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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14. 2016

주어진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배짱

이탈리아에서 본 축구

 나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내 모습을 보고 일어나 침대에 다시 누웠다. 얼마를 누워있었을까. 나는 게으름에 지쳐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루를 또 침대에서 보낼 것 같다는 사실이 싫어서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온 오후 3시. 붕 떠버린 계획. 강렬한 햇살은 오늘도 저렇게 부지런히 떠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스스로에게 자책하다가. 그냥 내게 여유를 허락하기로 했다.

게으름을 자책하며 여행을 했던 것이 되돌아보면 스스로에게 족쇄였음을 느낀다. 그리 조급하지 않았어도 됐는데 무엇이 그리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는지 참. 더 많은 것을 보겠다고 빡빡한 일정을 짜서 허겁지겁 여행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의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한 순간이라도 더 빨리 많이 채우고 달려서 보이지 않는 미래로부터 안정감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더 빨리 많이 채우고 달리고자 했던 내 마음은 안정감을 얻기보다 더 많은 조급함과 좌절감을 가져다주었다. 더 비우고, 더 천천히 걷다 보면 여행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군대를 전역하고 떠났던 유럽여행 중 독일을 지나 이태리에 도착했을 때는 제법 여유가 있었다. 여행 기간 중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 까 봐 보험처럼 이태리 일정을 길게 잡아놨었기 때문이다. 현조는 이태리에 도착해서 "야 내일 뭐하지?"라고 물어보았다. 내가 하도 닦달을 하면서 돌아다니니까 별 일정이 없는 것이 약간은 불안한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현조에게 대답했다. "몰라" 그때 현조가 말했다. "축구 볼래?" 그렇게 우리는 축구를 보러 갔다.

축구 현장의 열기는 굉장히 뜨거웠다. 유벤투스와 AS로마의 경기였는데 경기 시작 전에 벌써부터 시작된 몸싸움에 안전요원들이 투입됐고 그렇게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은 흡사 종교의식 같았다. 경기가 끝나고 팬들의 반응이 거세졌다. 수 없이 난무하는 욕설과 머리 위로 떨어지는 맥주 컵과 사과들. 그 광란의 분위기가 재밌기도 했다. 여유를 가지고 나니 재밌는 일들이 벌어졌다. 경기장에는 이태리에서 유명하다는 배우도 와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태희 정도 되는 배우라는데 사람들이 다가가길 망설이길래 거침없이 다가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녀는 흔쾌히 허락을 했고 같이 사진을 찍고 악수를 했다.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각종 과일과 맥주컵, 그리고 쓰레기들이 공중에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승부에서 진 유벤투스 팬들이 AS로마 팬들에게 던지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같은 곳을 피해 집으로 향했다. 나는 맥주가 든 컵을 맞고 친구는 사과를 맞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서 자책했으면 그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을 즐기는 자에게 주어진 선물이었다.


 그리하여 오늘 무엇을 하던 오늘 잠들기 전에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자라는 결심을 했다. 여행 중에 너무 외로워서 한국에 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한적하고 지루해서 왜 여행을 떠났는지,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하고 먹고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있었다. 주어진 현실을 즐길 수 있는 배짱이 없이는 평생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걸을 수 있는 권리도 없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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