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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0. 2016

2천 년 전의 순수함

     

 “헤이 서준! 어서 갑시다!” 수사복을 입은 신부님이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신부님을 따라 지하 동굴로 내려갔다. 여러분 여기가 2천 년 전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무덤 교회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입니다. 카타콤베에는 한 여자의 시신이 있었다. 머리카락과 상반신이 조금 남아있던 그녀의 모습을 보니 죽음이 느껴졌다. 이 사람들의 신앙은 어떤 것이었을까. 카타콤베를 나와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콜로세움에 들어가니 축구경기장 같이 크고 먼 모습일 줄 알았는데 가운데는 벽들이 서 있고 그 위로 바닥이 깔려있었을 것 같이 보인다. 실제로 관중과 참가자들의 눈높이가 굉장히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콜로세움 안에서는 강자의 기쁨을 위해 약자의 죽음이 있었다. 초대교인 당시에 오르간을 연주하며 사람들을 죽이고 흥분했던 것을 상상해본다. 이 상황에서 신앙은 그 사람들의 무엇이었을까? 

현대사회에는 콜로세움과 다를까. 계급이 없다고 하지만 명확한 위아래 관계가 존재한다. 생명이 소중하다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강자는 약자를 죽이는데 서슴지 않는다. 

로마는 멸망했다. 한 나라는 영원할 수 없다. 영원할 수 없는 시대 가운데 작은 나의 삶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콜로세움의 벽을 허물어야 하는가. 콜로세움 안에서 응원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 콜로세움에서 무참히 죽어갔다. 때론 사자에게 먹혀, 때론 사람들에게 살육당하고 때론 화형을 당하며 죽어갔다. 콜로세움이 축구경기장 같은 크고 먼 경기장인 줄 알았는데 가운데는 벽들이 서있고 그 위로 바닥이 깔려있었던 것 같다. 굉장히 가까운 위치이다. 이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기도를 했을까. 살려주세요 라는 기도도 있었을 것이고,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나라면 무엇이라고 했을까. 한 순간일 것 같다. 살려달라는 마음과 사랑을 구하는 마음. 두려움에 잠식되어 내 마음이 발현되는 것은 한순간인 것 같다. 벼랑 끝에 서있는 각오로 인생을 살자. 한순간의 선택. 그것이 길게 늘어진 내 인생과 같다면 나는 지금 무슨 선택을 해야 할까.

콜로세움을 지나 로마의 산타 스칼라에 도착했다. 산타 스칼라는 무릎으로 오르는 예배당이다.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려고 하니 몇 계단 걷기 시작하자 무릎이 아프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울퉁불퉁한 나무로 만들어졌다, 적어도 신앙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울퉁불퉁한 나무를 오르고 올라 도착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나무에 달린 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나무에 달린 청년은 사랑을 위해 죽었다. 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밥이 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서도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랑에 대한 순수함이 아니었을까. 순수함의 힘은 죽음을 이겨낼 만큼 강하다. 철학자의 길을 두 발로 걸어 올랐다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무릎으로 가는 것이었다. 순교자들은 그렇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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