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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0. 2016

터키 동굴에서 '노숙'을 했다.

죽음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

   

며칠 뒤, 여행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과 도시락을 싸들고 잔디밭으로 놀러 갔다. 각자 싸온 도시락을 여는데 예전 생각이 났다. 여행을 가기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돈을 아끼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 그때. 나는 그때 학교 시간표를 여행에 맞춰서 짰다. 터키를 가기 위해 고대 근동 신화를 공부하고 초대 기독교인들의 역사에 대해 공부했다. 그리스를 가기 위해서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읽고 그리스 전쟁사를 공부했다. 그런 식으로 여행 시간표에 맞춰서 공부를 하니 공부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여행 준비를 위한 재미있는 과정이 됐다. 성적은 저절로 잘 나왔고 나는 장학금으로 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선 책 냄새가 물씬 났다. 종이들이 살을 맞대고 부스럭거리는 냄새. 책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책에는 사진과 글들이 담겨있었지만 냄새와 느낌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책에 담기지 않은 것들을 향해 여행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교회의 역사를 배우다가, 처음에 신앙을 지키던 사람들이 로마 군인들에게 학살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을 일컫어 '초대교인'이라고 불렀는데 초대 교인들의 신앙은 굉장히 순수했기 때문에 우리가 배울 것이 많다는 것 같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그들의 순수함이 알고 싶었다. 그들의 마음을 느끼고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카파도키아로 떠났다.

카파도키아로 떠나기 전, 초대 교인들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잤던 곳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굴에서 잘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인터넷에 찾아보았더니 동굴에서 그냥 잤던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카파도키아 가서 노숙을 해보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그러자 사람들의 반응은 미쳤냐는 반응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위다며 모두가 말렸다. 그래서 나는 카파도키아를 여행 다녀온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들의 반응은 잘 모르겠는데 아마 힘들지 않을까?라는 반응이었다. 터키에 도착해서 이스탄불에 있는 가이드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가이드는 내게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물었다. 노숙의 이유를 말하자 가이드는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명함을 주었다. 그리하여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가이드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동굴에서 잠을 잘 수 있을까요?" 그러자 가이드가 대답했다. "그럼 얼마든지 훌륭한 동굴 호텔이 여긴 많아. 내가 하나 추천해줄까?' 내가 말했다. "아뇨 호텔 말고 동굴이요. 초대 교인들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거든요." 그러자 가이드가 대답했다. "내가 여기서 가이드 생활 10년째 하는데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봤어. 한번 해봐 못할 건 뭐야? 잘되길 바랄게."

 저녁이 되기 전, 나는 동굴을 향해 떠났다. 호텔들을 지나 사람들의 인적이 없는 곳으로 얼마나 걸어갔을까. 갈대숲이 보였다. 갈대숲을 헤치고 들어가자 자그마한 동굴이 나타났다. 동굴은 사람들의 인적이 없어 보였다. 여기라면 안전하게 노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러나는 그곳에 침낭을 깔고 자리를 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은커녕 끝없이 펼쳐진 기암괴석 들뿐이었다.

 그렇게 밤이 되었고 하늘엔 쏟아질 것 같은 별들로 가득 찼다.  한 여름이어서 그런지 후끈 한 열기가 저녁까지도 가시지 않았다. 나는 침낭을 깔개 삼아 누웠다. 그리고 잠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뭔가 인기척이 느껴져서 잠에서 깼다. 누군가가 오토바이를 타고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 가이드가 밤에는 술 먹고 해코지하는 양아치들이 돌아다니니 조심하라는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나는 연주 겸 호신용으로 들고 다닌 단소와 셀카봉을 들고 생각했다. ‘한명만 때린다. 한명만 죽어라고 때리면 나머지 놈들도 지레 겁먹고 도망갈 거야.’ 그렇게 30분이란 시간이 지났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다시 들리고 그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저 하늘의 별을 만든 존재가 내가 믿는 존재구나.’ 알 수 없는 평안이 마음에 밀려왔다. 초대 교인들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그들의 순수함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진실된 신앙에서부터 온 것이었다. 확고한 자신의 가치관이 죽음마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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