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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3. 2016

면접장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면접이라는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서준아 밥 먹고 가라” 부스스한 눈으로 식탁에 앉았다. 식탁에는 어머니가 끓여주신 뜨끈한 계란국이 있었다. 국물이 시원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얘기를 해주셨다.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얘기는 거의 듣지 못해서 귀를 기울여서 들었다. 밥을 먹고 나서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겨울 냄새가 나더니 첫눈이 왔다. 서울에는 드문드문 밤에 몰래 눈이 온 곳이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항공사 면접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밤새 긴장을 해서인지 배가 아프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 마치 수능을 보러 가는 것 같다. 면접을 보기 위해 메이크업을 받으려고 홍대에 왔다. 메이크업 받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카페에 들어왔는데 카페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진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즉석사진 장사를 하면서 여행을 계획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빠르다.  

떨릴 것도 없는데 계속 떨린다. 긴장할 필요도 없는데 계속 긴장된다. 사람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머리는 아니라고 말하는데도 몸이 긴장되는 걸 어떡하냐. 괜찮다고 스스로 다짐해보지만 가벼운 자기 최면에 그친다. 그래서 기도하게 된다. 기도해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그런 마음이 계속 마음속 어딘가에서 꿈틀거린다. 그래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어젯밤 꿈속에서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장사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 마음을 사는 일이다.’ 비단 장사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면접도 나를 회사에 마케팅하는 일이었다. 내가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면접관의 마음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일회용 렌즈를 샀다. 면접 때 안경을 끼면 안 된다고 해서 5년 만에 렌즈를 다시 끼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시간이 지나자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메이크업을 해주는 누나가 약국 가면 충혈된 눈을 진정시켜주는 약이 있다고 해서 일단은 안심이 되지만 그래도 조금 불안하다. 메이크업을 받을 때 먼저 와서 앉아있던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몇 시 면접이세요?” 같은 항공사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는데 항공사 면접 시간대가 15분 간격으로 나뉘어있기에 내게 물어본 것이었다. “나는 2시 45분 면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저는 3시에 면접이에요.” 나랑 비슷한 시간대의 면접을 보는 사람이었다. 나는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고 그 남자는 흔쾌히 수락했다. 9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 우리와 같은 사람이 많이 보였다. 준비한 자기소개를 중얼거리는 사람,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 눈을 감고 마인드 컨트롤하는 사람 등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긴장된 표정으로 지하철을 탄 사람.     

면접장과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우리가 지하철 역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눈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회색의 눈을 뚫고 가다 보니 어느새 항공사 로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언 손을 녹이고 들어갔다.    

면접장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정장을 입고 앉아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경직돼있었다. 순번이 불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자기소개해보세요. 신학과 나왔는데 잘할 수 있겠어요?” 내게 주어진 시간은 1분 30초 정도였다. “핸드폰을 새로 사도 1분 30초 만에 모두 알 수 없는데 사람을 보고 1분 30초 만에 판단할 수 있나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최대한 내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대답을 하고 나왔다. 준비한 것은 100인데 말하고 나온 것은 10도 안됐다. 속상했다.     

면접장을 나오는 길에 아까 그 남자를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은 형이었다. 지원하는 사람 평균 연령이 88년생-89년생인 걸로 보아 이 형은 평균 나이였다. 그 형은 한숨을 쉬며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내게 말했다. “솔직히 내 친구들은 다 취직해서 잘 살고 있는데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눈칫밥 먹는 것도 이젠 지겹고.” 우리 둘은 그렇게 서로를 응원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는데 4만 원짜리 메이크업을 바로 지우기가 아쉬웠다. 그래도 눈이 너무 따가운 터라 집에 돌아와 바로 씻었다. 눈을 씻었는데도 눈이 계속 따가웠다. 면접이 뭐라고 이렇게 고생하나 싶으면서도 항공사에 취직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그래 이 모든 것은 항공사에 들어가기 위한 희생이야!’ 스스로 위안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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