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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y 26. 2016

착한 사마리아 취업준비생

취업 세미나에서 사람이 쓰러졌다.


한시에 시작하는 세미나에 참여하기 위해 12시 30분쯤에 도착했는데 사전접수 후에 스티커를 받아오란다. 사전접수 후에 강연회실에 들어가려 가는데 길바닥에 스티커가 한 장 떨어져 있다. 세미나장 입구에서 나와 같은 신세의 여자와 남자가 우물쭈물하고 있길래 고민이 됐다. 여자한테 주는 게 맞을까 남자한테 주는 게 맞을까.

오르세 박물관 앞에서 재입장이 가능한 티켓을 두고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남자한테 줄까 여자한테 줄까. 당시 여자한테 줬는데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뭔가 배신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파리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남자에게 스티커를 주었다. 요즘 세상엔 남자가 약자니까.  

세미나를 들으려고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안은 이미 가득 차 있고 밖에 줄을 서있는 상태. 취업을 하기 위한 청년들의 현실이 그대로 보였다. 한껏 차려입고 어떻게든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밀고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냥 남의 얘기 같진 않았다. 내가 처한 현실이다.

우글우글 입구에 줄을 서있는데 xBS에서 취재를 나왔다. 피디가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를 찾더니 "야 저깄어 저깄어!"라고 말하고 인터뷰를 한다. 근데 질문들이 하나같이 이상하다. "여기 왜 이렇게 줄 서있어요? 취업 준비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 근데 그 예쁜 여자는 인성도 좋다. 그걸 다 대답해주고 있다. 먹고살려고 줄 서 있죠 피디님아.

정장에 구두에 넥타이까지, 남자들은 신입사원 복장과 말끔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단정하고 예쁘게 꾸미고 있었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안보이던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세상 예쁜 여자들은 여기 다 있는 것 같았다.

300명 정도 모이는 세미나실에는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욱여넣어져 있었다. 에어컨을 틀었는데 사람이 많은 건지 실수로 히터를 틀었는지 안에 반팔을 입고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더웠다.

세미나가 반쯤 진행되었을 때 갑자기 어떤 여자가 비틀대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했다.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이렇게 좁은 곳에서 뭐하냐는 식의 눈빛을 보냈다. 근데 그 여자는 더욱 비틀거렸다. '술을 많이 마셨나?'라는 생각이 들 즈음에 여자가 픽 쓰러져버렸다.

사람들은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 도와주겠지 싶은 눈빛으로 세미나를 마저 듣기도 했다. 사람이 쓰러져있는데!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괜찮냐고 물었고 길을 튼 후에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물을 한잔 떠다 주고 세미나실 내부가 너무 더운 탓에 어지러움이 생겼고 그대로 쓰러졌다는 얘기를 했다.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내 옷을 가져다준 사람과 음료수를 가져다주며 이걸 마시라고 하는 사람이 같이 나왔다. 넷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쓰러졌던 사람이 기운을 차린 것 같아서 우리 셋은 세미나장으로 향했다. 세미나장에 갔더니 거의 끝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여전히 우글우글해서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못 들어가서 어떡해요?"라고 내가 물어보자. "뭐 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쓰러진 사람을 도우러 밖으로 나온 두 명 모두 예전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사람들이었다. 취업세미나는 본인들한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을 텐데 그런 것 마다하고 쓰러진 사람 도와주러 나온 사람들을 보니 착한 사마리아인이 생각났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성경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 쓰러져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자신들이 할 일이 있다며 성급히 그 자리를 떴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은 쓰러져있는 사람을 돌보고 숙소에 머물게 하며 숙박비까지 지불하였다.

나는 오늘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을 만났다. 사람이 먼저라고 사람 중심의 회사가 되자고 말하는 회사들인데 그런 회사에 들어가려면 사람이 쓰러져도 본체만체하고 세미나에 집중해야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늘 그 쓰러진 여자를 도와준 여자와 같은 사람이 딱 취업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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