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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15. 2016

마이너스 토마토 주세요.

위기의 순간은 예고 없이 나를 찾아왔다.

  

전역 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영어도 다 까먹고, 스스로 계획해서 떠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었지만 자신감이 200%였기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을 뿐.     

런던에 처음 도착했을 때, 비행기에서 야경을 보았다. 야경 하나에 그렇게 감동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영국 패스트푸드 점에 도착했을 때, 영어를 못해서 인종차별을 당했었다. 햄버거에서 토마토를 빼 달라고 하려 했는데 ‘빼다’라는 단어가 기억이 안 났다. 순간 ‘빼다->뺄셈->마이너스-> 마이너스 토마토!’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마이너스 토마토 플리즈”라고 말했더니 직원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왓?” 얘가 못 알아들었나? 나는 다시 당당하게 얘기했다. “마. 이. 너. 스 토마토 플리즈!” 그러자 직원은 다른 직원하고 나를 보며 낄낄 웃더니 햄버거를 만들어서 내게 던졌다. “야 여기 네 마이너스 토마토 버거” 무례했다. 나는 다시 정중하게 말했다. “햄버거 던지지 말고 제대로 다시 줘” 직원은 굳은 내 표정을 보고 약간은 당황한 듯한 기색을 보이며 햄버거를 다시 주었다.

영어를 못하는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태리에 있는 한 피자 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도 옆에 있는 테이블과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돈을 내기도 했다. 처음엔 그렇게 친절하게 영어로 설명해주던 점원이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것을 눈치채고 바가지를 씌운 것이었다. 마음에 드는 외국인 이성이 나타나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걸고 불이익을 당해도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속으로 삭히는 수밖에 없었다. 식당을 나와서 같이 여행을 간 현조와 대화를 나눴다.

“아 짜증 난다 진짜. 영어도 언어 중에 하나니까. 영어만 잘했어도 우리 진짜 떳떳하게 분명한 이유를 듣고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유만 들었어도 억울하진 않았을 거야. 최소한 영어 잘하는 사람 불러달라고라도 얘기해볼걸 그랬어. 너무 주눅 들어가지고.” 그러자 현조가 말했다. “그래 우리는 영어는 못하고 이태리어도 못하는데 말이야. 그래도 영어 내가 말하면 걔가 영어로 말해줘야 하는데 나는 영어로 말했는데 안 통해. 이 자식이 갑자기 이태리어로 말한다. 그래서 속으로 ‘일단 이해한 척하고 나올까? 그래 그냥 나오자. 허허’ 이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윤호가 말했다. “그래 그래야겠다. 옆에 사람들 수긍하는 것 같으니까 이게 맞는 걸 거야. 근데 내 지갑은 옆에 사람이 책임져 주지 않지. 돈 내는 건 우리지. 바보가 된 느낌이야. 달만 더럽게 예쁘네. 그래도 군대에서 저 달 보면서 월영(달의 그림자) 체크하는 애들 보단 낫겠지. 저걸 보고 월영이 몇 퍼센트인지 못 외워서 대충 64퍼센트라고 말했다가 거짓말한 거 걸려가지고 털리는 애들 보단 낫겠지.” 그러자 현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하 맞춰도 꼭 한 번씩 64퍼센트? 자신 있어? 이렇게 말하는 애들 있어. 그럼 또 안 적어왔다고 혼나지. 맞춰놓고도 털린다고. 틀려도 자신 있거나. 아니면 아예 솔직하거나. 그렇게 해야 돼. 아 64퍼센트 맞습니다. 진짜 그렇습니다. 확실하게 외워왔습니다. 적진 못해도. 그럼 선임이 다 알잖아. 괜히 막 적어온 척했다가 안 외운척했다가 거짓말이었다가 그럼 또 왜 거짓말했냐. 해병이 거짓말이냐. 나 거짓말하는 놈을 제일 싫어한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면 다음부터 적어와라 하고 끝나는데. 단순하다 군대 진짜. 사회가 다 그렇지 뭐.”

