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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18. 2016

몽생미셸의 순례자

 그들은 왜 갯벌을 걸었는가?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 강물을 쓰다듬는 바람의 손길, 썰렁하게 돌아가는 관람차와 제법 사람이 있는 회전목마.

버스를 타고 몽생미셸이 있는 곳으로 가기 전 옹플뢰르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했다. 가이드님이 사람들과 같이 마실 와인을 사러 가자며 골목길로 들어가는데 2년 전 겨울, 이곳에 왔던 것이 기억이 났다.


군 생활을 마치고 동기인 현조, 그리고 그의 친구 윤호와 함께 옹플뢰르와 몽생미셸을 갔던 기억, 휑한 분위기의 항구도시에서 산딸기가 들어간 마카롱을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 다시 오니 옹플뢰르는 그대로 있다.

이곳에서 여행 중에 돈 때문에 처음 싸울 뻔했다. 투어 비용으로 예약금 외에 들어가는 돈이 15만 원 가까이 되는 사실을 알고 나서 왜 진작 말을 하지 않았냐는 이유로 싸움이 날 뻔했다. 내 잘못이었다. 내가 예약하고 추가금액이 있는지 몰랐다. 너무 미안했다. 앞으로의 일정이 많이 남았는데 돈 때문에 싸우기 싫었다. 나는 사과했고 현조와 윤호는 사과를 받아줬다. 고마웠다.

버스를 타고 다시 이동하여 몽생미셸에 도착했다. 몽생미셸은 바위 위에 지어진 수도원이다. 약 8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어진 곳이기 때문에 그간의 세월을 함께해온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몽생미셸은(Mont saint michael) Mont- 바위산, saint - 거룩한, michael - 미카엘 천사) 미카엘 천사의 명령으로 바위산 위에 지어진 거룩한 곳이라는 말뜻을 지니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몽생미셸을 보고 '우오오오' 하는 함성과 동시에 카메라 세례를 퍼부었다. 확실히 수도원 자체가 뿜는 기운은 영험한 기분이 들었다. 한 발자국씩 걸어가는데 가이드님이 우리에게 이런 설명을 해주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이렇게 편하게 수도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길이 없이 갯벌을 지나서 가야만 했어요."

19세기에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제방길이 만들어져 지금의 여행객들은 남쪽으로 들어오지만 그 이전에는 사진에서 보이는 곳을 통해 약 7km의 갯벌을 걸어 들어왔다.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속도가 분속 62m 정도로 빨랐기에 이곳을 걸어오는 사람들은 목숨을 잃을 각오로 걸어와야 했다.

강화에서 고무보트를 이용한 기습 특공훈련을 받을 때가 생각났다. 뻘 지역에서 달리는 것은 일반 평지에서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지치고 몇 미터 가지 않았는데도 숨이 차는 것을 느끼게 한다. 더군다나 100kg가 넘는 고무보트를 짊어지고 이동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가족을 생각하며 훈련에 임했다. 내가  훈련받는 것을 통해서 우리 가족이 안전하다면 그걸로 푹푹 빠지는 뻘에서 무거운 고무보트를 들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됐다.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온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먼 옛날 프랑스에 찾아온 소빙기로 인한 계속되는 추운 날씨 때문에 수년간의 농작물이 모두 씨가 말라버렸다. 흑사병으로 인해 온 몸에 검은 반점이 생기고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종말의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 세간에 퍼진 소문이 하나 있었다. '몽생미셸로 무사히 성지순례를  다녀온다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종말의 때에 구원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다. 배고픔에 칭얼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오는 어머니, 노쇠하신 부모님을 수레에 끌고 오는 아들,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오는 남편. 다양한 사람들이 사방 각지에서 몽생미셸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까지 몽생미셸로 순례를 오는 이유였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하면서 산다. 부모님의 이마에 새겨져 있는 주름, 거칠어진 손은 세월이 지나도록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며 일하신 사랑의 흔적이다. 이 위대한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우리 곁에 자리한다.   

몽생미셸 수도원 안으로 들어왔다. 쌩쌩 부는 바람을 피해 수도원 내부로 들어오니 수도원 벽 아래로 우리가 걸어온 갯벌이 보였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금은 물이 들어오는 시간을 미리 알 수 있으나 당시에는 다른 지역에서 온 순례객의 경우 물이 언제 들어오는지 알 수 없었기에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고 중간에 뻘에 깊게 빠지는 경우에는 목숨을 잃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러한 위험을 뚫고 무사히 몽생미셸에 도착한 이들은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을 보며 이집트 군인들을 피해 갈라진 홍해를 지나 도망쳤던 모세의 기적을 직접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마침내가 갔을 때 몽생미셸은 테마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콘셉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어두컴컴하고 기괴한 분위기가 났다. 가이드님 말로는 예술적으로 뭔가를 표현했다고 하는데 딱히  마음속에 와 닿지 않는다.

