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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Jun 07. 2016

낙오자의 변명

지금 나는 스승을 만났다.

항공에 재취업할 기회가 주어졌다. 대기 순번 1순위였는데 앞사람이 다른 항공사로 가버리는 바람에 내가 취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항공사 사무장도 연락이 왔다. 사무장이 괜찮다고 다 해결될 거라며 붙여준다고 했다. 바로 그때 알람이 울렸다. 일어나 보니 모든 것은 꿈이었고 그렇게 또 허탈했다.

어제 여행하다가 만난 용인 이형에게서 카톡이 왔다. 워낙 바빠서 카톡을 안 하는 편인데 떨어졌다고 말하니 왜 그깟 걸로 질질 짜냐고 카톡이 왔다. 그래 왜 그깟 걸로 이리 상심하는가. 훌훌 털어버리자. 그리고 다시 일어나자.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건 변하지 않는다. 무작정 떠났던 온양의 온천물이 모든 걸 씻어내 주지 않았나 보다. 자책감 섞인 패배감은 내가 스스로 씻어내야 할 묵은 때들이었다.

주일에 하x샘 교회로 설교를 하러 가는데 청소년들 앞에서 여행 얘기를 하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하기 버겁다. 나 자신이 이렇게 미래에 대해 확신이 없으면서 무슨 설교를 한단 말인가.

설교하는 날 아침, 버스를 타고 가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청아하고 구름은 예뻤다. 구름 모양이 마치 하늘이 한 숨을 쉰 것 같았다. 한숨마저도 하늘과 함께 있을 때 아름다워 보였다. 한숨 없는 하늘은 너무 밋밋하다. 구름 없는 하늘이 그렇듯 말이다. 나는 내 한 숨을 존중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니 오히려 잘 됐다. 만약 항공사에 합격했다면 설교시간에 "하나님을 믿으면 이렇게 됩니다."라고 말하며 내 어깨가 으쓱해졌을 것이다. 그때 설교의 주인공은 내가 된다. 떨어졌기에 "하나님을 믿으면 이런 상황이 와도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라고 말할 수 있고 설교의 주인공은 하나님이 될 수 있다. 떨어졌기에 비로소 내 자랑이 아닌 하나님 얘기를 할 수 있게 됐다. 감사하다.

마음의 겸손을 배워야겠다. 고개만 숙이는 겸손이 아니라 마음을 숙이는 겸손. 사실 항공사에 붙어서 돈도 많이 벌고 예쁜 여자도 사귀어서 나를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다. '너희들이 비웃던 내가 이렇게 되었다. 너희의 현실은 어떠냐?'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게 안된다. 오히려 더 큰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그게 속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성공해서 나를 비웃던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되돌려주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나를 비웃었던 사람들도 사랑으로 감싸던 게 예수님이 아니던가? 예수님의 죽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나.

어쩌면 이것은 패배자의 변명이자 자기 위안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것이 패배자의 변명이 아닌 이유는 진 것 같이 보여도 떨어져서 죽은 것 같이 보여도 다시 살아나는 예수님의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제 겨우 26살이다. 실패의 기회와 성공의 기회는 자신의 모습을 감춘채 내 앞에 무수히 깔려있다. 무엇을 밟을지 모른다. 실패할 때마다 좌절하고 성공할 때마다 교만하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실패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성공을 주의하라는 신호라고 생각하자. 지금 나는 스승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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