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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08. 2016

내 처지가 이런데 누굴 도와주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돕고 싶어!

<지난 줄거리......>

늦잠을 잤다. 꿈속에서 아프리카 우간다를 여행했다. 같은 또래이지만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처절하게 가난하고 아파하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 벨소리에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나는 부스스한 눈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나와" 이대로 집에 있으면 또 이렇게 무기력한 하루가 지나갈 것 같아서 집을 나왔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 친구와 함께 펍에서 얘기를 나눴다. 얘기를 하던 도중, 혁재가 내게 말했다. "서준아 나 학교 졸업하면 뭐 먹고 사냐" 내가 대답했다. "야 너는 학생 이기라도 하지, 나는 그냥 백수야." 그러자 친구 놈이 말했다. "그럼 취업을 해. 괜히 너 눈높이만 높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반문했다. "내가 취업을 안 하고 싶어서 안하나. 내 꿈이랑 맞는 일을 찾으려고 하니까 찾기가 쉽지 않은 거지." 혁재가 말했다. "네 꿈이 뭔데?" "내 꿈은......" 그때였다. "예!! 내가 이겼다! 오늘 얘가 술 산다!" 옆에서 다트 내기를 하던 다른 친구들이 시끌벅적 환호를 했다. 막차가 끊길 시간이라서 나는 금방 나왔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 꿈이 뭐지.' 그때 SNS 쪽지 하나가 왔다. "서준, 잘 지내? 보고 싶어." 카자흐스탄에서 온 쪽지였다.  

카자흐스탄에서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었던 기억이 났다. 가정폭력으로 미소를 잃은 아이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린 청소년들, 의료시설이 부족해 끙끙 앓는 노인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나를 때리고 거부했다. 다가가면 도망치고 손에 잡히는 것들 던지고 부수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아이들이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먼저 다가와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같이 무언가를 만들기도 했다. 어두웠던 아이들의 얼굴이 점점 환해졌다. 오후 5시쯤이 됐을까. 아이들이 집에 가고 저녁을 먹으러 청소년들이 찾아왔다. 한류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기에 한국 사람들이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케이팝에 맞춰 잘 못 추는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그렇게 한껏 놀고 밤이 됐다. 달아오른 열기가 사라진 자리에 우리는 삼삼오오 앉아서 얘기를 했다. 밤이 돼서 그런지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졌다. 

친구들은 내게 어두웠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아이 아빠는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났고 아이는 점점 크고 있어. 아이를 키우기엔 돈도 없고 너무 힘들어.” 18살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짐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날 우리는 같이 울었다. 같이 옆에 있어주는 것 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길었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우리는 같이 온 의사 선생님들과 함께 의료봉사를 떠났다. 의사 선생님 한 명당 보조가 한 명씩 붙었는데 나는 의사이자 목사인 선생님의 보조를 담당했다. 의사 선생님과 나는 방에 들어가서 의료기기를 설치하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문을 열어 환자를 맞이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환자는 처음에 우물쭈물하며 말하기를 망설였다. 의사 선생님이 괜찮으니까 말해보라고 했더니 환자가 얼굴이 약간 빨개지며 얘기를 꺼냈다. “항문 안쪽에 문제가 생겼는데 배변을 할 때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병원에 갈 돈은 없고 주변에 말하기도 창피한데 시간이 갈수록 너무 힘이 듭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환자는 제대로 앉지도 못한 상태로 의사 선생님에게 호소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바지 벗으세요.” 환자는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여기서요?” 의사 선생님이 침착하게 말했다. “네. 진료를 위해 필요합니다. 바지 벗으세요.” 환자는 바지를 내렸고 의사 선생님은 장갑을 끼고 손으로 환자의 항문 안에 손을 넣었다. 나는 자리를 피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선생님이 이제 다시 들어오라고 얘기를 했다.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거예요. 처방해주는 약 먹고 또 이상 생기면 다시 찾아오세요.”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진료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양 한 마리가 마당에 묶여있었다. “안녕 양아. 나도 양띠야. 반가워.” 귀엽다며 쓰다듬어주고 있자 옆에 있던 선교사님이 내게 말했다. “그거 의료봉사 와줘서 고맙다고 도지사가 보낸 양이야. 오늘도 잘 부탁한다.” 나는 양을 한 번 더 쓰다듬고 하루 종일 또 의료봉사를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숙소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차에서 내렸는데 굉장히 맛있는 냄새가 났다. 마당을 살펴보니 아침에 묶여있던 양이 없어졌다. “서준아 어서 와서 이것 좀 먹어라. 양꼬치가 아주 맛있게 익었다.” 나는 꼬치를 손에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미안하게도 너무 맛있었다. “양아 미안해.”

일정을 마치고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내 시간과 돈을 들여서 남을 도와주는데 도리어 내가 얻은 기분이 들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남을 도와주는 것' 그것이 내 꿈이었다. 남을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보통 선교사님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도 선교사를 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신학교를 들어가 졸업했고 지금은 백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처지가 이런데 누굴 도와주나 싶기도 하다. 한숨을 쉬는데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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