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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15. 2016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나를 봐

어느 늦은 밤, 심심함을 달래러 친구와 함께 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밤의 바닷가는 별로 흥미로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저기 따뜻한 불빛이 보인다. 간판에는 '작은 가게'라고 쓰여있었다.

음료와 술, 그리고 안주를 파는 작은 가게였다. 바에서는 옛날 노래가 흘러나왔고 그 노래를 틀기에는 젊어 보이는 형이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몇 마디를 나눴을까. 통하는 점이 많았기에 우리가 서로 가까워지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대화가 점점 무르익고 형은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얘들아 자신감을 잃지 마. 남들이 씌워놓은 색안경으로 나를 점점 보다 보면 어느새 선글라스는 검은색이 되고 나는 장님이 된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너를 사랑하는데 내가 가진 게 없고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실망하고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마. 나는 나고, 너는 너야.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한다. 이 말을 못 하였어.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나를 봐야 해. 너는 너야.

나는 자존감을 잃어서 그녀가 떠나버렸을 때, 그냥 그런 줄 알았어. 그녀는 내게 잡아달라고 했었던 건데. 나 자신을 잃으니까 그녀도 잃게 됐지.

몇 년 전, 사람들의 인식 속에 크라우드 펀딩이란 것이 생소할 때 내가 시도했었는데 사업이 모두 망했었어. 크라우드 펀딩을 하기 전까지 나는 영업 판매를 했었어. 영업판매에서 사업자가 되면서 그동안 남들 밑에서 눈치 보는 인생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좋았어.

또 28살 먹고 남들이 "너 뭐하는 놈이냐?"라고 했을 때 "나 사업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어. 그런데 그 명성과 칭찬을 따라서 남들의 눈을 따라서 가다 보니 망했지. 철저히 망해서 바닥까지 가버렸어. 사업을 했던 건 남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었어. 내가 좋아서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명함에 '대표'라는 말을 적어놓는 게 좋았던 거야.

20대 중후반이 되면 내가 가진 것들을 남들과 비교해보면서 더 크고 빛나는 것들을 자랑하고 싶게 돼.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야. 남들이 씌워주는 색안경을 벗고 너의 모습을 봐. 비로소 네가 너를 볼 수 있을 때, 그때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거야."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는 작았지만 그곳에 있는 형의 모습은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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