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준 May 29. 2016

여행이 남자의 머리카락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는 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면서 남들처럼 살아가려고 할까?

(2014년 6월~2015년 10월 머리카락이 자라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2014년 여름, 터키를 여행하면서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을 갔다. 성 소피아 성당 바닥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긴 머리를 한 남자가 터벅터벅 걸어갔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왠지 밤하늘의 별똥별을 촬영하려 하기보단 그저 바라만 보듯이 나도 그렇게 바라보았다. 멋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의 생김새대로 입고 꾸미고 다녔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반가운 인천공항을 걸으며 마중 나오신 어머니와 함께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어머니와 만나 여행 중에 있었던 얘기와 그동안의 안부를 나누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비슷했다. 남자는 흰색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나미 볼펜 같았다. 여자는 흰색과 검은색 스트라이프 옷을 입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학교에 하나둘씩 패딩점퍼를 교복 위에 입고 왔다. 그런데 그 패딩 점퍼의 특정 브랜드가 있었다. 흔히 노페라고 불리는 이 브랜드는 가격이 굉장히 비싸다. 지금 사 입으라고 해도 비싸다. 싼 건 30만 원부터 비싼 건 100만 원 가까이 된다. 도저히 학생들이 살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부모님에게서 나온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친구가 입은 노페를 위해 부모님에게 조른다. 친구들은 입었는데, 나는 왜 못 입게 해?. 아니다. 친구들이 입었으니까 너도 입어야 한다는 그 생각이 웃긴 거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은 노페 패딩을 교복보다 더 교복같이 입고 다니게 됐고, 뉴스에서는 등골 브레이커(부모님의 등골을 빼먹는 사람)이라는 신조어를 방영하기도 했다. 무엇이 부모님의 허리를 휘게 했는가? 그것은 바로 남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집단의 동일감에서 오는 안정감이었을 것이다.

패션에 대해 논하기에는 일단 내가 패션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논하지는 않겠다. '패션 테러리스트, 그렇게 얼굴 쓸 거면 나에게 줘.'라는 등의 얘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패션의 문제 만이 아니다. 남들이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학원을 가고, 남들이 좋은 대학에 가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가고, 남들이 취직하기 때문에 대기업에 취업을 하려고 하고 남들이 토익 공부를 하니까 토익 공부를 하고, 남들이 결혼자금을 모으니까 결혼자금을 모으고, 남들이 이 나이쯤에 결혼하니까 그 나이에 결혼을 하고, 남들이 아이를 안 낳으니까 나도 아이를 안 낳고, 남들이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기 위해 하는 것들을 위해 나도 그것들을 준비한다. 그 소속감에서 오는 안정감, 나는 잘하고 있어라는 자위 섞인 만족감은 반대로 말하면 남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신학생이다. 방학 동안 남들이 교회 수련회를 준비할 때 나는 여행을 다녔다. 돈이 없어서 장사를 시작했고,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탔다. 그렇게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날 때 사람들이 내게 그랬다. "야 넌 신학생인데 교회에서 일 안 해?" 내가 대답했다. "응 안 해." 사람들은 처음에 나를 낙오자 정도로 여겼다. '교회에서 일안 하는 신학생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뭐.' 몇몇의 목사님은 내게 말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너도 그렇게 하도록 해." "나도 여행 많이 다녀봤는데 그거 시간 지나면 다 소용없더라. 여행 중에 찍은 사진도 하드디스크 정리하다가 가끔 한 번씩 볼뿐이지. 목회 할 때는 라인을 확실히 타는 게 중요해."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힘이 빠진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를 안 하고 교회 사역을 열심히 나가는 친구들을 본다. 나는 그 친구들을 비난하고자 하지 않는다. 각자가 느끼는 자신의 인생이 있고, 각자가 경험하는 자신의 삶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예전부터 그런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법보단 FM의 삶이 있다고 배우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사람에겐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머리카락을 기르는 이유는 터키에서 본 남자의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일종의 저항 같은 것이기도 했다. 기르는 동안 별소리를 다 들었다. "머리카락 좀 제발 잘라라. 거지 같다. 지저분하다. 왜 그렇게 사느냐, (비아냥 거리듯이)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상하다. 머리 좀 제발 잘라라. 나 조금 있으면 생일인데 생일 선물로 너 머리카락 좀 잘라라. 왜 머리 기르느냐."

닮을 꼴도 많이 추천받았다. 이외수 작가, 가수 신성우, 한기범 농구선수, 나이 많은 사람 , 데프콘, 빽가, 프랑스 자전거 나라 한주영 가이드, 추노, 미드 배우. 시리아의 성인. 모두 영광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이서준이다. 머리카락과 동시에 이번 여행을 하면서 수염도 같이 길렀다. 수염은 조금 더 강렬한 저항의 표현이었다. 잘 나지도 않는 수염을 기르며 다듬는 일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길렀다. 욕을 더 먹었다.

여행 중에는 내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외국인들은 머리가 멋있다며 얘기를 먼저 꺼내기도 했고 여행을 다니는 나에게 있어서 긴 머리와 수염은 자유로운 여행자의 이미지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면서 남들처럼 살아가려고 할까? 내 안에 갇혀서 몸부림치는 나에게 미안하다. 정말 내 인생이 소중하다면 눈을 감고 한 번 내 안의 내게 물어봐야 할 때가 온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사람들이 정해준 옷을 벗고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하는 껍데기를 벗어버리면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와 소통할 때 비로소 내 인생의 시작이 된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쳐와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는 묵묵히 버티면 언젠가 희망의 햇살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앵앵거리던 모기와 후덥지근했던 더위가 떠나가고 예고 없이 추위가 훅 찾아왔다. 가을의 낭만을 즐기기엔 가을이 너무 짧다. 젊음도 그러하랴.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가을처럼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가을. 찬 바람이 콧구멍에 들어와 추억에 잠기게 만들고 다가올 추위에 바들바들 떠는 나뭇잎들은 옷 색깔을 갈아입고 겨울 맞을 준비를 한다. 하늘을 보니 하늘이 참 맑다.

계절이 바뀌듯 나도 뭔가 변화를 주고 싶다. 이젠 머리도 단정하게 자르고 수염도 밀고 이제 그 내면 외면의 저항을 내면으로 끌어와야겠다.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것은 가을처럼 외롭고 쓸쓸하지만 마냥 혼자는 아니기에 삶이 행복하다. 그렇게 머리도 자르고 수염도 밀었다.

길었던 머리를 자르니 어색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1년 가까이 길러왔던 머리에 나름 정도 들었었는데 아직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적응이 안된다. 머리를 감을 때 샴푸를 3번 정도 짜서 썼는데 이젠 반번으로 충분하고, 음식을 먹을 때 더 이상 머리카락이 음식에 닿을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지 않아도 된다. 신호등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바람이 불어도 긴 머리카락이 춤을 추지 않고, 머리를 말리느라 귀찮게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어폰을 꼽을 때 머리카락이 귓속에 이어폰과 같이 들어가지도 않고, 공부할 때 머리끈이 없어도 편하게 할 수 있다. 머리가 짧으니 편리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은 끝내 사라지질 않는다.

예전 사진들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안 그래도 가을 타나 싶었는데 괜히 글도 쓰고 사진도 올려버렸다. 그래도 이렇게 해놔야 깔끔하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리카락도 깔끔하게 잘랐으니 마음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강화로 떠나는 성지순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