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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0. 2016

철학자의 길

“꿀꿀 내 다리 내놔!” 돼지 한 마리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상황은 공포스러운데 생긴 게 너무 귀엽게 생긴 돼지였다. 나는 돼지에게 말했다. “네 발을 먹어서 미안해.” 돼지는 너무 빠른 사과에 당황스러웠는지 콧구멍을 벌렁 거리며 말했다. “괜찮아. 나는 사실 온몸이 재생되는 돼지거든. 네가 스페인에서 하몽을 먹었을 때도, 독일에서도 슈바인 학센을 먹었을 때도, 모두 다 나였어.” 나는 돼지에게 말했다. “너 참 멋진 돼지구나. 고마워 돼지야. 그때 하이델베르크에서 먹은 슈바인 학센 정말 맛있었어. 한번 더 먹을 수 있을까?” 그러자 돼지가 내게 말했다. 그래 얼마든지. 나는 돼지하고 하이델베르크로 이동했다. 하이델 베르크에는 학생 감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외에도 프리드리히 니체, 임마누엘 칸트 등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그곳에서 공부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특히나 '철학자의 길'이라는 곳을 꼭 가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길이기에 그렇게 철학의 영감들이 떠올랐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먼저 그전에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도서관을 가보았다. 특별한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우리나라 대학교와 별 다를 바 없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나 보다. 감옥에 갔을 때는 조금 달랐다. 그곳은 학생들을 징벌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권력에 저항하거나 흔히 '날라리' 학생들이 모여서 노는 클럽 같은 곳이었다. 유쾌했다. 감옥에는 여기저기 낙서가 돼있었고 낙서 또한 재밌었다.

감옥을 나와 하이델베르크 고성을 구경 한 뒤에, 우리는 드디어 대망의 철학자의 길에 갔다. 나는 길이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쭉 뻗어 있는 평탄한 길을 상상했는데, 철학자의 길이 아니라 철학자의 등산로였다. 다 온 줄 알면 덜 와있다. 덜 온 줄 알면 그게 맞다. 이렇게 힘든 길을 올라와서 중간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겨울인데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힘들게 걸어와서 그런지 언덕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보람차다. 헤겔도, 니체도, 칸트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길을 걸었다. 이 길이 철학자의 길로 불리는 것은 유명한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하나의 세계관이 생기기 위해서는 수많은 계단과 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벤치에서 일어나 위를 보았는데 아직도 남아있는 정상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끝이지만 고지에는 항상 정상이 있고 걸어가다 보면 정상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걷다 보니 결국 정상이 나타났고 우리는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데 발을 헛디뎌서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몇 바퀴를 굴렀을까. 눈을 떠보니 침대였고 해는 벌써 중천에 떠있었다.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데 이게 뭐람. “더 잘 거야.” 나는 의식적으로 침대에 누웠고 다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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