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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1. 2016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여행을 다니면서 얻는 깨달음이 좋았다. 만나는 사람들, 먹는 음식, 새로운 풍경. 평생 동안 여행을 하면서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여행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스튜어드였다. 비행기를 타면서 돈도 벌고 여행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항공사에 지원을 했다. 수차례 고친 자기소개서와 다른 사람에 비해 비교적 하얀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며칠 뒤,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면접만 보면 돼!’ 이제 겨우 서류전형 합격이었지만 내 머릿 속은 벌써 합격해서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소식을 곱씹으며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형! 일어나 봐 형!!” 군대에 있는 사촌 동생 민형이가 전투복을 입고 나를 깨웠다. “무슨 일이야. 휴가 나왔어?” “형! 나도 군대 전역하고 여행 가려고 하는데 형은 어떻게 돈을 모았어?” 나는 대답했다. “나도 너처럼 군대에 있는 동안 돈을 모았었어. 전역하고 다녀온 유럽여행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모은 적립식 펀드랑, 병사 월급 아껴서 모은 돈, 그리고 휴가 때 나가서 받은 용돈 아껴서 갔었지.” 민형이는 내게 여행 준비로 들뜬 목소리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무슨 돈으로 그렇게 여행을 가?"     


사람들이 여행 다녀온 내게 "여행 다니면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라는 질문 다음으로 하는 질문이었다. 군대 다녀온 후에 갔던 한 달간의 유럽여행은 약 680만 원의 경비가 들었었는데 그때 당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모아 온 적립식 펀드를 깬 돈, 군 생활 중 병사 월급을 아껴서 모아 온 돈, 군인 휴가 때마다 나가서 받은 용돈에서 틈틈이 모아 온 돈을 아껴서 갔었다.

복학 한 뒤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떠났던 약 50일간의 여름 여행은 학교에 도시락을 싸고 다니면서 모은 돈, 겨울 여행 때 남은 돈, 친척들 만나서 받은 돈을 모아서 갔다. 두 번째 여행은 첫 번째 여행보다 노하우가 생겨서 더 좋은 질의 여행을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갈 수 있었다.     

겨울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왠지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겨울 방학 때는 다녀온 여행정보들을 정리하고, 부족한 언어와 공부를 하는데 열심을 다했다. 여행을 꾸준히 가다가 안 가니까 뭔가 삶이 무력하고 지치는 감이 있었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지만 그것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약이었다.     

겨울방학을 보내는 시간 동안 여행을 돌아보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슨 돈으로 여행을 갈까. 생각해보니 군인 월급 말고는 모두 부모님의 용돈을 아끼거나 주변에서 받은 돈을 아껴서 가는 것이었다. 한계가 느껴졌다. 이 나이 먹고 수입도 없으면서 지출만 계속 나가는 사실이 부모님께 죄송하기도 했다. 

    

지출만 하는 소비적인 여행 말고 생산적인 여행의 형태는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롤모델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3가지 유형의 여행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유명해서 여기저기서 후원을 받아 남의 돈으로 여행하는 사람

2. 유명하지 않지만 공모전을 통해 여행을 가는 사람

3.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알바를 해서 자기 돈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굳이 정하자면 유명하지도 않고 부모님 잘 만나서 부모님 돈으로 여행 가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를 도전해보기 위해 영상제작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가 올라가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기고 후원이 들어오겠지 싶었다. 근데 영상을 맡긴 동생이 아직 소식이 없다. 내가 영상을 만들어볼까 했지만 생각만 하고 실천을 하지 못했다.     

두 번째를 도전하기 위해 여러 여행 공모전을 준비해보았지만 학교 스케줄과 겹쳐서 생각만큼 열심을 다하지 못했다.     

세 번째를 준비하려고 알바 자리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최저시급으로 여행 갈 돈을 모은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학교를 다니지 말아야 했다. 제대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제대로 버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는 후회를 남길 것 같았다.     

그래서 장사를 생각해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공부에도, 돈에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밥버거를 만들어서 물가가 비싼 스키장 주차장에서 팔까? 청계산 꼭대기에 가서 밥버거나 마실 것을 팔까? 콘서트장이나 경기장 근처에 가서 핫팩이나 돗자리 혹은 야광봉을 팔아볼까?’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던 중에 문득 즉석사진을 찍어서 파는 것을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난 사진을 유명 관광지에서 팔면 잘 팔리겠다 싶었다. 그리고 장비를 구입했다.     


크리스마스 저녁, 여러 번의 답사를 통해 자리를 확보하고 혼자 장사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저녁에는 커플이 참 많았다. 커플들은 내게 크리스마스 저녁에 혼자 뭐하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여행 갈 돈 번다고 말했다. 왠지 씁쓸했다.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게 쑥스러웠다. 장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돈을 세어보았다. 생각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렇게 남산타워에서 장사를 하다가 관리직원에게 쫓겨났다.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쫓겨났다. 이후에 1월 1일에 정동진에 가서 장사를 하기도 하고, 대학교 졸업식마다 찾아가서 장사를 하기도 했다. 군부대 앞에서 장사를 하다가 텃세에 밀려 험한 욕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인사동 쌈지길 앞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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