수도원 내부를 걷다 보니 여러 개의 기둥이 질서 있게 모여있는 장소가 보인다. 이곳의 이름은  '클로이스터'라고 불리는데 수도사들이 명상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사방이 막혀있는 구조에 화단 위쪽으 하늘 방향만 열려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혼란스러운 소리를 막고 하늘로부터 오는 거룩한 소리를 듣기 위함일까. 수도사들은 이곳을 걸으며 기도한다.

가이드님은 우리에게 기둥의 개수를 세어보라고 했다. 기둥의 개수는 총 137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숫자에 의미를 담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1은 유일신 하나님, 3은 삼위일체, 7은 세상을 만들 때  7일째 되는 날 안식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완전한 숫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조금 더 연구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얘기이긴 하지만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성찰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는 장소가 나왔다. 식사 중에는 대화가 금지된다. 그래서 식탁 위치도 식탁 한쪽에서만 자리를 잡고  맞은편은 비워두었다.  금지된 대화 때문에 공기가 너무 적적했는지 식사를 할 때 한 명의 수도사는 우측 편에 있는 단상에 올라가 그들이 식사하는 동안 기도문과 성경을 읽어주었다.

예수는 밥 먹을 때 제자들과 자유로운 대화를 했는데 이들은 왜 그렇게 철저하게 말을 아끼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말을 아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밥을 먹어보았다. 처음에는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너 뭐하냐고 어디 아프냐고 했지만 몇 번을 그렇게 하니 괜찮아졌다. 밥을 먹을 때 말을 안 하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고 사는 일상들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밥이 식탁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니 새삼 감사하기도 했다. 기도문과 성경을 읽는 것은 그렇게 비워진 그들의  마음속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수도사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신을 향한 발걸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몽생미셸 수도원 건물을 나와 거리를 쳐다보니 뚜벅이는 발걸음 소리까지 내 귀에 들릴 정도의 적막함과 낡은 벽돌을 비추는 따뜻한 조명이 보였다.

날이 밝을 때 들어온 수도원은 어느새 캄캄한 밤이 되었다. 상점의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았고 이제 마지막 버스를 타러 걸어가고 있었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몽생미셸의 야경을 잘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가져온 방석을 바닥에 깔고 매섭게 부는 바람을 피해 성벽에 걸터 기대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곳을 충분히 눈에 담아두면서 처음 멀리서 이곳을 바라보았을 때, 영험했던 기운을 떠올려보았다. 수도원이 갖고 있는 신비로움 안에는 가족들을 향한 순례자들의 사랑이 담겨있었고, 지금도 신을 향해 묵묵히 기도하고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수사들의 열정이 담겨있었다. 야경을 즐기고 내려오는데 버스를 같이 탄 일행이 보였다. 나는 "여기 뷰가 끝내줘요 이쪽으로  와보세요."라고 말했고 사람들은 그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 같이 버스를 탄 일행이 나를 불렀다. "저기요! 저거 막차인 것 같은데요!"

우리는 헐레벌떡 마지막 몽생미셸 셔틀버스를 타고 수도원 밖으로 나왔다. 버스 바퀴가  굴러갈수록 저 멀리 멀어지는 수도원이 아쉬웠다. 많은 여행지가 그렇듯, 언젠가 꼭 다시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이용규 가이드님이 옹플뢰르에서  사 온 와인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클라리넷을 꺼내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별처럼 빛나는 몽생미셸 수도원을 바라보며 클라리넷 연주를 듣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가이드님은 여러 곡을 연주했는데  그중 가수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가 유독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을 노래한 가사이지만 사랑은 모두 통하는 것이 아닌가.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라는 가사를 곱씹어봤다. 사랑을 하면 모두 바보가 되나 보다. 혼자 편하게 가면 되는 뻘길을 여러 명이서 고생스럽게 걸어가는 것은 분명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같이 간다. 사랑은 이처럼 비생산적이고 미련한 바보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몽생미셸 수도원을 보고 있자니, 오늘따라 더 집이 그립다. 엄마가 해주신 밥이 먹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집에 갔더니 어머니께서 족발을 시켜놓으셨다. “서준이 왔니? 족발 먹어라” 족발을 배부르게 먹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감사해요.” 그러자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뭐가?” 나는 “그냥요”라고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배가 부르니 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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