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준 Sep 11. 2016

남들이 일어날 시간에 나는 잠이 들었다.

"다녀왔습니다." 밤 12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래 저녁은 먹었니? 냉장고에서 뭐 좀 꺼내서 먹고 자라." 저녁을 먹었지만 냉장고를 여니 먹을게 많다. 저녁과 야식은 다르니까 주섬주섬 꺼내 먹었다. 그때 아버지가 나와서 말씀하셨다. "이번에 뮌헨에서 전시회 다녀왔는데 다음에 갈 때 짐꾼 좀 해라." 군대에 가기 전, 무역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있는 뮌헨 전시회를 갔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유독 아버지가 운영하는 부스에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아버지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모든 바이어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리고 작은 선물을 해주었다. 한 외국 디자이너가 아버지의 부스를 찾았는데 자개로 된 거울을 선물해주며 아버지가 말했다. "이 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어." 디자이너가 자개로 된 파우치를 열었을 때는 안에 거울이 있었고 디자이너는 "오 파울로" 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고 남는 하루 동안 혼자 오스트리아를 다녀왔다. 뮌헨에서 오스트리아로 기차역에 도착했다. 1인 티켓에 조금의 비용만 더하면 4명 묶음 기차 티켓을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문득 4명 묶음 티켓을 사서 3명의 동행을 구하는 게 더 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호기롭게 기차 티켓을 샀다. 그런데 3명은커녕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나는 4명 묶음 기차 티켓으로 혼자 기차를 타고 갔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외교부(?)에서 문자가 왔다. '오스트리아에 도착했습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대사관으로 연락하세요." 오스트리아에 도착해서 혼자 거니는데 잘츠부르크의 성 안에서 한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한국 분이세요?" 부산에서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을 하고 있는 분이었다. "혼자 밥 먹기 심심한데 같이 밥 안 먹을래요? 나는 흔쾌히 수락했고 돈가스의 할아버지 격인 슈니첼을 먹으러 갔다. 남편의 출장을 따라 방학 동안 여행을 왔다고 말하는 부산 누나는 구두를 신고 왔는데 발이 너무 시리다고 말했다. 나는 마침 가져온 발에 붙이는 핫팩을 누나에게 선물했고 누나는 커피를 사주기로 했다.


 "이곳이 모차르트가 즐겨 마셨던 커피집 이래!" 누나와 나는 커피를 시켰다. 나는 커피를 잘 마실 줄 몰라서 종업원에게 대표 메뉴를 달라고 했고 종업원은 특이하게 생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순간 목이 뜨거워졌다. "으앗 이게 뭐야." 알고 보니 커피에 RUM이라는 술이 들어가 있었다. 커피에 술을 타서 먹다니.     

"일찍 자라." 아버지는 문을 잠그고 들어가셨다. 나는 야식을 마저 먹고 컴퓨터를 켰다. 불러 있는 배를 어루만지며 내일부터 운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내 안에 또 다른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돼지가 되어가는 거구나.' 한 손에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컴퓨터 창에다가 책을 쓴답시고 워드 창을 펼쳐놓았지만 글이 안 써졌다. 그건 마치 공부한다고 책을 펴놓고 만화책을 보는 수험생과 같았다. 그렇게 핑계가 가득한 밤이 지나고 어느덧 아침이 됐다. 남들이 일어날 시간에 나는 잠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 처지가 이런데 누굴 도와주나 싶기도 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