아서 그냥 가던 길을 갔다. 그런데 강아지를 데리고 있는 남자 한 명이 보였다. 덩치가 제법 큰 강아지가 나를 물려고 달려들었다. 외국인이 굿보이 굿보이 하니까 강아지가 착해졌다. 강아지를 만지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외국인은 도대체 한 사람을 잡는데 경찰이 몇 명이 동원되는거냐며 의문을 가졌다. 얼마 뒤 그 남자가 경찰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미국인들은 그런 게 좀 있다. 내 친구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공권력 혹은 어떤 거대한 세력 앞에서 당당하게 마주 하는 게 있다. 20명의 경찰이 범죄자를 잡고 헬기까지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경찰에게 민주시민으로서 대등하게 물어볼걸 물어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있던 남자는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해주기를 마약 사범이 경차들이 오자 총으로 위협했다고 한다. 아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한인타운은 위험한 곳이었다.

여기서 택시를 타고 갈까 아니면 걸어갈까 고민하다가 우리는 걷기로 했다. 무서웠다. 졸았지만 유섭이 아이라서 담담한 척했다. 예전에 학교 철학사를 가르치던 이X재 교수님이 할렘가에서 잘못 내렸다가 흑인이 덮치길래 엎어치기 해서 집에 돌려보냈다는 예기가 기억났다. 권총 소지가 가능한 미국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와 친구는 그냥 걸어갔다.

여행하다 보면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 겁이 나는 순간도 많다. 그럴 때마다 그냥 자신감을 갖고 들이대면 어떻게든 다 된다. 겁이 나는 건 마찬가지지만 대응하는 마음가짐이 다를 뿐이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숙소 근처 거리는 안전하다고 했는데 저쪽에서 수갑을 채우고 있었다. 한인타운은 그냥 밤에는 전부 위험한 곳이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어떤 한국 여자 둘이 짐을 사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짐을 싸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핸드폰 플래시를 켜줬다. 숙소로 올라와서 유섭이와 세븐업 한 캔을 했다. 그리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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