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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Jun 09. 2016

실패한 장사

정동진 풍등 장사 이야기


2014년 정동진에 폴라로이드 장사를 하러 갔을 때, 풍등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장사가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풍등을 샀다.

남대문시장에 들러보았지만 물품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좋은 세상이다.

동생 과잠바를 빌려 입고 장비를 챙겼다. 떠날 준비를 마치고 분당에 도착해 채진이와 당구를 쳤다. 채진이가 내게 어드벤티지를 줬고 나는 이겼다. 그리고 유섭이가 차를 끌고 왔다. 우리는 정동진으로 출발했다.

폴라로이드 장사는 주로 해가 떴을 때 하지만 풍등 장사는 저녁에 하기 때문에 일찍 도착했다. 그래서 주차하기 좋은 공간을 차지했다.

풍등 장사를 시작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서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가격이 다 똑같아야지. 왜 저기는 오천 원인데 너네는 가격이 이모양이야?" 나는 "핸드폰도 다 같이 비싸게 사고 있고 맥주도 다 같이 비싸게 살뻔했는데 풍등까지 다 같이 비싸게 사자고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기에 아저씨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옆집은 풍등이 불티나게 팔리는 반면에 우리는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캄캄해서 일까.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장사 수완은 마찬가지였다. 자리도 문제였지만 준비해온 장비가 다른 팀에 비해서 부족했다. 다음엔 토치와 큰 테이블, 그리고 밝은 조명을 준비해야겠다.

새벽이 되니 배가 고파졌다. 친구들이 편의점에서 사 온 어묵을 먹는데 여태껏 먹어본 어묵 중에 가장 맛있었다. 어묵이 나를 먹는지 내가 어묵을 먹는지 모르게 뚝딱 어묵을 먹고 나니 다시 배가 고파졌다.

우리는 유섭이가 가져온 코펠에 라면을 끓여먹었다. 1월 1일 밤바다를 바라보며 친구들과 라면을 먹고 있자니 처량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감정이 짙게 깔린 바다내음처럼 다가와 실실 웃었다.

시간이 지나 뿌우~! 하는 소리와 함께 첫 기차 소리가 들렸다. 칙칙폭폭 새해의 꿈을 갖고 오는 사람들을 싣고 달리는 기차소리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사람들이 몰리고 장사가 갑자기 잘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원이 부족한 탓에 풍등을 날려주지 않고 팔기만 하기로 했는데 계속 옆에서 도와달라는 사람이 생겨서 어느새 풍등을 날려주고 있게 되었다.

어떤 아저씨는 "풍등 하나 줘보세요" 하고서 거만한 태도로 돈을 툭 던지고 가기도 했고, 어떤 아줌마는 라이터가 없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줌마에게 "라이터가 10개 넘게 있었는데 모두 고장 나서 지금 편의점에 사러 갔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라고 정중하게 대답했지만 아줌마는 "아니 라이터가 없는데 지금 장사하고 있는 게 말이 돼요? 뭔 장사를 이따위로 하는 거야?"라고 하며 연신 짜증을 되풀이했다. 옆에 있던 아들이 민망했는지 "엄마 왜 그래. 조금만 기다리자 금방 온다잖아."라고 말했지만 아줌마는 무엇이 그리도 화가 났는지 계속해서 내게 쏘아붙이며 라이터를 가져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라이터를 사러 간 유섭이가 주머니에 가득 라이터를 갖고 돌아왔다. 아줌마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라이터를 훅 낚아채가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에겐 풍등 안 팔 테니까 이 돈 가져가시고 풍등 곱게 접어서 돗자리 위에 다시 놓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찌 그럴 수 있으랴. 그냥 참았다.

불을 붙여주는 채진이의 손은 불 때문에 검게 그을리고, 추운 날씨에 풍등을 까고 설치해주느라 부르튼 유섭이와 나의 손은 여기저기 상처가 생겼다. 그렇게 2016년의 태양이 떠올랐다.

해가 뜨고 폴라로이드 장사를 한 뒤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결산을 해보니 본전을 겨우 찾거나 약간 손해 보는 정도이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과 떡국을 먹었다. 그리고

어쩌면 2016년은 정동진에서 했던 장사처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본전을 겨우 찾거나 본전도 못 찾고 손해를 보는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가는 것은 장사를 하면서 배운 소중한 가치, 그리고 함께한 친구, 꿈을 향한 젊음의 도전이 나로 하여금 가슴 뛰게 만들기 때문이다. 준비를 철저히 하고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정동진에서의 장사는 실패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불이 꺼지지 않은 풍등은 하늘로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내 가슴속에 불이 꺼지지 않은 한 인생이라는 풍등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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