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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14. 2016

조금 시끄러우면 어때?

이렇게 살아남으려고 애쓰는데.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 시 황제가 명령을 내렸다. “여봐라, 내게 영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불로초를 가져오너라!” 황제의 명령을 들은 신하 ‘서복’은 3천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이곳 정방폭포에 도착했다. 그렇다면 그는 이곳에서 불로초를 얻었을까? 2200살의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성공하진 못한 듯하다. 영원한 삶은 달콤한 허상이다.

정방폭포 위에는 불로초 공원이 있다. 이곳은 영생을 갈구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관리 부족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흐르던 물도 고여있으니 썩어버리고 그를 비집고 피어난 연꽃은 숨이 턱 막힌다. 썩은 물 위로 날아다니는 날파리와 모기들이 귓가에 앵앵거린다.  

불로초 공원을 나와 걷다 보면 비로소 정방폭포의 입구가 나온다. 정방폭포로 가는 길은 관광객들이 너무 붐비기에 나와 경수는 바위가 있는 길을 선택했다. 폭포를 향해 걸어갈수록 폭포가 아름답다. 그러나 폭포만 보고 걷기엔 발 밑의 돌들이 너무 험하다. 내가 보고 싶은 아름다움만 보기에는 발 밑의 현실이라는 돌들을 무시할 수 없다. 자칫 잘못했다간 발목이 삐기 십상이다. 폭포만 보고 걷자니 발 밑이 위험하고 발 밑만 보고 걷자니 폭포가 보이지 않는다.

돌 들을 성큼성큼 건너뛰며 걷다 보니 발 밑의 거미가 보인다. 거미는 바위 사이에 거미줄을 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저 바위에서 이 바위로. 자신의 집을 짓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거미의 모습이 보인다. 거미뿐 아니라 개미도, 다른 생명들도 바위 밑에 살아가고 있다. 발 밑의 현실은 단순히 폭포를 향해 가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바위 밑 안락한 장소가 폭포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었다.

바위를 지나 폭포 앞에 도착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나이를 먹고 폭포의 물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이곳에 영원한 생명은 없었다. 다만 이곳에는 자신의 삶의 터전을 가꾸는 아름다운 존재들이 있었다. 폭포를 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금빛 노을과 어두운 밤이 지나고 서귀포에서 다시 제주로 넘어가는 길. 

점심을 먹는데 처마 끝에 새들이 보인다. “짹짹짹 짹~!” 아등바등 살아가려고 애쓰는 새들의 모습을 보고 주인아저씨가 그저 내버려둔다. “조금 시끄러우면 어때? 이렇게 살아남으려고 애쓰는데.”

생명은 태어나고 죽는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존재한다. 바위 밑의 생명처럼, 처마 끝의 새처럼. 때론 의지하고 있던 바위가 흔들려 힘들기도 하고, 때론 처마 끝에 비가 내려 삶이 축축하기도 하다. 2천 년 전, 황제가 말해주듯이 영원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니었다. 시간도 흐르고, 폭포도 흐르고, 인생도 흘러가지만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우리의 추억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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