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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y 25. 2016

끝나지 않은 여행, 외국인 친구들

한국에도 얼마든지 멋진 곳들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북촌 한옥마을, 삼청동)-창덕궁 후원-카페에서 휴식-창덕궁-인사동-종로 3가-(명동)-남산타워-서울역

가이드 첫날, 아침에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가는 것처럼 떨린다. 분명히 사전답사도 다녀오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하나도 준비한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든다. 청심환이라도 먹어야 하나.

버스를 타고 서대문에 도착해 서울역사박물관까지 걸어갔다. 약속시간보다 약 40분 정도 일찍 도착했기에 박물관에 들어가서 보여줄 것들과 준비한 멘트들을 연습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시간은 9시 30분.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친구들이 오지 않는다. 온지 얼마 안돼서 핸드폰도 와이파이가 없으면 쓰질 못한단다. 그래서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통 온다. 전화를 받아보니 가이드를 하기로 한 셀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안해 우리 지금 서대문에 도착했어! 금방 갈게!"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저쪽에서 셀마와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아베띠 셀마" 여행하다 배운 프랑스 아침인사를 했더니 셀마가 대답한다. "아임 쏘쏘리." 내 발음이 안 좋았던 건지 그냥 영어를 쓴 건지. 아무튼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했다.

프랑스에서 온 셀마, 토마스, 쉐이 마, 그리고 덴마크에서 온 림, 쥴리였다. 6명인 줄 알았던 인원이 알고 보니 5명이었다.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있는 옛 지도 위에 서서 가이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서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경희궁 옆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이라는 곳에 있고 오늘은 박물관에 갔다가 북촌, 삼청동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창덕궁을 보고 인사동을 거쳐서 명동에 갔다가 남산타워에 갈 거예요." 친구들은 뭐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날 이렇게 피곤한 하루가 될지는 몰랐다.

서울역사박물관을 한 바퀴 돌면서 서울이 조선시대부터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북촌, 남촌, 중촌의 모습과 복장을 통한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했던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쉐이 마라는 인도 계열 프랑스 친구가 이것이 카스트제도와 같은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현존하는 카스트제도보단 고대 그리스 사회의 플라톤과 같은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계층 질서에 있어서 플라톤과 유사한 생각을 가진 공자라는 사상가가 있었는데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사는 것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길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런 것과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이뤄지는 나라인데, 한편으로 자본주의라는 큰 체제 안에 있기 때문에 돈이 또 다른 계층을 만드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고 대답했다. 쉐이 마는 그건 프랑스도 마찬가지이고 나도 유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박물관 안에서 상평통보도 보여주고 짚신과 나막신도 신겨보고 있자니 외국인들이 신나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리고 하루 종일 여기 있고 싶다고 말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처음 간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조선을 넘어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남북전쟁을 거쳐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까지 보면서 외국인 친구들은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았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우리는 박물관을 나와 북촌으로 향했다. 시간이 굉장히 애매했다. 그래도 서둘러 북촌에서 사진만 찍고 오려고 했다. 안국역 3번 출구로 나가서 직진하고 있는데 창덕궁이 나왔다. 아뿔싸 길을 잘못 들었다. 2번 출구로 가야 하는데 3번 출구로 나와서 계속 걸어왔다. 너무 당당하게 'just follow me'를 외쳤던 나인데, 길을 잘못 들었다. 어떻게든 북촌으로 가보려고 했는데 북촌 13길에서 길을 헤매다가 그냥 다시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왔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창덕궁 옆에 있는 북촌 면옥,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친구가 둘이 있어서 식단을 정하기 애매했다. 가이드를 준비하면서 고민하던 도중 하나의 테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테마를 '조화'로 잡기로 했다. 북촌에서 전통과 현대의 조화, 창덕궁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래서 메뉴도 비빔밥으로 정했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 제주도, 서울 , 경기도가 모두 다 다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 것처럼, 시금치, 고사리, 콩나물, 밥, 고추장, 계란, 참기름이 다 다르지만 비빔밥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날이 더운 탓에 냉면을 시키는 친구들도 있었다. 당시 얼음이 귀했던 시절 해 냉면은 북촌에 사는 권세 있는 사람들이 먹었던 것이라고 소개하니 신기하다며 냉면을 주문했다. 냉면을 시켰는데 젓가랏질을 힘들어하는 프랑스 친구 토마스가 있어서 포크를 주었다. 토마스는 냉면을 파스타 먹듯이 돌돌 말아먹었다. 덴마크에서 온 쥴리가 내게 물었다. 저기 저거 이름이 뭐야? 나는 만두라고 알려주었고 만두 게임을 알려주었다.

