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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2. 2016

장사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사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보다 중요한 것은 진솔한 태도였다.

추운 겨울밖에 나가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이불의 유혹을 뿌리치고 삼각대와 카메라 등을 주섬주섬 챙겼다. 사진을 찍기 위한 장비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낙원상가가 나타났다. 낙원상가 근처에는 아저씨들이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셨고,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남산타워에서 부는 칼바람은 불지 않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추운 날씨를 뚫고 쌈 짓길 앞에 도착했다. 장비를 풀고 화장실에 한번 다녀온 뒤에 장사를 시작했다. 열심히 장사를 하고 있는데, 평소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나타났다.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폴라로이드 사진 장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우리가 장사하고 있는데 옆에 와서 장사를 하는가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쫓아내거나 뭐라고 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었다.

 실력으로 승부하자. 폴라로이드 주제에 무슨 실력이 있냐고 물어볼지 모르겠지만,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카메라이다.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퀄리티에 자신 있었다. 사람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찍어주기까지 연습했던 구도, 명암, 포즈 등이 수천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을 찍다 보면 카메라에 관심이 많은 아저씨들이 와서 사진 찍는 법에 대해 훈수를 두고 가기도 했다. 내 허벅지 만한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다가와 "이 카메라  뭐예요?"라고 물어보며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고 사진도 찍어가면서 계속해서 노하우를 쌓았다.  

나는 장비에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삼각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나온 폴라로이드 카메라 중에 가장 최신, 최고의 것을 사용했고 립서비스와 자연스러운 연출 같은 것도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훈련되었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경쟁자는 생각보다 많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실력으로 승부했고 모두  그다음 날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찍을 때 이런 유혹이 들었었다. '사진이 조금 흔들렸지만, 사람들이 줄을 섰을 때는 시간이 곧 돈이기 때문에 이 사람을 대충 보내고 다음 사람을 찍을까?' 최대한 많은 사람을 찍기 위해서 원래 그런 것이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결국 사진도 잃고 사람도 잃는 것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섬유 무역을 하신다. 군대에 가기 전에 아버지를 따라 독일 뮌헨에 있는 박람회를 간 적이 있었다. 가서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도와드리고 시간이 남을 때는 여행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섬유산업이 중국의 엄청난 자본력과 값싼 노동력에 의해 침체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부스에서 외국인 바이어들이 찾아오는 곳은 아버지의 회사 부스였다. BOSS, Abercrombie&Fitch 등 전 세계의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찾아와 아버지께 상담하고 원단을 주문했다. 신기했다. 다른 부스는 휑한데 아버지 부스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나는 아버지께 여쭤보았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여기만 오는 거예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장사는 물건을 파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는 거야. 마음을 사면 나머지는 따라오는 거지. 마음이 있는 곳에 뜻이 있으니까." 아버지가 말을 마치는 순간 다음 바이어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나는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수많은 바이어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었고, 상담을 하면서 거래  내용뿐 아니라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고 하는 등의 얘기를 했다. 또 선물을 빼놓지 않았는데, "자 여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있어. 한번  열어봐"라고 말하며 한국 전통 무늬가 새겨져 있는 자개 거울을 선물했다. 바이어와 디자이너들이 마음을 안 줄래야 안 줄 수가 없었다.


대충 사진을 찍고 싶은 유혹을 찾아올 때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장사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사는 것이었다. 나는 사진을 파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찍어주기로 했다. 추억을 찍어주는데 흔들린 사진 따위 줄 수가 없었다. 나는 욕심을 버리고 최대한 예쁜 사진을 위해 잘 나올 때까지 계속 찍어주었다.

 날씨가 구 리 구 리 한 해 질 녘은 사진 찍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그래서 여러 장을 찍다 보면 때론 원가보다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잘 나올 때까지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하여 좋은 퀄리티의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눈앞의 이익보다 중요한 것은 진솔한 태도였다.


경쟁자와의 승부에서 승리를 거머쥔 나는 친구 유섭이에게 화장실을 간다고 한 뒤에 쌈 짓길을 구경했다. 둘 혹은 여럿이서 장사할 때는 이렇게 교대로 쉴 수 있어서 좋았다. 빙글빙글 걸어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꼭대기에 도착했다. 쌈 짓길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았는데 유섭이 모습이 보였다. 추운 날 열심히 장사하는 유섭이 모습이 멋있으면서도 고마웠다. 그리고 듬직했다. 혹시나 유섭이 생각은 다른데 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집에 돌아가는 길에 유섭이에게 물어보았다. "야, 아까 사람들 사진 찍으려고 줄 섰을 때 사진 그냥 대충 찍어줄걸 그랬나?" 유섭이가 내게 대답했다. "뭔 소리야. 찍을 거면 당연히 제대로 찍어줘야지. 야 아까 저기서 햄버거 할인하던데 햄버거나 먹으러 갈까?" 유섭이와 함께 패스트푸드 점에 들어갔다. “햄버거 하나 주세요.” 그러자 점원이 대답했다. “싫어요. 이제 일어나야죠.” “무슨 말하시는 거예요. 빨리 햄버거 하나 주세요.” 그러자 점원이 대답했다. “빨리 일어나서 면접이나 준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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