우리는 ‘파 x’라는 젤라토 가게로 가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튼 진짜. 영어 공부해야 한다는 걸 다시 느낀다. 너무 분하다 진짜. 진 것 같아. 학교 다닐 때 영어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게 못하는 거지. 어휴 답답해. 뭐 하려면 다 영어야. 영어 못하면 그냥 바보야. 바보.” 나는 현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뭔 말 하여야 할지를 모르겠다. 완전 꿀 먹은 벙어리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여.” 그러자 현조가 다시 얘기했다. “나 여기 와서 느낀 건데 내가 할 줄 아는 말이 How much랑 How to go 밖에 없다. 맨날 똑같은 말 쓴다. ‘where, how much......’ 완전한 문장도 아니야. how many... where is this... is this? this is라고 해야 하는데 문법도 다 틀려. 평서문 얘기하면서 물음표 붙인다. this is chicken? 이것은 치킨이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척. 치킨이?” 옆에 있던 윤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is this chicken 아니야?” 그러자 현조가 대답했다. “맞아 근데 우리 그런 것도 못하잖아. 문법 다 틀려. 하고 싶은 것도 못해. 아까 전에 가게 주인한테 얼마냐고 묻는데 막 현재 완료, have p.p 이런 거 생각나더라. 어떻게 물어봐야 하지. 헤브 유 빈... 이런 거 진짜 이상한 생각만 생각났다. 조잡한 문법만 생각나고 돌겠다 진짜. 내 생각에 문법만 하면 영어 진짜 안 늘 것 같아. 필요하긴 한데 있잖아. 진짜 우리한테는 지금 필요한 건 써야 할 상황에 말을 쓰고 하는 거다. 우리가 엄청 어려운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그러자 윤호가 말했다. “맞아. 그냥 기본적인 말인데. 뭐 어디 살아요. 햄버거 안에 토마토 빼주세요. 이거 영어로 어떻게 하는지 알아?” 나는 대답했다. “마이너스 토마토 인 햄버거.”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우리는 왁자지껄 웃었다. 바로 그때 술 취한 사람이 지나갔다. 나는 현조에게 말했다. “야 나 근데 어떻게든 대화가 되긴 하는데.” 그러자 현조가 말했다. “그건 대화가 아니야. 똥, 밥, 저거, 이거. 이게 대화냐?” 그러자 옆에 있던 윤호가 얘기했다. “만약에 진짜 예의를 갖추거나 격식을 갖추고 싶은데도. 그런 말 밖에 못하면 이 자식 이거밖에 준비 안 해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 거 아니야. 그리고 please도 긴장해서 다 까먹고. 문장 뒤에 플리즈 해야 하는데. 맨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this one, this one.” 그렇게 신나게 얘기하는 동안 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착했다.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데 현조가 내게 말했다. “너 왜 이태리 사람한테 한국어 쓰는데.” 나는 대답했다. “아니 너무 답답해서. 딸기 맛 달라고 했는데 초코맛을 주잖아. 아 진짜 나 무식함의 끝이다. 난 내가 영어를 이렇게 못하는지 몰랐어. 듣기도 안되고 말도 못 하겠고.” 그러자 현조가 대답했다. “그래서 난 맨날 다하고 너네 쳐다보잖아. 맞는지 틀렸는지 너네 표정 보고 확인하려고” 그때 윤호가 얘기했다. “나는 ‘your welcome’이 입에서 잘 안 나온다. 땡큐 하면 ‘your welcome’ 해야 하는데 그냥 ‘예압’ 이런다.” 그때 내가 말했다. “나는 누가 땡큐 하면 말도 안 하고 웃으면서 고개만 끄덕인다. 괜히 젠틀한 척. 사실은 영어 못하는 건데 말이야.”


영어를 못한다는 것은 많은 에피소드를 가져다주었다.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영어 실력을 뽐내기엔 내가 너무 부족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기 위해 영어를 습득해야만 했다. 나는 이태리를 지나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가는 열차를 탔다. 초행길이기에 어디서 내려야 할지 헷갈린 나는 역무원에게 내 티켓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게 제 티켓인데 어디서 내려야 하죠?" 그러자 역무원이 내게 말했다. "여기서 내려서 20분 뒤에 오는 기차를 갈아타." 나는 짐을 챙겨서 기차에서 내렸고 20분을 기다렸다. 그런데 기차는 20분을 넘어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나는 티켓 창구에 가서 물어보았다. "제 티켓이 이건대 기차가 언제 오나요?" 그러자 티켓을 파는 아저씨가 말했다. "흠.... 일단 10분 뒤에 오는 기차를 타고 로잔이란 곳에 가봐. 거기서 다시 물어봐"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로잔으로 향했다. 로잔에 도착한 나는 다시 한번 기차 티켓 창구로 가서 물었다. "프랑스로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러자 티켓 창구에 있는 아저씨가 내게 말했다. "오늘 기차는 끊겼어. 다음에 다시 와." 이게 무슨 일인가? 기차가 끊겼다니? 나는 티켓 창구의 아저씨에게 내 상황을 말했다. "저는 역무원이 내리라고 해서 내린 잘못 밖에 없어요. 그런데 한 시간 정도 늦게 기차가 도착해서 늦었어요." 아저씨는 내 티켓을 유심히 보더니 내게 말했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렸어. 그러게 네가 잘 확인했어야지." 나는 화가 났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얘기했다. "아저씨 혹시 자녀가 있으세요?" 그러자 아저씨가 대답했다. "있지. 너만 한 남자아이가 하나 있어. 왜?" 나는 대답했다.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어요. 그리고 이곳이 처음이에요. 낯선 곳이라 역무원에게 물어봤던 건데 역무원이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저는 20만 원이 넘는 기차 티켓과 잘 곳을 잃어버렸어요." 그러자 아저씨가 얘기했다. "그래 그건 나도 알아."

나는 얘기를 이어갔다. "처음 경험할 땐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죠. 만약에 아저씨의 아드님이 외국에 가서 저와 같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 누군가가 매몰차게 군다면 아저씨 기분이 어떠실 것 같으세요?" 티켓 아저씨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일 첫차를 끊어줄 테니 그걸 타고 프랑스로 가도록 해. 오늘 잘 곳은 있니?"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없어요." "그럼 내 명함을 줄 테니 옆에 있는 호텔로 가서 내 이름을 대고 거기에 묵도록 해라." 나는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아저씨가 내게 말했다. "잠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넌 운이 아주 좋아. 오늘 스위스 국가기념일이라 아주 멋진 불꽃놀이 행사를 해. 호텔에 짐을 놓고 가서 마음껏 즐기렴!"

나는 그렇게 뜻밖의 행운을 얻었고 프랑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엔 햄버거 하나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했던 영어 실력이었지만 여행이 거듭 될수록 영어도 저절로 늘었다. 위기의 순간은 예고 없이 나를 찾아왔고 위기를 이겨낼 때마다 나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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