식사를 한 후에 창덕궁 후원으로 바로 향했다. 후원에 들어가면서 나는 창덕궁을 소개했다. 서양사람들은 자연을 지배하고 지식을 채우는 것을 추구했고, 한국 사람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추구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고자 했던 조선 사람들의 지혜를 찾아 떠나 보자."라고 말한 순간 옆으로 웬 트럭 한 대가 지나간다. 트럭에서 사람들이 내려서 전기톱과 큰 가위를 들고 나무 위에 올라가 나무를 자르고 있다. 큰 소나무라 그런지 가지치기도 스케일이 크다. 마치 그 모습이 벌목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심히 당황스러웠지만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저것은 나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길을 걷다가 후원 안에 있는 부용지에 도착했다. 외국인 친구들은 자신이 한국에 올 때 기대하고 온 한국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다면서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렇다. 사실 나도 몽마르트르 언덕보다 베르사유 궁전이나 몽생미셸에 갔을 때 비로소 이게 프랑스구나 싶었다.

날씨가 너무 더운 관계로 우리는 후원에서 나와 근처 카페에서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면서 알파벳을 맞추는 핵맨 게임을 했다. 더위에 지친 친구들의 표정이 점점 살아났다. 친구들이 내게 말했다. 우리 이제 어디가? 나는 대답했다."북촌 갔다가 삼청동 갈 거야." 친구들이 말했다. "북촌도 혹시 언덕이 있어?" 나는 대답했다. "응 무지 많아. 아예 언덕에 있어." 친구들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나는 날씨가 너무 더운 관계로 그냥 바로 인사동으로 향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고 친구들은 그게 좋겠다 며 먼저 창덕궁에 들렀다가 가자고 했다.

창덕궁에 갔다가 인사동에 갔다. 폴라로이드 장사를 하던 쌈 짓길 앞에서 친구들에게 폴라로이드를 찍어주었다. 장사할 때 옆에 있던 BIG ISSUE 잡지를 파던아저씨가 여전히 장사를 하고 계셨다. 3개월 넘게 여행비용을 모으려고 장사했던 이곳에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저씨는 그대로였고 쌈 짓길도 그대로였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니 친구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덴마크에서 온 림은 내가 꿈꾸던 카메라가 저거라며 폴라로이드 카메라 구입을 희망했다. 나는 나중에 같이 남대문시장이나 전자상가에 가자고 했다.

밤새 소주와 맥주를 말아먹고 온 토마스가 옆에서 계속 피곤하다는 말을 했다. 이 쉐키가.

하지만 가이드할 친구의 상태를 고려하는 것도 가이드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이기에 주변 친구들의 상태를 살폈다. 친구들은 배가 고프다고 말했고 나는 저 앞에 버거킹이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고향에 온 것 같은 반가움으로 버거킹을 가자고 얘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버거킹에 갔다. 버거킹에 들어갔는데 무슬림 친구들이 먹을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옆에 있는 맥도널드를 향해 갔다. 맥도널드엔 다행히 무슬림 친구가 먹을 수 있는 새우버거가 있었다. 우리는 맥도널드를 맛있게 먹었다.

명동으로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남산타워로 가기로 했다. 남산타워로 가는 도중 프랑스에서 온 셀마가 내게 물었다. 한국에는 스타벅스가 가격도 비싸고 신호등 건너 하나 있을 정도로 많은데 장사가 잘돼. 왜 그런 거야? 나는 대답했다. "나도 몰라 이상하게 한국 여자들은 스타벅스 하면 좋아하더라고.

우리는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남산타워에 도착했다. 나는 준비한 자전거 자물쇠와 미니 화이트보드를 걸고, 빛나는 막대기? 를 준비해서 이벤트 사진을 찍어주었다. 친구들은 서울의 야경을 보며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웅기가 내게 보여주었던 시카고의 야경을 보는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이목표엿는데 시 패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사실 조금 다른 매력이다. 건물 위에 올라가서 보는 것보단 산 위에서 신성한 공기를 마시며 보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남산타워를 내려와 우리는 서울역으로 향했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입구에서 헤어졌다.

그렇게 첫 가이드가 끝이 났다.
집에 친구들을 보내고 다니 굉장히 피곤했다.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이드받을 친구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무조건 많이 본다고 좋은 것이 아닌 것임을 나는 알면서 왜 실천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가이드하면서 대본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대본이 없는 가이드는 자유로움을 가져다 주기보다는 공중에 붕 뜬듯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외국인의 음식을 고려해야 하는 것과 익숙하지 않은 음식문화에 대해 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프랑스에 갔을 때 내가 달팽이 요리 먹는 방법을 몰라서 해 메인 것처럼 외국인이 냉면을 젓가락으로 못 먹는 건 처음이라 당연한 거였다. 더 세심하게 준비하고 정성스럽게 가이드해야겠다. 그리고 공부를 좀 많이 해야겠다. 하루 종일 나의 부족함을 느끼는 하루였다. 시작하길 잘했다. 피곤하고 지치는데 마음이 뿌듯하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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